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유럽·중국 등 현재 세계경제를 이끌어 가는 3대 중심국이 경기 부양책을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의장은 계속해 강력한 경기 부양 의사를 피력하고 있는 가운데 3차 양적 완화 등 올해 안에 확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도 이미 무제한 국채 매입 정책을 발표하는 등 자신의 말을 이행하기 위한 드라기 패키지를 속속 확정하고 있다.

현재까지 확정됐거나 발표될 중심 3국의 경기 부양 조치를 보면 두 가지 점에서 종전과는 확연히 구별된다. 하나는 미국과 유럽 모두가 다른 정책 수단보다 국채 매입 등을 통한 유동성 공급 정책에 더 매달리고 있다. 다른 하나는 경기 부양의 다양한 목적 가운데 단순히 성장률을 끌어올리기보다 고용 창출, 특히 청년 일자리를 늘리는데 무게를 둔다는 점이다.

하지만 고용에 초점을 맞춘 경기 부양책은 그 어느 정책보다 자국의 이익을 앞세우기 때문에 국제 교역과 국제통화 시장에 신보호주의와 글로벌 환율 전쟁의 조짐이 일고 있다. 버냉키 의장이 3차 양적 완화 가능성을 시사한 이후 달러 평가 지수는 84에서 79로 달러 약세 현상이 뚜렷함에 따라 브릭스(BRICs: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를 중심으로 반발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일자리 창출을 우선하는 경기 부양책을 추진하는 것은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고용이 따르지 않아 갈수록 심각한 사회불안 문제를 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종전의 부양책에서는 고용 지표는 대표적인 경기 후행 혹은 종속변수로, 성장률만 끌어 올리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란 판단에 근거해 만들어졌다.

이 때문에 일자리 창출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은 고용 지표가 갈수록 독립 혹은 설명 변수화되는 새로운 움직임을 각국의 부양책에서 고려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오히려 이런 변화를 읽지 못하고 단순히 성장률만 끌어 올리면 소득 양극화를 심화시켜 이미 발생한 반월가(Occupy Wall Street) 시위 등 사회불안을 증폭시킬 우려가 높다.

반(反)월가 시위의 이론적 토대가 된 ‘베버리지 곡선(Beveridge curve)’을 보면 청년 실업 등이 갈수록 구조적 성격을 띠고 있어 앞으로는 인위적인 일자리 창출 노력 없이는 개선될 가능성이 적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금융 위기 이후 ‘베버리지 곡선’이 상향 이동된 것으로 나타남에 따라 노동시장의 구조 변화로 청년층 실업률이 약 25~30% 오른 것으로 추정된다.

동일한 맥락이긴 하지만 이번처럼 경기 부양책이 고용 창출, 특히 청년 일자리를 늘리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은 잇달아 예정된 선거를 겨냥하는 포석도 강하다. 올해 하반기 이후 1년 동안은 전 세계적으로 예정된 각종 선거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많은 시기다. 갈수록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등에 익숙한 청년층이 선거에 차지하는 영향력이 높아지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 계층에 맞춘 경기 대책은 의외로 빨리 정착될 가능성이 높다.

선거 결과를 결정하는 요인은 다양하지만 갈수록 집권당의 경제성, 특히 국민 입장에서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체감 경기에 의해 결정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미국만 하더라도 소비자물가 상승률에 실업률을 더한 경제고통지수(misery index)에 따라 대통령 선거 결과가 결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YONHAP PHOTO-0189> Specialist trader Mike Pistillo Jr. (C) gives a price just before the opening bell on the floor of the New York Stock Exchange June 6, 2012. REUTERS/Brendan McDermid (UNITED STATES - Tags: BUSINESS)/2012-06-07 05:00:19/
<저작권자 ⓒ 1980-2012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Specialist trader Mike Pistillo Jr. (C) gives a price just before the opening bell on the floor of the New York Stock Exchange June 6, 2012. REUTERS/Brendan McDermid (UNITED STATES - Tags: BUSINESS)/2012-06-07 05:00:19/ <저작권자 ⓒ 1980-2012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한국이 일본·중국보다 불리

경제고통지수는 국민들이 느끼는 경제적 고통의 정도를 측정하기 위해 미국의 경제학자인 아서 오쿤(Arther Okun)이 고안한 지표로, 실업률과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더해 산출한다. 개념상 물가가 오르거나 실업률이 높아지면 이 지수가 상승해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삶의 고통이 커진다는 의미로, 미국에서는 실업률이 개선되지 않아 국민들이 느끼는 경제고통지수가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

경제 현안을 풀어 갈 때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은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과제다. 하지만 지난 4년간 위기 과정에서 과도한 비용 지출로 남아 있는 정책 여지가 거의 없다. 가장 효과적이고 직접적인 재정 정책은 모든 선진국들이 과다한 재정 적자와 국가 채무로 위기를 겪고 있다. 통화정책은 비교적 쉽게 가져갈 수 있는 기준금리 인하는 사실상 어렵다. 갈수록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다른 정책 수단보다 유동성 공급 정책에 더 의존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종전처럼 효과가 적고 이미 인플레이션이 우려될 정도로 국제유동성이 많은 상황에서 선진국들이 계속해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은 경기적인 측면에서 두 가지 경로로 의미가 있다. 다른 하나는 자국 통화 약세에 따른 수출 증대 통로다. 오바마 정부가 출범 이후 달러 약세 정책을 고집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 나라의 통화가치는 경쟁국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그 나라의 경제 여건에 맞는 적정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특정국이 수출 진작을 이유로 자국의 통화가치를 평가절하할 때 그 피해가 고스란히 경쟁국에 전가되는 ‘근린 궁핍화 정책’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이때 경쟁국들이 피해를 막기 위해 자국의 통화가치를 경쟁적으로 평가절하한다면 통화마찰이 불가피하게 발생한다.

미국과 같은 중심국에서 자국의 수출과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통화가치를 절하한다면 대부분이 환율 전쟁으로 이어질 것이다. 선진국의 양적 완화 정책으로 풀린 돈이 신흥국으로 유입되면서 이들 국가들의 주가와 통화가치는 동반 상승하고 있다. 이 때문에 중심 통화가 평가절하될수록 그 피해는 경제발전 단계상 한 단계 아래 국가인 중국, 브라질, 한국 등 선진 신흥국들에 집중되게 된다.

선진국의 양적 완화로 환율 전쟁이 재연될 조짐을 보이는 최근과 같은 상황에서 우리 경제로서 경계해야 할 것은 엔화와 위안화 가치가 동시에 약세로 돌아서는 상황이다. 최소자승법 등으로 엔화와 원화 간의 동조화 계수를 구하면 0.02로, 엔화 가치가 1% 떨어지면 원화 가치는 0.02%만 떨어진다는 의미다. 위안화와 원화 간의 동조화 계수를 구하면 0.57로, 위안화 가치가 1% 떨어지면 원화 가치는 0.57% 떨어져 상대적으로 덜 떨어지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같은 결과는 앞으로 글로벌 환율 전쟁이 재연되면 우리가 인접국인 중국과 일본보다 환율 경쟁력상 더 불리하다는 의미다. 더욱이 국내 증시로서는 글로벌 환율 전쟁으로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 외국인 자금이 이탈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글로벌 환율 전쟁에 선제적으로 대비해야 할 때다.
[한상춘의 국제 경제 읽기] 다가오는 글로벌 환율 전쟁&nbsp;"선진국 양적 완화…신흥국 피해 막심"
[한상춘의 국제 경제 읽기] 다가오는 글로벌 환율 전쟁&nbsp;"선진국 양적 완화…신흥국 피해 막심"
●용어 설명●
베버리지 곡선은…

베버리지 곡선(Beveridge curve)은 빈 일자리와 실업 간의 반비례 관계를 보여주는 곡선으로, 1958년 필립스 곡선과 같은 시기에 발표됐지만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 후 이론적으로 발전시킨 피터 다이아몬드 매사추세츠공과대(MIT) 교수가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것을 계기로 재조명 받으면서 유명해진 이론이다.



한상춘 한국경제 객원 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