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살면서 네 번의 전쟁을 겪은 특이한 이력을 가진 분이다. 어린 나이에 6·25전쟁을 겪으며 피란길에 올랐고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베트남전에 참전해 4년 가까이 복무하셨다.

건설 업체 파견 근무로 이라크에 가셨을 때는 이란-이라크 전쟁이 일어났고 사우디아라비아에 가셨을 때는 걸프전이 터졌다. 종군기자도 아니었지만 아버지는 마치 포레스트 검프처럼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전쟁 속에서 생존을 위해 미사일을 피해 다녀야만 했다. 그리고 무사히 살아 남으셨다.

아버지가 전쟁터 한복판에서 고생하며 보내주신 전리품 같은 여러 선물들 속에서 유년 시절의 나는 그 고통을 잘 모른 채 어리광을 부리는 늦둥이 막내였다. 우표 수집을 좋아하던 내게 아버지가 보내주셨던 후세인이 그려진 우표들 그리고 그 속에 사열하고 있는 무기들이 아버지가 실제 상황으로 겪고 있는 전장의 병기들이자 전쟁의 표상이라는 것을 그때는 잘 알지 못했다.

아버지의 삶도 전쟁만큼이나 순탄치 않았다. 집이 없어 움막에서 살기도 하고 일을 일절 하지 않고 술독에 빠져 살았던 할아버지 대신 일찍부터 가족을 책임져야 했다. 동생과 네 자녀를 잘 기르기 위해 자신의 삶을 내려놓은 채 늘 일만 하셨다.

지인·친척 등 가까운 사람에게 사기를 당하거나 가족이 큰 병에 걸리는 여러 우환이 있었지만 아버지는 늘 묵묵하고 덤덤하게 사태를 마주하셨다. 세찬 파도와 바람 앞에서 둥글둥글하게 제 몸을 깎아 자리를 지키는 바닷가의 바위처럼 아버지는 어떤 상황에서도 크게 동요하지 않으셨다. 눈물도 불평도 없이 긴 세월을 묵묵히 견뎌내셨고 늘 그것을 웃음 섞인 이야기로 풀어내시곤 하셨다.
[아! 나의 아버지] 아버지의 전쟁, 그리고 나의 전쟁
아버지의 삶은 그 자체로 내게 인내와 평정심의 교과서였다. 당신의 삶을 말로 나에게 가르치려고 하신 적은 없었지만 행동과 태도로 보여주신 삶의 방식과 철학은 고스란히 내 몸에 담겨져 왔던 것 같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으로 늘 바삐 일하는 부모님들을 보며 경제적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스물한 살의 나이에 일찍 회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남들보다 조금 일찍 삶의 파고들을 무덤덤하게 넘는 법을 배우려고 노력했다.

1년 전, 8년간 다니던 안정적인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하는 어려운 결단을 내리는 내게 아버지는 힘이 되는 말씀을 해주셨다. “익숙해지면 힘들지 않을 거다”라는 한마디가 사업 초기에 다가올 먹구름들로 인해 다소 겁을 먹고 있던 내게는 그마저도 익숙해지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시작하는 걸음을 뗄 수 있는 발판이 되어줬다. 사업이라는 것이 때로 많이 고되기도 하기 때문에 ‘어쩌면 이것이 내가 겪고 있는 전쟁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물론 실제로 포탄이 터지고 미사일이 오고 가는 전쟁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물러설 곳이 없고 생존 자체에 가장 큰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 초기 기업의 특성상 경영의 위기는 공습처럼 다가온다. 사업을 시작한 지 이제 갓 1년이 넘었을 뿐이지만 서서히 여러 위기와 문제들에 익숙해져 가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면 아버지의 말씀이 인생과 그 속의 문제들을 길게 보고 꾸려나가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는 생각을 해본다.


임진석 굿닥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