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의 각 경제 연구소나 금융회사가 최근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잇달아 낮춰 잡고 있다. 올 초 3% 이상의 성장률을 예상했던 대부분의 경제 연구소들은 올해 성장률이 2% 중·후반대에 머무를 것으로 속속 전망치를 수정하고 있다.
특히 상반기부터 경제성장률 하락 원인으로 지적되던 유로존 위기 등 대외적인 문제는 물론 저출산·고령화 등 국내의 구조적 문제까지도 튀어나오고 있어 본격적인 저성장 시대에 들어서는 것 아니냐는 우려감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연 4%를 밑돈 것은 그동안 6차례에 불과하다. 오일쇼크,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카드 사태, 글로벌 금융 위기, 유럽발 재정 위기 등 굵직굵직한 국내외 경제 위기가 발생했던 때다. 최근의 경기 침체가 우려했던 것보다 더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의미다.
주요 연구소 및 기관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보면 가장 높은 전망치를 제시한 곳은 한국은행이다. 한국은행이 제시한 경제성장률은 3%다. 하지만 한국은행이 정부 기관으로 좀 더 긍정적인 성장률 전망을 내놓는다는 점은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
물론 한국은행 역시 올 4월 예상한 3.5%에서 7월 0.5% 포인트 성장률 전망을 낮춰 잡은 것이다. 금융권에는 한국은행이 10월 중 하반기 경제 전망 수정치를 발표하면서 다시 한 번 경제성장률을 수정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는 분위기다.
지난 9월 17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지난 5월 예상치인 3.6%에서 2.5%로 대폭 내려잡은 것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한국은행과 성격이 좀 다르지만 KDI 역시 국책 연구 기관으로, 외국계 혹은 민간 경제 연구소에 비해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는 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외국계 투자은행의 올해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는 평균 2.6% 수준으로, KDI의 전망치보다 높다.
이례적으로 KDI가 9월에 경제 전망 수정치를 발표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KDI는 매년 5월과 11월 두 차례 각각 하반기와 그 다음해 전망을 발표한다. KDI가 중간 보고서 형식으로 전망치를 수정한 것은 글로벌 경제 위기로 2009년 한국의 성장률이 0.3%까지 떨어졌을 때를 제외하면 이번이 처음이다. 국책 연구소 KDI도 1% 포인트 내려
KDI의 분석과 마찬가지로 각 연구 기관들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하향한 이유는 대동소이하다. 가장 낮은 전망치를 제시한 UBS는 2.1%를 예상해 가까스로 2%대 성장에 턱걸이했다.
민간 부문에서는 현대경제연구원이 2.8%로 가장 높은 수준의 성장률을 제시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올해 경제성장률에 대해 가장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하지만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 8월 말 “반기 경제성장 기조가 예상보다 약해질 것으로 전망된다며 현재의 대내외 여건이 지속된다면 올해 성장률은 2.8% 안팎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6월 현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성장률 전망치 3.5%보다 0.7% 포인트나 낮은 수치다.
지난 10월 2일 성장 전망치를 수정한 LG경제연구원(3.0%→2.5%)은 ‘2013년 국내 경제 전망’ 보고서를 통해 “우리나라 성장률이 주요 국가의 평균 성장률보다 더 빠른 속도로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연구원은 “선진국의 금융시장 불안과 재정 긴축으로 수요가 위축돼 우리나라와 같이 수출 비중이 높은 개발도상국의 성장이 크게 영향을 받고 있다”며 “세계경제 성장 활력 저하가 4분기 중 다소 완화되고 정부가 최근 14조 원 규모의 부양책을 내놓아 하반기 성장률은 상반기와 비슷한 수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제 신용 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역시 지난 9월 25일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종전의 3.0%에서 2.5%로 역시 낮췄다. 앤드루 말머 S&P 애널리스트는 이날 ‘아시아·태평양이 현 세계경제 불확실성의 압박을 체감하고 있다’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중국의 경기 둔화,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의 계속되는 재정 위기, 미국의 더딘 경기 회복세 등을 성장 전망 하향의 이유로 거론했다.
더욱 우려되는 점은 우리나라의 저성장세가 구조적으로 지속될 것이라고 분석했다는 것이다. 이재준 KDI 연구위원은 “미국·유럽 등이 영구적으로 성장률이 내려갈 것이라는 대외적·일시적 요인 외에도 고령화·저출산·자산디플레이션 등 구조적 문제로 인해 우리나라의 성장률이 하락 추세에 있다”고 말했다. “정부, 근거 없는 낙관 경계할 때”
이처럼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이 급속히 나빠지면서 각 연구 기관들은 정부가 경기 둔화에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경제성장률을 2%대로 낮추면서 3%대 성장률을 달성하기 위해선 종합적인 긴급 경기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며 적극적인 재정 투자 확대 정책과 태풍 볼라벤 피해 복구를 위한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을 제안했다.
임희정 현대경제연구원 거시경제실장은 “추경 편성엔 빠른 태풍 피해 복구뿐만 아니라 대내외 상황이 좋지 않을 때 적극적인 재정 투입을 통해 경기에 탄력을 주자는 의미도 담겨 있다”며 “여야가 추가적인 경기 부담을 덜기 위해서라도 재해 관련 추경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연구원에 따르면 2002년 태풍 루사 땐 재해 대책 지원으로 4조1000억 원 규모의 추경 예산이 편성됐고 2003년 태풍 매미, 2006년 집중호우 땐 각각 3조 원, 2조2000억 원의 추경 예산이 투입됐다.
한국경제연구원은 경제성장률을 2%대로 조정하면서 “가계 부채의 취약성과 부동산 가격 하락, 경기 침체 장기화 등을 고려할 때 디플레이션 발생 개연성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자산 디플레이션 가능성을 완화하기 위해 가계 부채 연착륙을 위한 정책 대응을 강화하고 역모기지와 지분 총량제 확산을 통해 부동산 가격의 급락을 방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경제성장률 - 30년간 성장률 4% 미만은 불과 여섯 차례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1970년 이후 경제성장률이 전년 대비 4%에 미달한 것은 1980년대 1차례, 1990년대 1차례, 2000년대 3차례와 작년 등 총 6번이었다. 첫 번째 4% 미달은 이란·이라크 전쟁 발발로 제2차 석유 파동(오일쇼크)이 터진 1980년(-1.9%)이었다.
이후에는 고성장을 보이다가 국제통화기금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외환위기를 맞아 1998년 마이너스 5.7%로 역대 최악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어 수많은 신용 불량자를 양산한 카드 사태 때 성장이 저조했다. 2003년 성장률은 2.8%로 전년(7.2%)의 3분의 1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 위기 때는 저성장이 2년 연속 이어졌다. 성장률이 2008년 2.3%에 이어 2009년에는 0.3%로 더욱 가파른 하향 곡선을 그렸다. 한국의 저성장 상황은 유럽발 재정 위기 역시 피해가지 못했다. 2010년 6.3%로 회복됐던 성장률이 작년에 반 토막이 나 3.6%로 떨어졌다.
역대 최고 성장률은 산업화·근대화가 본격적인 궤도에 진입하던 시기인 1973년의 14.8%였다. 또 1971년, 1976년, 1977년, 1978년, 1983년, 1986년, 1987년, 1988년, 1999년 등 총 10차례에 걸쳐 10% 이상의 고성장을 이뤘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 명목GDP는 1970년 2조7750억 원이었던 것이 1980년 39조 원, 1990년 191조 원, 2000년 603조 원, 2010년 1173조 원, 작년 1237조 원으로, 30여년 만에 446배로 커졌다.
이홍표 기자 hawlling@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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