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에 대한 과신, 이질적 요소에 대한 거부감, 경영진의 눈치를 보고 자사에 불리한 정보를 애써 외면하려는 행태는 경영진으로 하여금 자사의 역량과 시장, 경쟁자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흐리게 한다.


일본의 대표적 전자 기업인 샤프가 곤경에 빠져 있다. 샤프는 2012년 3월 결산에서 3760억 엔의 적자를 낸데 이어 2013년 3월 결산에서도 2500억 엔의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같은 일본 기업이라고 하더라도 자동차의 도요타는 대규모 흑자를 기록할 전망이고 전자 기업 중에서도 파나소닉과 소니 등은 미약하지만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모습과 달리 샤프의 부진은 일본 기업 중에서도 두드러지고 있다.

샤프는 올해 창업 100주년을 맞이한 만큼 장수한 기업이다. 한때는 액정표시장치(LCD) TV의 강자로 주목받았던 기업이기도 하다. 그러한 샤프가 이렇게까지 어렵게 된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한 가지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샤프가 2000년대 초 LCD TV 시장에서 50%가 넘는 점유율을 확보할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사태를 상상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승승장구했던 샤프는 자신감에 충만해 샤프가 만든 LCD 패널을 구하러 오는 경쟁 기업 관계자를 홀대하기 일쑤였으며 샤프에 부품 및 소재를 납품하는 기업들은 여러 가지 까다로운 주문을 샤프로부터 들어야 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는 조직원들이 지나치게 낙관적인 사고에 사로잡혀 자사에 불리한 정보가 나와도 애써 외면하려는 조직 심리가 지배하게 된다. 조직을 떠나 개인적으로 냉철하게 생각하면 당연히 우려하는 리스크를 무시하려는 집단 심리가 작용하기 쉬운 것이다.

예를 들면 LCD 분야에서 한국 기업의 도전이 강화돼도 샤프에서는 기술력이 높은 자사가 밀릴 리가 없다는 사고가 강했다. 이러한 사고는 기존의 전략과 전술을 더욱 강화하려는 유인으로 작용한다.

사실 샤프는 장인정신을 발휘해 화질의 차별성을 철저하게 추구한다면 승리할 것이라는 기대로 기존 기술인 LCD의 정교화에 더욱 매진했다. 이러한 샤프의 전략은 한국계 기업 등이 LCD의 진화와 혁신을 통해 새로운 경쟁 국면을 개척하면서 도전하려는 전략 앞에서 무력하게 무너졌다고도 할 수 있다.
[경제 산책] 샤프 비상사태의 교훈
한국 기업이 LCD의 진화를 도모하면서 발광다이오드(LED) LCD TV를 선행적으로 개발하고 편광판 방식의 3D TV,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 등 끊임없는 시도를 성공시켰기 때문이다. 반면 기존 LCD TV의 개선 기술로서 샤프가 자신 있게 개발한 4원색의 LCD 패널인 QUADTRON은 현재 막대한 재고 누적으로 인해 샤프의 경영을 압박하고 있다.

기존의 적색·녹색·청색의 3원색에 노란색을 추가한 4원색 LCD 패널은 샤프의 기술력을 총동원해 만든 제품이기 때문에 당연히 차별화되고 선풍적으로 판매될 것이라는 샤프의 기대와 달리 소비자의 반응은 냉담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조직에 대한 과신, 이질적 요소에 대한 거부감, 경영진의 눈치를 보고 자사에 불리한 정보를 애써 외면하려는 행태는 경영진으로 하여금 자사 역량과 시장, 경쟁자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흐리게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우리 기업은 군대와 같은 스피드 있는 조직력과 결단력으로 성장을 거듭해 온 게 사실이다.

기업은 어디까지나 계급 조직이며 경영진이 리더십을 가지고 결단하고 명령하고 조직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실행력이 중요하지만 그러한 속에서도 직급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의견을 내는 조직 문화가 형성돼야 불투명하고 급변하는 사업 환경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