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가 이어지는 가운에 불황형 아이템이 주목받고 있다. 대형 마트와 TV 홈쇼핑, 인터넷 쇼핑몰 등에서는 가격을 대폭 내린 저가형 상품들이 인기를 얻고 있고 손수짜기(DIY) 제품들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이마트가 지난 3월 선보인 9800원짜리 수분 크림(레시피아 아쿠아 모이스트 크림, 300ml)은 대박이 났다. 출시 이후 3만 개가 팔리면서 올해 이마트에서 판매한 수분 크림 중 판매 순위 1위를 기록했다. 기존 수분 크림이 대개 50~60ml 기준으로 1만2000원에서 7만5000원을 호가하는 것을 감안하면 거의 10분의 1 수준이다.

9900원짜리 바람막이 재킷도 대량 생산해(8만 장) 가격을 대폭 낮추면서 히트 상품으로 떠올랐다. 오리·거위 털 등 천연 원자재를 사용하면 그해 생산량과 품질에 따라 가격 변동이 심하다. 하지만 화학섬유 등 인공 원자재는 원료 배합과 생산 기술로 품질관리가 가능해지면서 가격을 낮출 수 있게 됐다는 것이 이마트 측의 설명이다.
 최근 폭염과 폭우에 이어 태풍까지 겹치면서 채소값이 급등하자 롯데마트는 농산물포장센터를 통해 공급받은 호박 감자 당근 등 채소를 시세보다 30% 싼 가격에 30일부터 판매를 시작한다.지난 7월부터 가동한 농산물포장센터는 상품화 과정에서 가공비용 물류비용 등을 절감해 소비자들에게 보다 싸게 제품을 공급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다.
/강은구기자 egkang@hankyung.com 2012.8.28
최근 폭염과 폭우에 이어 태풍까지 겹치면서 채소값이 급등하자 롯데마트는 농산물포장센터를 통해 공급받은 호박 감자 당근 등 채소를 시세보다 30% 싼 가격에 30일부터 판매를 시작한다.지난 7월부터 가동한 농산물포장센터는 상품화 과정에서 가공비용 물류비용 등을 절감해 소비자들에게 보다 싸게 제품을 공급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다. /강은구기자 egkang@hankyung.com 2012.8.28
재고 처리 매장 속속 등장

이마트에서는 이 밖에 당근·양파·마늘·대파·고추 등 필수 채소 10여 가지를 990원에 판매 중인 990야채가 인기를 끌고 있다. 기존 포장에서 3분의 1 정도 중량을 줄여 가격을 대폭 낮췄다. 990야채는 1~2인 가구에서 주로 구매하는 상품이지만 전체 채소 판매량의 20%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호응을 얻고 있다. 올 들어 8월까지 매출이 지난해 동기 대비 52% 늘었다.

재고 상품을 판매하는 땡처리 매장도 늘고 있다. 이마트는 재고 상품을 판매하는 ‘파격가 처분 매장’을 전 점포에서 연 데 이어 매장 계산대와 출입구에 990원, 1990원, 2990원 등 균일가 상품 판매대를 운영하고 있다. 가공식품 매장에서 ‘1+1 행사’나 50% 저렴한 제품만 모은 알뜰 상품 코너도 운영하고 있다.

롯데마트도 잘 팔리지 않는 재고 상품을 30~70%에 판매하는 ‘파격가 처분 매장’을 확장했다. 올 들어 ‘파격가 처분 매장’의 취급 물량을 작년보다 70% 정도 늘렸다. 위치도 고객들의 눈에 잘 띄는 주동선상이나 무빙위크 주변에 배치했다. 정선용 롯데마트 고객만족팀장은 “지난 1월부터 7월까지 작년 같은 기간보다 판매량이 2배 정도 늘었다”고 밝혔다.

불황을 상징하는 또 하나의 현상은 GS샵에서 사은품에 지나지 않았던 휴지가 메인 상품으로 등장했다는 점이다. 이는 2010년 극심한 경기 침체로 ‘뽀삐’ 휴지 세트를 판매한 지 2년 만이다. 휴지뿐만 아니라 세제나 김치 등 생필품이 홈쇼핑에서 호황을 누리고 있다.

GS샵은 지난 5월 말부터 화장지와 미용 티슈, 키친타월 등을 묶은 화장지 세트를 마트 판매가 대비 20~30% 저렴하게 팔고 있는데 방송 때마다 3000세트 이상 판매되고 있다. 세제도 30~40% 저렴한 가격으로 한 달에 3~4회 정도 방송을 내보내고 있는데 방송마다 평균 5000세트 이상 팔리고 있다. 김수택 GS샵 방송기획팀장은 “불황으로 무겁고 부피가 큰 생필품을 홈쇼핑에서 저렴하고 편안하게 장만하려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자체 상표(PL: Private Label) 상품이 뜨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기존 브랜드 회사들의 상품 대비 10~30%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하는 PL 시장은 불경기 속에서도 계속 성장해 왔다. 이마트가 지난 8월 선보인 베스(VESS) 콜라는 코카콜라보다 37% 정도 싼값에 판매를 시작한 지 며칠 만에 코카콜라 매출을 앞지르는 진기록을 달성했다.

사실 PL은 장기 불황에 시달리는 미국·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대세로 자리 잡았다. 미국의 PL 시장 규모는 900억 달러에 달하며 유럽도 소매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0%를 넘는다. 일례로 대표적인 저가 마트인 알디는 PL 매출이 전체의 95% 정도를 차지하고 있으며 테스코·월마트 등도 PL 매출이 40%를 넘어서고 있다.

PL이 크게 성장하는 배경은 경기 침체로 가격이 저렴한 PL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최성재 이마트 가공식품 부사장은 “최근 이마트 TV와 원두커피의 열풍에서 볼 수 있듯이 좋은 품질에 경제적인 가격으로 선보인 PL 제품은 소비자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며 “앞으로도 단순히 가격보다 품질을 한층 업그레이드한 프리미엄 PL 출시를 크게 늘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마트는 10일 추석을 앞두고 49800원에(마리당 2490원) 저렴한 굴비선물세트를 선보였다. 제주, 목포, 여수 산지에서 어획한 국산 참조기를 엄선해 3년 숙성 천일염으로 전통 섶간해 만들었다.
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20100910
이마트는 10일 추석을 앞두고 49800원에(마리당 2490원) 저렴한 굴비선물세트를 선보였다. 제주, 목포, 여수 산지에서 어획한 국산 참조기를 엄선해 3년 숙성 천일염으로 전통 섶간해 만들었다. 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20100910
DIY 제품 판매도 크게 늘어

불경기 여파로 추석 선물도 중저가 상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백화점은 10만 원대를 넘지 않았으며 대형 마트는 5만 원을 넘지 않은 저가 상품이 주를 이뤘다. 신세계백화점은 최근 추석 선물 예약 판매 현황을 분석한 결과 장·반찬 등 조리 선물 세트가 과거 명절과 달리 크게 늘었다. 수산물은 가격대가 높은 선어 대신 5만~7만 원대의 멸치 선물 세트가 지난해 대비 10배 이상 성장했다.

롯데마트도 가공·생활용품 중심의 1만~3만 원대 미만의 저렴하고 실속 있는 선물 세트가 인기를 끌었다. 비누·샴푸로 구성된 생활용품 세트 애경L-1화(9900원) 세트가 1위를 차지했다. 롯데마트는 불황에 가격 부담 없는 1만 원대 이하의 실속형 저가 선물 세트 물량을 작년보다 50% 정도 늘려 준비했다.

DIY는 불황으로 의자나 책상 등 소형 가구들을 버리지 않고 사용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자연스레 생겨난 트렌드다. 오픈마켓 옥션에서는 목재와 DIY 공구 등 가구 리폼 상품들이 ‘베스트 상품’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최근 상품 검색센터에 책상 다리, 가구 바퀴, 가구 손잡이 등 실속형 수리 재료가 대거 진입하기도 했다. 가구 부자재 판매량은 올 들어(1~8월) 전년 대비 55% 늘었다.

최근에는 집수리와 건물 보수용 상품들도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 특히 빠른 시간 안에 쉽고 간편하게 보수할 수 있는 ‘보수용 시멘트’는 지난 1개월간 판매량이 전년 대비 32% 정도 늘었다고 한다.

장마나 태풍으로 인해 갈라진 벽 등 균열되고 누수가 있는 곳의 시공을 도와주는 ‘빨리굽는 시멘트(2700원)’, ‘몰탈방수시멘트(7000원), ‘균열보수용 실리콘(4000~6000원대)’ 등 비교적 손쉽게 시공이 가능한 제품들이다.

벽면이나 창틀 틈새, 패널, 컨테이너 지붕, 찢어진 천막 등을 테이프만으로 간편하게 보수할 수 있는 ‘방수테이프(1만1000원)’, 틈이나 구멍에 끼우는 ‘구멍막이 테이프(1만700원)’ 등도 많이 찾고 있다.

양종수 옥션 리빙팀 팀장은 “오랜 불황과 고물가로 실속 소비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면서 가구와 의류는 물론 집 안 곳곳을 직접 수리하는 생활형 DIY 제품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며 “비교적 가격이 저렴하고 취향에 따라 지속적으로 재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으로 실속형 소비를 추구하는 ‘알뜰족’들에게 인기”라고 말했다.




● 창업도 불황형이 ‘대세’ ●

‘불황형 소비’는 소자본 창업 시장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서민형 먹을거리 시장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 서민형 업종은 대다수 점포 구입비와 개설비를 포함해 1억 원대 이하여서 생계형 업종으로 구분된다.

닭을 튀겨 소스에 버무린 닭강정을 테이크아웃으로 판매하는 일명 ‘컵닭’ 매장도 빠르게 늘고 있다. 소량 판매, 저가 전략으로 틈새를 뚫겠다는 전략이다. 닭강정 전문점 ‘줄줄이 꿀닭’은 꿀닭강정과 일본식 닭튀김 메뉴인 ‘가라아케’ 등을 작은 컵 1000원, 큰 컵 2000원, 작은 박스 6000원에 판매 중이다.

‘저가 빵집’도 불황이 낳은 창업 아이템이다. 대기업 베이커리 프랜차이즈보다 가격이 40% 정도 저렴하다. 보통 1000원 선인 소보루빵과 단팥빵 등을 500원에 팔고 있다. 프랜차이즈 빵집 이지바이·인디오븐·잇브랜드 등이 매장 수를 빠르게 늘리고 있다. 이들 빵집은 화려한 인테리어와 고급 포장재를 포기하고 가격 거품을 뺐다.

컨버전스 점포나 원스톱 매장 등과 같이 점포 매출을 늘리고 수익 구조를 다각화하기 위한 ‘복합 매장’들도 인기다.

젤라토 아이스크림 카페 카페띠아모는 아이스크림에 커피를 접목해 사계절 매출이 꾸준한 점포를 만들었다. 여름에는 아이스크림이 매출을 올리고 아이스크림의 비수기인 겨울에는 커피가 매출을 올릴 수 있다. 박가부대찌개·두루치기는 낮에는 부대찌개, 저녁에는 두루치기로 손님을 끌어 모으는 방식으로 시간대별 매출 편차를 극복한 것이 장점이다.

김갑용 이타창업연구소 소장은 “올 하반기에도 최소 투자비로 불황의 영향을 덜 받고 안정적인 영업이 가능한 불황형 업종이 주목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권오준 기자 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