한민족 최대 명절인 추석도 끝나고 정치권은 이제 본격적인 대선 국면에 접어들었다. 역대 대선마다 풍향계 역할을 해 온 추석 민심도 각 언론사마다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분명한 경향성이 나타나고 있다.

요약하면 박근혜(새누리당)·문재인(민주통합당)·안철수(무소속) 세 후보가 3자 구도로 대선을 치르면 박 후보가 승리하고 문 후보와 안 후보가 단일화해 박 후보와 양자 대결을 펼치면 단일 후보가 누가 되든 본선에서 박 후보를 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시사저널이 여론조사 업체인 리얼미터에 의뢰해 지난 10월 3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안 후보는 박 후보와의 양자 대결에서 51.5%를 얻어 37.7%에 그친 박 후보에 13.8% 포인트 차로 크게 앞섰다. 문 후보 역시 양자 대결에서 45.0%를 기록해 박 후보(38.6%)를 6.4% 포인트 차로 따돌렸다.

유·무선 전화로 이뤄진 이번 여론조사의 표본 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3.1% 포인트. 그러나 3자 대결에서는 박 후보가 38.3%로 1위를 차지했고 이어 안 후보가 30.6%로 2위, 문 후보가 22.0%로 3위를 기록했다. MBC·한국리서치와 동아일보·리서치앤리서치·한국일보·한국리서치 등이 지난 10월 2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이와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여의도 생생 토크] 안철수·문재인의 단일화 셈법
단일화, 협상 과정서 결렬될 수도 있다?

이렇게 되자 문 후보와 안 후보 측 모두 야권 단일화를 놓고 셈법이 상당히 복잡해졌다. 야권 단일화의 필요성은 서로 공감하지만 어느 한쪽이 선뜻 포기하기가 어려운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와 관련, “사실 문 후보는 단일화에 실패하더라도 유력 정당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대선 패배의 충격이 안 후보에 비해 덜할 것”이라며 “만약 단일화가 성사되지 못해 정권을 다시 새누리당에 내준다면 그 책임은 아무래도 문 후보보다 안 후보 쪽에 쏠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추석 이후 상승세를 타고 있는 문 후보가 안 후보와의 지지율 격차를 조금만 더 좁힌다면 단일화 협상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반면 안 후보 캠프 관계자는 “단일화는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면서 “국민이 바라는 것은 진정한 변화와 혁신”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이 같은 전제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 한 문 후보로 단일화해 봐야 최종 결과는 빤한 게 아니겠느냐”고 꼬집었다.

이처럼 양 측의 입장 차가 분명한 만큼 단일화 논의는 일러야 10월 하순이나 돼야 본격화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이는 민주당이 단일화 시기를 당초 10월 중순께로 예상했다는 것을 감안할 때 상당히 늦춰진 셈이다.

김용호 인하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와 관련, “안 후보와 문 후보 양측 모두 단일화 없이는 본선에서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논의 자체를 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라며 “그러나 다자에서 지고 양자에서 이기는 현 구도가 지속된다면 어느 한쪽이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설 이유가 없어 11월 중순 이후까지 상당히 미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1987년 대선 당시 국민적 열망에도 단일화에 실패했던 김영삼-김대중 후보의 전례가 되풀이될 것이란 전망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안 후보와 문 후보 간 지지율 격차(다자 대결 기준)가 15% 포인트 이상 나지 않는다면 단일화 자체가 성사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며 “본선에서 박 후보를 꺾어야 하는 야권 지지자들 입장에서야 단일화가 필수 지만 각 후보들 입장에서는 자기가 충분히 대통령이 될 수 있는데 선뜻 단일화에 응하기가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 “큰 틀에서 단일화에 합의하더라도 후보마다 유리한 방식(문 후보는 야권 후보 적합도, 안 후보는 3자 대결 지지율)이 사실상 정해져 있어 협상 과정에서 결렬될 공산도 크다”고 지적했다.



이호기 한국경제 정치부 기자 hglee@hankyung.com

※이 기사는 2012년 10월 8일자 한경비즈니스 88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