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철 교수의 고전에서 배우는 CEO 리더십

많은 철학자들이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라고 우리에게 말할 때 그와 다르게 생각하는 철학자가 있습니다. 바로 덴마크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입니다. 그는 부유한 상인의 집에서 태어납니다. 아버지가 한때 가난하게 목동으로 살아가던 시절에 신을 저주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키르케고르는 충격에 빠집니다. 그 뒤 방탕한 생활을 하면서 살게 됩니다.

두 번째 충격은 레기나 올센이란 여성과 약혼한 지 한 달 만에 파혼하게 되면서 받게 됩니다. 몇년 뒤 그녀가 다른 남자와 결혼하면서 더욱 큰 충격을 받습니다. 그녀가 자기만을 사랑했다고 믿었기 때문이죠. 천성적으로 우울하고 사람과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으로 살아갑니다. 베를린에서 프리드리히 셸링의 철학 강의를 들었고 그 후 프리드리히 헤겔의 변증법 철학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게 됩니다.



자신과의 관계를 사랑하라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많은 결정을 내립니다. 어쩌면 살아가는 것의 전부가 선택과 결정 그리고 그에 따르는 고민의 연속입니다. 자신이 내린 결정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 책임을 고스란히 안고 살아가야 합니다.

학교를 어디로 갈 것인가. 누구랑 결혼할 것인가. 어떤 직장을 구할 것인가. 어디서 살아야 할 것인가. 무엇 하나 완벽하게 만족스러운 것이 없고 오히려 자신과의 관계에서 불만과 고민, 절망감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자신에 대해 생각할수록 한심하고 불만스럽습니다. 이것이 바로 절망입니다. 절망은 질병이고 그것은 ‘죽음에 이르는 질병’의 성격을 띱니다. 자신이 처한 환경을 극복하고 초월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면 누구든지 우울해지게 마련입니다.

정상인과 우울증 환자에 대한 재미있는 비교가 있습니다. 양자 간에는 현실에 대한 인식에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우울증 환자가 현실을 훨씬 더 정확하게 인식하는 반면 정상인은 터무니없는 낙관적 희망을 가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도저히 대통령이 될 것 같지 않은 사람도 ‘나도 한번 해볼까’라고 진지하게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반면에 우울증 환자는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있고 그것에 절망합니다. 현실만 직시하면 우울해지게 마련인가 봅니다.

성공한 리더들이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꿈을 항상 높이 가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요. 키르케고르는 다른 식으로 말합니다. 절망이 있기 때문에 인간은 인간으로서 ‘실존’한다고 말입니다.

이 세상에 나를 대신해 나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내가 먹는 것을 대신 먹어주고 화장실 가는 것을 대신 가고 학교 가는 것을 대신해 주고 회사 운영을 대신해 줄 사람은 없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이 모든 것을 나 대신해 줄 수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내가 되는 것입니다.

실존의 절대적 현실은 이렇게 자신의 대체 불가능성에 기초합니다. 그래서 키르케고르는 “우리는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한다. 자신과의 관계를 사랑해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키르케고르의 실존은 세 가지 단계를 거치면서 심화돼 갑니다.

첫째, 감성적 실존의 단계입니다. 이 세상을 탐욕의 눈으로만 바라보는 사람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가지고 있는 돈을 모두 향락적인 것에 다 써버립니다. 좋은 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스포츠카를 타고 궁궐 같은 집에서 살고 환상적인 곳으로 여행을 다니고 희귀한 물건들을 수집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감각적 쾌락에 쾌락을 거듭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그 삶은 행복할까요. ‘쾌락의 역설’에 따르면 쾌락을 추구하면 할수록 만족스러운 것이 아니라 더 강렬한 쾌락을 추구하려는 욕망의 노예가 되고 말뿐입니다. 갈증이 있을 때 소금물을 마시면 더욱 갈증이 나는 것과 같이 쾌락 추구는 더 짜릿한 쾌락의 구렁텅이로 빠지게 만들 뿐입니다.

둘째는 윤리적 실존의 단계입니다. 소크라테스가 던졌던 그 심오한 질문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답하려고 하는 사람은 이 단계에 들어올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타인을 배려하고 자신에게 엄격한 요구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윤리적 실존주의자입니다.

이 세상에서 자신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탈피해야 다다를 수 있는 단계입니다. 올바른 가치를 위해서는 자신에게 손해가 되는 결정도 내릴 수 있는 사람입니다.
미국에서 가구 공장을 운영하는 나이 70세의 한 사장님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화재가 나는 바람에 평생 일으켜 세운 공장 전체가 다 타버립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자, 이 상황에서 그분은 두 가지 선택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화재 보험금을 타서 여생을 편안하게 쉬면서 지내는 겁니다. 또 하나는 그 보험금으로 다시 공장을 짓고 새로 시작하는 겁니다. 그 사장님은 어떤 선택을 하셨을까요. 그렇습니다. 공장을 새로 짓기로 합니다.

그분의 결정은 이런 겁니다. “내가 공장을 폐업하면 직원 중 일부는 다른 곳에 취직할 사람도 있다. 그러나 나머지 인생을 평생 실직의 상태로 살아가야 할 사람도 있다. 나는 그들을 그런 상태로 내버려 둘 수 없다.”

물론 법적 의무 사항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분은 윤리적 실존의 단계를 굳건히 지킨 분입니다. 그러나 키르케고르는 이 윤리적 단계도 우리를 궁극적으로 구원해 주지 못한다고 합니다. 왜일까요. 이런 상황이 언제까지나 마냥 지속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CEO 리더십] 실존철학의 선구자 쇠렌 키르케고르 "불안과 절망은 구원으로 가는 지름길"
양치기와 눈이 마주친 미군 특공대

마지막으로 종교적 실존의 단계에서 우리는 완성된 구원을 이룰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면 부조리합니다.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 너무나도 많이 벌어집니다. 쓰나미가 나서 수없이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죽기도 합니다. 악인이 득세하는 듯한 상황이 도처에서 벌어집니다. 절대자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는 것도 많습니다.

키르케고르는 신에게 절대 복종했던 욥과 아브라함의 예를 듭니다.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만 받아들이려는 태도는 온당하지 못하다고 합니다. 아프가니스탄에 한 미군 특공대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적진 깊숙이 잡혀 있는 아군 포로를 구출하라는 미션이 떨어집니다.

포로수용소 근처에 가서 기회를 보며 잠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때 양들을 이끌고 가던 양치기와 눈이 딱 마주칩니다. 살려두면 탈레반 군인들에게 자신들이 여기에 잠복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게 됩니다.

특공대원들이 모두 그 양치기를 죽이자고 해서 대장도 동의하려는 순간 성경에 쓰인 십계명 중에 ‘무고한 자를 살인하지 말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그래서 살려줬더니 아니나 다를까 탈레반에 일러 그 미션은 수포로 돌아가고 맙니다.

비록 자신에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눈에는 부조리하게 보일지라도 절대자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과 헌신적 사랑으로 살아가는 자세에서 유한성을 초월할 수 있습니다. 불안과 절망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절대적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절망은 우리를 영원한 것으로 이끌어 주는 힘의 원동력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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