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스타일’의 열기가 꺼지지 않는 요즘이지만 자녀 교육에 대한 ‘강남스타일’은 학부모들에게 영원한 화두다. ‘대한민국 교육 특구’인 강남은 높은 명문대 입학률과 맞물려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과도한 교육열이 빚어낸 기형적인 동네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경기 불황의 장기화로 강남 사교육 시장마저 침체라고 하는 요즘, 그러나 강남에서도 특히 부유한 동네인 청담동은 예외다.

자녀 교육에 대한 투자가 여전히 아낌없이 이뤄지고 있다는 측면에서도 ‘예외’지만 강남 교육의 대표적인 스타일로 꼽히는 ‘대치동식’과 다르게 입시나 성적에 ‘올인’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예외’다. 그 배경에는 바로 ‘경제력’이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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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특구’, ‘교육 1번지’. 강남을 지칭하는 말이다. 수많은 학부모들이 ‘강남에 가면 뭔가 있을 것 같은’ 막연한 환상을 갖고 강남으로 진출하기도 하고 반대로 기형적이다 싶을 만큼 과열된 분위기에 지쳐 강남을 떠나기도 한다. ‘동경’과 ‘비판’이 공존하는 강남의 교육은 어느새 대한민국 교육열의 상징이 됐다.

교육에 대한 강남의 현실을 보여주는 몇 가지 일화가 있다. 목동에서 중학교를 다니는 한 여학생이 엄마와 함께 강남의 한 교육 컨설팅 업체를 찾았다. 이 학생의 성적표를 보던 대표 원장은 몇 년째 과외를 받고 있다는 영어 과목만 유독 성적이 최하인 것을 보고 의아해 그 이유를 물었다.

학생은 망설임 없이 “엄마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본인이 ‘강남 선생님’을 요구했으나 엄마가 ‘목동 선생님’을 붙여줘서 그렇다는 것. 대표 원장은 반문했다. 과외를 받지 않는 다른 과목들에서 ‘수’를 받은 건 그러면 어떻게 된 거냐고. 학생은 대답하지 못했다.

대표 원장은 이 사례에 대해 “학부모뿐만 아니라 학생들도 ‘강남 교육’에 대해 환상을 갖고 있다”며 “같은 학원도, 과외 선생님도 ‘강남’ 타이틀을 달면 대접이 달라지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두 번째 사례는 올 초 한 종편에서 방송된 드라마 ‘아내의 자격’에서 찾을 수 있다. 강남에서도 콕 찍어 ‘대치동’을 배경으로 한 이 드라마는 아들 교육을 위해 대치동으로 전세를 얻어 이주한 주부의 이야기를 다룬다.

열혈 엄마들의 ‘최종 집결지’이자 학원가로 대변되는 강남 사교육의 핵심 지역인 대치동은 드라마 속에서도 치열함 그 자체였다. 국제중학교 입학을 위한 유명 입시 학원에 들어가는 것조차 엄청난 경쟁률을 뚫어야 하는 상황. 아들이 그 시험에서 꼴찌를 하자 아빠는 ‘전쟁’을 선포한다.

아닌 게 아니라 드라마 속에서 하루가 멀다고 벌어지는 ‘전쟁 같은’ 일들이 대부분 ‘실제 상황’에 근간을 둔 이야기라는 점이 내내 화제가 됐다. 대치동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와 그리 낯선 이야기가 아니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불편한 진실’이라는 점이 많은 이들을 씁쓸하게 했다.



교육 방식의 차이, 결국 경제력 문제

마지막 일화는 현재 청담동에 거주하고 있는 또 다른 ‘강남 엄마 아빠들’의 얘기다. 언젠가 대치동에서 개인 병원을 운영하는 여의사가 고3인 자녀의 입시 뒷바라지를 위해 1년간 병원 문을 닫았다는 얘기를 듣고 놀란 적이 있는데, 청담동에서는 오히려 일하는 엄마들이 더 ‘이상한’ 시선을 받는다.

최근 청담동에 거주하는 한 워킹 맘이 직장을 그만뒀다. 남부럽지 않은 직장에 다니며 어느 정도 자리에까지 오른 그녀는 그러나 자녀 교육을 위해 과감히 사표를 제출했다. 그녀의 딸은 이제 일곱 살로 입시와 같은 코앞에 닥친 현실이 있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가까이 사는 친정어머니와 (청담동 대부분의 집이 그렇듯) 24시간 상주하며 집안일을 봐주는 도우미가 있어 사실상 환경이 나쁘지도 않다.

그런데도 ‘자아실현’이나 ‘성공’ 대신 ‘육아’를 택한 그녀는 아이와 함께 여행을 하고 문화생활을 하는 등 많은 시간을 보내며 다양한 경험을 쌓게 해주고 싶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청담동 엄마는 얼마 전 인천으로 이사했다.

남편도 자신도 오리지널 ‘청담동 사람’이지만 중학생이 되는 아이가 국제학교에 진학하게 되면서 기쁜 마음으로 생활 터전을 옮겼다. 미술관 큐레이터인 엄마는 이사와 함께 하던 일도 그만뒀다. 갤러리와 거리상 멀어진 것도 있지만 아이 뒷바라지에 전념하기 위해서다.

첫 번째 사례가 ‘강남 교육’에 대판 보편적인 시각 혹은 이미지에 대한 이야기라면 두 번째와 세 번째는 ‘강남식 교육 스타일’ 중에서도 지역에 따라 서로 조금씩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화다. 교육 전문가들의 말을 빌리면 ‘대치동식 교육’을 하나의 방식으로 본다면 청담동을 위주로 한 그 밖의 고급 주택가가 밀집한 강남지역(논현동·삼성동·압구정동 등)은 대치동식과는 조금 다른 형태라고 한다.

편의상 ‘대치동식’과 ‘청담동식’으로 구분하기로 하자. 하지만 전제하고 넘어갈 것은 여기서 말하는 대치동과 청담동은 대표적인 곳일 뿐 강북에도 혹은 지방 어디에도 대치동식과 청담동식 교육이 공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함께 대치동에 산다고 누구나 학원을 순례하며 과도한 입시 경쟁 속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닌 것처럼 모두의 경우로 일반화하는 오류도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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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 청담’이면 ‘인 서울’하기 힘들다?

강남에서 교육 및 입시 컨설팅을 하고 있는 신준호 대신교육 원장은 대치동식과 청담동식의 차이에 대해 “결국은 ‘경제력’의 문제”라고 말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청담동식’이 더 교육의 이상향에 가깝지만 대한민국에서 이상적 교육관을 가질 수 있는 것은 경제적인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대치동식 교육이 경제력과 무관한 것도 아니다. 다만 교육에 충분히 투자할 수 있는 정도의 경제력과 교육에 충분히 투자하는 것은 물론 아이의 미래까지 어느 정도 책임질 수 있는 정도의 경제력의 차이인 것이다.

사실 엄마들의 교육열만 놓고 보면 대치동이나 청담동이나 뜨겁기는 마찬가지다.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청담동 엄마들의 교육열이 더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학원이 밀집해 있는 대치동과 달리 청담동은 학원 형성이 잘 안 돼 있어 일일이 엄마들이 자녀들을 학원까지 실어 나르는 ‘매니저’ 역할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더구나 청담동은 기본 학업 외에도 예체능을 비롯한 다양한 경험과 활동에 비중을 많이 두는 편이라 부모들이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으면 많았지 결코 덜하지 않다. 청담동에 ‘전업 맘’이 많은 이유 중 하나도 이 때문이다. 앞선 사례처럼 아이를 위해 직장도 일도 포기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굳이 ‘생계형’이 아니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자녀를 뒷바라지하는 것이 일로 성공하는 것 못지않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스타일리스트 심우찬 씨가 쓴 ‘청담동 여자들’에 나오는 청담동 주부의 일상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명문 여대에서 미술을 전공한 지훈 엄마는 자신의 버려진 재능을 생각하면 씁쓸한 마음이 들지만, 자신은 가족이란 커다란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중략) 자신의 일을 가진 여자들처럼 사회적 성취감에 대한 그리움은 없는 것일까? ‘내가 회사를 다니면서 얻을 수 있는 자아실현 대신 충분한 관심과 사랑이 그대로 우리 아이들에게 돌아갈 수 있으니 만족해요.’”

예체능을 비롯한 다양한 활동을 중시하는 것은 아이들의 ‘장래’ 때문이다. 내 아이에게 어떤 재능이 있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경험해 보는 것밖에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걸 깨닫기 위해 들어가는 비용은 몇년이 됐든, 얼마가 됐든 투자한다.
청담동
청담동
신준호 원장도 “초등학교 중학교까지는 대치동과 청담동의 교육열이 비슷하다고 본다”며 “그런데 대치동식이 공부부터 하고 시간이 나면 예체능을 한다면 청담동식은 처음부터 다양한 길을 모색한다”고 말한다.

자녀가 고등학교에 가면 부모의 태도와 교육관에서 대치동식과 청담동식은 큰 차이를 드러낸다. 신준호 원장의 얘기를 들어보자.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즈음이면 거의 입시의 결과는 결정되는 시기예요. 내 아이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어느 정도의 대학에 진학이 가능한지 기본적으로 판단이 되는 거죠. 그런데 이때 대치동식 교육을 하는 부모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부에 ‘올인’하기를 주문합니다.

공부로 내 아이의 인생이, 미래가 열린다고 믿는 거죠. 그런 믿음의 근간에는 부모들의 경험이 있어요. 대치동 부모님들의 학벌이나 직업이 결코 밀리지 않아요. 자신들도 열심히 공부하고 좋은 대학을 나와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 혹은 직장에서 일하고 있거든요. 물론 청담동 부모님들도 소위 ‘가방 끈’이 긴 경우가 많죠.

그런데 출퇴근 시간에 얽매이는 직업이나 직장보다 자기 사업이나 전문직인 경우가 많아요. 직장인이라고 해도 원래 집안에 재력이 좀 있는 케이스가 많고요. 이 때문에 청담동 부모들은 이왕이면 내 아이가 공부를 잘하면 좋고 또 가능성이 있으면 2년이고 3년이고 투자하지만 공부로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하면 과감히 포기합니다.

굳이 공부로 자수성가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겁니다. 자녀 교육에 관한 대치동보다 청담동이 ‘여유 있게’ 보이는 이유죠. 대신 공부 말고 다른 길을 열어주죠. 그 다른 길을 위해 어릴 때부터 예체능 등 다양한 경험을 이미 해왔지 않습니까.”

교육 분야 베스트 애널리스트로 ‘입시의 정석’을 펴낸 김미연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청담동식 교육에 대해 “지역의 문제라기보다 있는 사람들의 특징”이라고 보는 게 맞다고 전제한 뒤 “있는 사람들은 기를 쓰고 국내에서 일류 대학에 가봐야 대기업에 취직해 야근해 가며 사는 삶이 결코 행복한 삶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외국 대학을 나와 국내에 취직하는 경우도 많고 설령 취직이 안 된다고 하더라도 다르게 살면 된다는 게 있는 사람들의 가치관”이라고 말했다. 신준호 원장도 “청담 초·중·고를 나온, 즉 ‘스리 청담’이면 ‘인 서울(in Seoul: 서울에 있는 대학에 들어가기 힘들다는 뜻)’하기 힘들다는 말이 있을 정도”라며 “공부에 목을 매지 않지만 그렇다고 교육열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다만 자녀의 개성을 키워주는 쪽에 더 치중한다고 보는 게 맞다”고 의견을 같이한다.


부모가 살아온 환경과 경험이 ‘투영’

학원의 성격을 봐도 청담동의 특징이 나타난다. 일단 청담동엔 학원이 많지 않다. 그 이유에 대해 한 청담동 엄마는 “진입 장벽이 높다”고 말한다. 엄마들의 입김 때문에 학원이 쉽게 진출하기 힘들다는 것.

유치원, 학교 등 자녀들 중심으로 대부분 엄마들 모임이 형성돼 있는 이 지역에선 엄마들의 한마디 평가가 학원의 생존을 좌우한다. 더구나 많은 아이들이 몰려다니는 학원에 자녀를 보내기보다 개인 과외를 시키거나 아니면 몇몇 아이들끼리 그룹을 짜 원하는 방식으로 기존 학원에 수업을 ‘주문’하는 경우도 많다.

엄마들의 교육열도 교육열이지만 자신들이 이미 최고 퀄리티의 교육을 받아본 경험자로서 ‘눈높이’가 높기 때문이기도 하다. 네 살 난 아이를 둔 한 청담동 주부는 한 달에 200만 원씩 거금을 들여 보낸 영어유치원이 마음에 들지 않자 아예 또래 엄마 몇몇과 공동으로 직접 ‘입맛’에 맞는 어린이집을 개원하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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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이 입시 전문 학원으로 대표된다면 청담동은 입시보다 다양한 활동이나 체험에 초점을 맞춘 학원이 많다. 대표적인 곳이 차인표·신애라 부부가 소유한 교육 빌딩 ‘키즈12’다. 조금 다른 ‘교육관’을 갖고 출범한 이곳은 교육에서부터 놀이, 각종 문화 체험 및 파티까지 아우르는 복합 교육 공간을 지향하는 ‘어린이 전용 빌딩’이다.

‘매력 있는 아이, 멋진 아이’라는 모토를 내건 ‘키즈12’ 홈페이지에도 “어린이가 마음껏 뛰놀고 배우면서 창의력과 사고력을 키우는 토대가 될 수 있도록, 다양한 예체능 교육을 통해 숨겨진 재능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자 한다”고 명시돼 있을 정도다.

김미연 애널리스트는 “청담동 스타일은 학원도 당장 성적이 나오는 학원이 아닌 스토리텔링 등 창의력을 기르는 학원이 많다”며 “그렇다고 입시와 완전 무관하지도 않다”고 말했다.

“지금은 대학 가는 방법이 굉장히 다양해졌어요. 입학사정관제가 대표적이죠. 이 때문에 성적도 성적이지만 그 외의 것들도 중요해졌어요. 그런데 창의력을 기르는 학원은 몇 개월 보낸다고 당장 결과로 나타나는 게 아니죠. 어릴 때부터 꾸준히 해야 하는 거죠.

즉, 한 달 몇십만 원에 해당하는 학원비를 꾸준히 지출할 능력이 되는 동네라야 이런 학원이 진출할 수 있는 겁니다. 청담동을 비롯한 경제력이 되는 동네 엄마들은 나중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이런 학원들에 아이들을 보내는 겁니다.”

또 다른 청담동식 교육은 ‘탈강남’이다. 최근 취재 차 만난 한 유명인은 “영어를 가르치지 않는 어린이집을 찾아 서울 외곽으로 이사했다”고 말했다. 이 유명인은 거의 외국인 수준으로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이지만 “영어는 안 해도 되고 굳이 한다고 하더라도 나중에 하면 되는 것”이라며 “어릴 때는 무조건 뛰어노는 게 중요하다”는 교육관을 어필했다.

아이들에게 공부 스트레스 대신 뛰어놀 수 있게 하는 교육이 바람직하다는 건 누구나 공감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실천할 수 있는 것도 ‘경제적 자신감’ 때문이라는 게 신준호 원장의 분석이다.

“아마 그렇게 ‘탈강남’할 수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러시아워에 출퇴근해야 할 이유가 없는 이가 많을 겁니다. 외국어도 마찬가지죠. 지금 당장 안 해도 나중에 해외로 가서 배우면 되는 것이고요. 그건 부모의 경험에서 나오는 겁니다.

결국 대치동식과 청담동식 교육의 차이는 부모가 삶을 바라보는 방식의 차이에 있다고 보는 게 맞아요. 본인들이 살아온 환경과 경험이 자녀 교육에 관한 가치관을 결정하는 거죠. 대치동에는 자녀 교육을 목표로 이주해 온 이들이 많고 청담동에는 오리지널 강남 사람이 비교적 많다는 사실을 상기해 보면 환경과 경험의 차이를 더 분명히 알 수 있을 겁니다.”


취재=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사진=서범세·김기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