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전반에 불황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웠다. 각종 경제지표도 암울하기만 하다.

2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기 대비 0.3% 성장하는 데 그쳤고 상반기 경제성장률도 2.5%에 불과했다. 주요 투자은행(IB) 10곳 중 9곳이 올해 성장률을 2%대로 예상하는 등 향후 전망도 밝지 않다. 국외로 눈을 돌려도 비슷한 상황이다.

전 세계적 불황이 구조적으로 오래갈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우울한 소식 일색인 가운데 소비 심리가 불안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지갑을 닫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주머니 사정이 나빠졌다고 해서 삶의 질을 포기하기도 쉽지 않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라이프스타일 자체를 ‘불황형’으로 바꿔야 한다.

소비 규모는 작되 만족도는 높은 ‘가치 소비’로의 전환이 그것. 소비 형태가 변화하면서 기업들도 ‘불황 극복형’으로 전환하고 있다.
#11월 결혼을 앞둔 박석준 씨는 최근 지방으로 발령이 나면서 회사에서 제공한 사택에 신혼살림을 차리기로 했다. 전셋집 마련에 쓸 예정이었던 자금으로는 작은 오피스텔을 분양받아 월세를 챙길 계획이다.

부동산 시장이 좋지 않아 임대가 잘될지 걱정이었지만 건설 업체에서 책임 임대 보장제를 통해 수익을 보장하기로 해 안심이다. 몇 년간 지방살이 후 이사 계획도 있어 가전·가구 등 덩치 큰 신혼살림은 렌털이나 중고를 이용하기로 했다.

예물·예단·예복 등도 간소화하고 백화점 대신 아울렛에서 구매하기로 했다. 대신 신혼여행만큼은 비용이 들더라도 평소 가고 싶었던 유럽으로 결정했다.



#결혼 7년 차 주부인 이정애 씨는 올여름 냉장고와 에어컨을 새로 구입했다. 보통 가전 수명이 10년이니 2~3년 더 쓸 수 있었지만 목돈을 들여 교체하게 된 것은 전기료 때문이었다. 사용이 빈번한 냉장고는 물론 유난히 더위를 타는 가족들 때문에 에어컨을 달고 사느라 매년 여름 전기료 폭탄을 맞았던 이 씨는 향후 몇 년간 전기료 절감 부분을 따져본 후 미리 교체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소비 패턴이 달라지고 있다. 이른바 ‘선택과 집중’을 통한 효율적 소비가 핵심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올 초 ‘해외 10대 트렌드’ 보고서를 통해 세계경제의 불황이 지속되면서 소비에서 구조조정이 일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의식주 소비 전반에 걸쳐 불필요한 소비는 줄이되 필요한 제품에 대해서는 품질과 가격 모두를 고려하는 합리적 소비가 강화될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실제로 불황에 따른 소비 위축이 곳곳에서 현실화되는 가운데 전반적 소비 규모는 줄이면서도 삶의 만족도는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이러한 소비 형태의 변화는 기업들의 마케팅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
‘선택과 집중’으로 소비도 구조조정

하나SK카드가 최근 1년간 회원의 카드 지출을 연령별·업종별·이용금액별로 분석한 소비 동향을 보면 ‘불황의 그늘’이 감지된다. 먼저 20대는 지난해 4분기부터 신용카드 이용액이 계속 줄어든 가운데 의류 업종이 상위 지출 업종 10위권에서 밀려나 눈길을 끌었다. 올

해 2분기 의류 관련 카드 지출은 110억 원으로 지출 항목 중 12번째를 차지했고 1분기에도 101억 원으로 상위 10위권 안에 들지 못했다. 20대의 카드 사용액에서 의류 항목이 10위 밖으로 밀려난 것은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옷차림에 가장 신경 쓰는 20대가 의류 소비를 줄인 반면 ‘가정 주거’ 카드 지출은 늘어났다. ‘가정 주거’는 보일러·가스·인테리어·장판·전자제품 등 주택 안을 꾸미는 모든 것을 의미하는데, 전월세 등 이사가 늘면서 관련 소비가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30대의 가정 주거 결제도 434억 원으로 지출 항목 10위에 올랐다. 유치원생·초등학생 등 어린 자녀들이 많은 30대는 교육비 항목 지출이 806억 원으로 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지출 항목 5위에 진입했다. 반면 30대 카드 지출 항목 중 10위권을 형성했던 보험료는 2분기 아예 상위권에서 사라지는 등 보험은 해약해도 교육비는 줄이지 않는 패턴을 보였다.

한편 대외 활동이 활발한 40대는 유흥비를 줄였고 50대도 보험료가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는 것을 넘어 비교적 당장 급한 소비 항목에서 밀려난 보험마저 해약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 것.

한편 비용을 적게 들이면서 만족도가 높은 소비 형태는 불황형 라이프스타일의 또 다른 축을 형성하고 있다. 가격 대비 품질과 디자인 등의 핵심 가치를 갖춘 ‘칩 시크(cheap-chic)’ 브랜드가 대세를 이루고 있고 절반 이하의 가격에 똑같은 가치를 보장받는 소셜 커머스 이용 사례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실제로 소셜 커머스 업체들은 매월 최고 거래액을 경신하며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는 등 불황 속 최대 호황을 누리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환경까지 생각한다는 심리적 만족까지 더한 중고품 활용 및 자전거 족이 늘고 있고 당장 목돈 들이지 않으면서도 새 제품을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렌털 시장이 급증하는 추세다. 이러한 흐름 속에 기업들도 불황 맞춤 상품 및 파격적 서비스를 출시하는 등 불황 극복형으로 전환하고 있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은 요즘 어렵다고 해서 예전처럼 소비자들이 단순히 ‘싼 것’에만 매달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지혜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불황기에는 무조건 싼 제품을 선호할 것이라는 통념과 달리 실제로 소비자들은 여전히 다양한 가치를 고려한다”고 말했다.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