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10조 비전’이 오늘의 화 불렀다

‘샐러리맨 신화’로 유명한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이 창업 이후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유동성 문제에서 불거진 위기가 끝이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룹의 주력사인 웅진코웨이를 매각하는 초강수를 뒀지만 위기의 불씨는 꺼지지 않고 있다.

최근엔 웅진패스원과 웅진폴리실리콘은 물론 웅진식품까지 인수·합병(M&A) 시장에 매물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급기야 그룹 지주사인 웅진홀딩스가 자회사에서 잇따라 급전을 조달했다는 것을 공시하면서 웅진홀딩스의 주가가 급락하는 등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도대체 웅진그룹의 자금 사정은 어느 정도일까.

윤 회장이 웅진코웨이 매각을 발표한 것은 지난 2월 초. MBK와 매각 본계약을 체결한 게 8월 15일이다. 웅진그룹에서 현금 창출 능력이 가장 뛰어난 웅진코웨이 매각으로 그룹이 유동성 위기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우선 매각 대금으로 빚을 갚고 나면 손에 남는 게 별로 없다. 웅진코웨이 매각 대상 지분은 웅진홀딩스 28.4%(2188만 주)와 윤 회장의 두 아들 형덕·새봄 씨의 지분 2.52%(195만 주)다.

매각 대금은 1조2000억 원. 이 중 세금을 제하면 약 1조600억 원이 유입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1조600억 원은 웅진홀딩스의 단기 차입금 상환 금액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웅진코웨이 지분이 매각됨에 따라 웅진홀딩스와 자회사에 웅진코웨이 지분을 담보로 제공한 차입금은 즉시 상환 또는 차환해야 하기 때문이다. 신한금융투자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그 금액은 약 5691억 원이다.
/강은구기자 egkang@hankyung.com 2009.01.07
/강은구기자 egkang@hankyung.com 2009.01.07
웅진그룹은 우리은행 등 8개 금융회사로부터 3091억 원의 여신이 있는데, 여기엔 웅진코웨이 지분과 웅진에너지·웅진씽크빅 등이 담보로 제공돼 있다. 웅진캐피탈의 차입금 700억 원, 웅진플레이도시 700억 원, 극동건설 프로젝트 파이낸싱(PF) 1200억 원 등 2600억 원도 웅진코웨이 지분이 담보로 잡혀 있다. 이들 여신은 웅진코웨이 지분 매각 이후 되갚아야 한다.

게다가 향후 1년 내 만기가 도래하는 차입금 규모가 약 4800억 원이다. 웅진홀딩스가 1년 내 갚아야 하는 차입금 및 사채가 6455억 원 수준인데, 이 가운데 웅진코웨이 담보가 들어 있는 자금은 1641억 원이다. 즉시 상환해야 될 대금이 중복 계산돼 이를 제외하면 4800억 원이 남는다.

따라서 5690억 원과 4800억 원을 갚고 나면 웅진코웨이 매각 대금은 200억 원 정도만 남게 된다. 물론 이 같은 계산은 차입금 대부분을 연기 없이 상환할 때다.
[비즈니스 포커스] ‘샐러리맨 신화’ 윤석금 웅진 회장이 위기에 빠진 까닭
웅진코웨이 본사 /신경훈 기자 nicerpeter@..
웅진코웨이 본사 /신경훈 기자 nicerpeter@..
부채 3조 원에 발목 잡혀

아무튼 웅진코웨이 매각 대금으로 급한 불은 끌 수 있지만 유동성 위기가 근본적으로 해소되기는 어렵다는 것이 투자은행(IB) 업계의 분석이다. 그 이유는 웅진그룹의 유동성 위기를 불러온 극동건설과 태양광사업, 그리고 서울저축은행 등이 단기간에 정상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극동건설은 웅진그룹이 2007년 6600억 원에 인수한 기업이다. 극동건설의 자금난은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적자 폭은 줄었지만 적자가 매년 이어지는 가운데 부채비율까지 치솟고 있다. 지난해 2162억 원의 영업 손실을 기록한 극동건설은 지난 1분기 52억 원, 2분기 67억 원의 영업 손실을 잇따라 기록했다.

대주주인 웅진홀딩스가 지난해 10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에 나서기도 했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부채비율은 2010년 173%, 지난해 304%, 올 1분기 338%까지 치솟았다. 무엇보다 작년 11월부터 올 9월까지 5차례에 걸쳐 934억 원을 웅진홀딩스로부터 차입한 것에서 극동건설의 어려움을 짐작할 수 있다. 더구나 부동산 경기 침체로 건설 업체들의 재정난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웅진그룹의 자금 투입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최근 M&A 매물로 내놓은 웅진폴리실리콘도 ‘돈 먹는 하마’로 전락했다. 웅진폴리실리콘은 2010년 경북 상주 공장에 대한 시설 자금으로 우리은행 등 금융권에서 3100억 원을 대출했으나 지난 7월 대출 약정 사항인 부채 상환 비율을 어겨 빌린 돈을 조기 상환해야 하는 사정이 있다.

IB 업계에서는 웅진그룹이 상주공장(장부가 약 5500억 원) 매각 또는 경영권 포함 지분 매각을 검토(약 7000억 원) 중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문제는 인수에 선뜻 나설 기업이 없다는 데 있다. 웅진폴리실리콘의 생산능력은 7000톤으로 OCI의 6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생산원가도 30달러 후반대로 20달러대 초반대로 추정되는 정상급 업체들보다 두 배 정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즉 인수와 함께 추가 투자를 동시에 진행할만한 기업을 찾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증권사의 한 애널리스트는 “태양광 산업의 바닥은 내년 말로 예상된다”며 “막강한 자금력을 보유한 기업만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비즈니스 포커스] ‘샐러리맨 신화’ 윤석금 웅진 회장이 위기에 빠진 까닭
2010년 8월 인수한 서울저축은행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웅진그룹은 서울저축은행 인수 2년간 인수 대금 185억 원과 6차례에 걸친 유상증자 금액 2200억 원 등 2385억 원을 쏟아 부었다. 그런데도 서울저축은행은 자본 잠식률이 96%에 달해 상장폐지 위기에 처해 있다. 물론 계열사인 웅진캐피탈만이 유상증자에 참여했기 때문에 웅진홀딩스에 직접적인 영향은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웅진그룹 차원에서의 골칫거리임은 분명하다.

웅진그룹은 원래 정수기 렌털 업체인 웅진코웨이와 학습지 및 출판 업체인 웅진씽크빅이 그룹의 주력이다. 여기에 교육 업체인 웅진패스원과 음료 업체인 웅진식품이 그 뒤를 받쳐주는 모양새다. 이들 주력 업체들은 큰 리스크 없이 안정적인 수익을 내왔고 웅진그룹은 작지만 강한 그룹으로 통했다.

문제의 발단은 무리한 사업다각화다. 극동건설 및 서울저축은행 인수, 태양광 사업 진출 등 투자 규모가 큰 신규 사업에 적극 뛰어들면서 기존의 우량 계열사마저 위기에 처한 것이다. 그러면 웅진그룹은 재무구조 개선이라는 발등의 불을 끌 수 있을까.



건설·태양광 진출이 ‘자충수’돼

현재 웅진홀딩스의 부채 규모는 3조315억 원으로, 2010년(2조316억 원)에 비해 크게 늘어났다. 사업 역량과 현금 창출력을 감안할 때 과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우선 주력사인 웅진코웨이가 매각됐다. 웅진코웨이는 웅진그룹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 계열사로 매출과 현금 흐름, 이익 규모의 급감이 불가피하다. 배당금과 브랜드 사용료도 상당 수준 축소될 것이다. 웅진코웨이와 함께 양대 기둥이었던 웅진씽크빅은 올 상반기 110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웅진폴리실콘과 함께 태양광 사업의 또 다른 축인 웅진에너지도 올 상반기 392억 원의 적자를 냈다. 웅진식품이 같은 기간 흑자를 기록했지만 18억 원에 불과하다. 웅진홀딩스의 신용 등급도 하락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A+’인 웅진코웨이가 매각된 여파다. 김상훈 신한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최근 웅진그룹이 시장의 신뢰를 많이 잃었다”며 “향후 1년 내 도래하는 차입금 상환은 가능하겠지만 그 이후는 장담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윤 회장은 한국브리태니카에서 외판원으로 직장 생활을 시작해 1980년 웅진출판(현 웅진씽크빅)을 창업하며 경영자의 길로 들어섰다. 창업 10년 만인 1990년 연매출 2000억 원을 돌파한 이후 1990년대 후반 가뿐히 1조 원 고지를 넘어섰다.

그 과정에서 웅진출판을 굴지의 학습지 업체로 키운데 이어 웅진코웨이를 국내 최고의 정수기 업체로 성장시키며 ‘샐러리맨 신화’로 주목받아 왔다. 그렇지만 2005년 ‘2010년 매출 10조 원 달성’이라는 비전을 새로 정하면서 ‘샐러리맨 신화’의 금이 가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윤 회장은 10조 원 달성의 밑그림으로 건설업 진출에 의지를 보였다. 주변의 반대가 적지 않았지만 결국 극동건설 인수를 밀어붙였고 ‘규모의 경제’가 작용하는 태양광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욕심이 화를 부른 셈이다. 과연 윤 회장은 맨손으로 굴지의 기업을 일군 경영 노하우로 벼랑 끝에 몰린 웅진그룹을 회생시켜 예전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까.



권오준 기자 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