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의 진화, 세계 공익재단 현장 보고서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Bill & Melinda Gates Foundation)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은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재단이다. 기금 집행 내역을 기준으로 미국 재단 전체의 40% 이상을 이 재단 하나가 차지할 정도로 독보적이다.

지난해 이 재단이 집행한 액수는 무려 3조 원가량에 이른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일반인 소액 기부는 받지 않고 오로지 빌 게이츠 부부가 개인적으로 출연한 자금을 중심으로만 운영된다는 것이다.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 세계 최대 규모 재단 … 퍼주기 식 자선은 없었다
복작복작하고 닳은 듯한 미국 동부의 도시에 비해 서부는 여유롭고 쾌적한 분위기다. 날씨 또한 너무 춥거나 덥지 않고 연중 쾌적한 날씨를 유지한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맨 파워에 의존하는 정보기술(IT) 업체들은 서부에 둥지를 트는 경향이 있다. 인터넷으로 전 세계와 연결이 가능한 사업 구조상 굳이 땅값 비싼 대도시를 고집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구글·페이스북 등 젊은 IT 기업들이 서남부 실리콘밸리에 들어서 있다면 서북쪽의 시애틀에는 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T모바일·닌텐도아메리카 같은 중견 IT 기업들이 있다.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이하 게이츠재단)은 시애틀의 랜드마크인 ‘스페이스 니들(Space Needle: 서울타워처럼 전망대가 있는 타워)’과 약 300m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다. 스타벅스 1호점이 있는 전통 시장 파이크 플레이스 인근에서 전용 모노레일로 5분 만에 갈 수 있다.

현재 게이츠재단이 사용하는 건물은 지난해 6월 완공돼 입주한 곳이다. 현재 1250여 명의 직원들이 상주하고 있는데, 25%의 직원은 돌아가면서 해외에 나가 있다고 한다. 새 건물에 입주하기 전에는 한곳에 수용할 곳이 없어 시애틀 내 5곳의 사무실에 흩어져 있었다.

그러나 각각의 옛 사무실은 1마일(1.6km) 이내 거리에 있어 업무적으로 큰 어려움은 없었다. 홍보팀 부국장인 멜리사 밀번(Melissa Milburn)은 “처음 입주해 반대쪽 창에서 얼굴이 보이자 신기해서 손을 흔들며 인사하기도 했다”고 얘기했다.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 세계 최대 규모 재단 … 퍼주기 식 자선은 없었다
‘시애틀 캠퍼스’로 불리는 게이츠재단 빌딩은 위에서 볼 때 흔히 보는 사각형 모양이 아니라 독특한 곡선 형태를 지니고 있다. 알파벳 V자의 모서리를 둥글게 다듬은 듯한 모양의 건물 2개가 엇갈리게 마주보고 있다.

언뜻 보면 그런 모양새가 와 닿지 않지만 미래 조감도를 보면 비로소 이해가 간다. 현재 바로 옆 부지에 새로운 건물을 올리기 위해 땅을 파고 있는 중인데, 비슷한 모양의 건물이 하나 더 세워질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마치 세 명의 사람이 팔을 껴안고 있는 모양새가 된다. 시애틀의 게이츠재단을 중심으로 전 세계를 감싸는 듯한 콘셉트를 지향한 것이다.



질병 예방에 가장 큰 액수 집행

게이츠재단의 활동이 워낙 다양하고 광범위하기 때문에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전 세계적으로 말라리아·에이즈 등의 질병 치료에서부터 식량문제 해결을 위한 농업 개발 및 지원, 교육 문제 해결을 위한 도서관 건립과 빈민 아동의 교육 지원까지 ‘자선 활동’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거의 대부분의 영역을 망라한다.

게이츠재단은 활동 영역을 총 4개의 프로그램으로 나누고 있는데, ▷글로벌 디벨로프먼트 ▷글로벌 헬스 ▷미국 내 프로그램 ▷비프로그램 자선 활동’이다.

밀번 부국장에 따르면 지난해 게이츠재단이 집행한 자선액은 34억 달러에 달한다(게이츠재단은 아직 2011년 연간 보고서를 발표하지 않았다). 약 4조 원 가까이 된다. 1인당 1만 원씩 나눠준다고 해도 4억 명에게 돌아가는 금액이다.

미국 재단센터에서 발행한 최근(2010년 12월) 자료에 따르면 2008년 자선 활동액 기준으로 뽑은 미국 내 톱 15 재단의 1위 역시 게이츠재단이다. 당시 게이츠재단의 자선 활동액은 27억 달러로, 2위인 윌리엄 앤드 플로라 휴렛 재단의 6억 달러와 큰 차이를 보였다.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 세계 최대 규모 재단 … 퍼주기 식 자선은 없었다
게이츠재단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최근 보고서인 ‘2010 연간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집행한 자선액 24억 달러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 것은 ‘글로벌 헬스(60%)’ 프로그램이다. 그중에서도 질병 치료(Infection Diseases)에 가장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5억2182만 달러를 집행했다.

질병 치료 중에서도 말라리아 치료에 1억5803만 달러, 결핵 치료에 1억1816만 달러를 썼다. 에이즈 치료는 ‘질병 치료’와 별도의 카테고리로 2억1202만 달러를 지원했다. 단일 질병으로는 에이즈 치료에 가장 많은 공을 들이고 있는 셈이다.

밀번 부국장에 따르면 현재 게이츠재단의 재산은 356억 달러(41조 원, 2012년 3월 1일 기준)에 달한다. 게이츠재단이 260억 원을 출연했고 이후 자산 운용 등을 통해 현재의 액수로 불어났다. 이렇게 돈이 많고 큰 규모지만 게이츠재단은 자선 활동이라고 해서 무조건 퍼 주는 방식은 지양한다.

밀번 부국장은 “이를테면 식량 지원이라고 해서 먹을 것을 사서 주는 것이 아니라 종자 개발을 지원해 농업 생산성을 높이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는 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 줄 뿐 고기를 직접 주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런 철학은 기부자들에게도 적용된다.

게이츠재단은 일반인들의 기부를 받지 않는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소액 기부를 받으면 그것을 처리하기 위한 직원이 훨씬 많아져야 하기 때문이다.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또 하나는 재단에 기부하지 말고 도와주고 싶은 곳에 직접 지원하는 것을 격려한다는 이유다. 기부자 또한 자선 활동을 하는 방식을 스스로 고민해 보라는 뜻이 담겨 있는 것이다.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 세계 최대 규모 재단 … 퍼주기 식 자선은 없었다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 세계 최대 규모 재단 … 퍼주기 식 자선은 없었다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 세계 최대 규모 재단 … 퍼주기 식 자선은 없었다
멜리사 밀번(Melissa Milburn) 홍보팀 부국장

“일반인 소액 기부는 받지 않아”

홍보팀(Media Relation)의 부국장(Deputy Director)을 맡고 있는 멜리사 밀번은 홍보 업계에서만 20년 넘게 일한 베테랑이다. 그는 한국에서 온 취재진을 리셉션에서부터 반갑게 맞아줬다. 밀번 부국장은 ‘원조 받는 국가’에서 ‘원조하는 국가’가 된 한국에 대해 빌 게이츠 명예회장이 굉장히 인상적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얘기했다.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 세계 최대 규모 재단 … 퍼주기 식 자선은 없었다
(그는 삼성전자의 윈도폰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기자는 윈도폰을 처음 봤다.)
재단 직원들은 윈도폰만 써야 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폰을 쓰는 직원도 있습니다.

빌 게이츠 명예회장과 멜린다 게이츠 의장은 여기에 자주 옵니까.

(당연하다는 듯)모두 사무실이 있고, 여기로 출근합니다. 두 사람의 사무실은 바로 옆에 붙어 있습니다.

그들의 사무실은 몇 층에 있나요.

에, 그건 보안 사항이라 얘기하기 곤란하네요.

일반인의 기부도 받습니까.

거절하지는 않지만 격려하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소액 기부를 받으려면 직원 수가 훨씬 많아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재단의 재산은 모두 개인 출연금입니까.

260억 달러가 재단에 들어온 돈이고 투자를 통해 현재 356억 달러에 이릅니다.

재단의 재산은 어떻게 관리합니까. 자산운용사에 맡기나요.

별도의 투자회사가 운용합니다. 마이클 라슨이라는 회사입니다.

재단의 CEO는 누가 맡고 있습니까.

제프 라이크스(Jeff Rikes)입니다. 빌 게이츠와 25년 동안 함께 일했고 재단에서는 3년 전부터 일하고 있습니다.


시애틀(미국)=우종국 기자 xyz@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