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철 교수의 고전에서 배우는 CEO 리더십
“세상에서 제일 빠른 아킬레스는 거북과의 경주에서 절대로 이길 수 없다. 공평하게 경기하기 위해 거북의 출발점을 100m 앞에 두기로 하자.그러면 일단 아킬레스가 거북을 이기기 위해서는 거북의 출발점까지 달려가야 한다. 그동안 거북은 얼마간 앞서 갈 것이다.
그러면 이번에는 거북이 간 만큼 또 따라가야 한다. 그동안 거북은 또 앞서 간다. 아킬레스는 거북을 그만큼 또 따라간다. 이런 식으로 하면 아킬레스는 영원히 거북 뒤를 따라갈 뿐 절대로 이길 수 없다.”
이 무슨 황당한 이야기일까요. 세상에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일이 현실에서 실제로 벌어지는가, 아닌가가 아니라 이러한 논리의 근거가 무엇이고 만약에 그것이 잘못된 논리라면 그것을 어떻게 논파할 것인가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제논의 이 역설을 받아들여야 할까요. ‘담합’ 아닌 ‘자극’이 윈-윈하는 길
2500년 전 제논은 ‘아킬레스와 거북’ 역설에서 세 가지 가정을 내립니다. 첫째, 아킬레스와 거북이 항상 일정한 속도로 움직인다는 겁니다. 둘째, 아킬레스는 거북과 동일한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겁니다. 셋째, 이 세상은 정지해 있다는 세계관입니다.
우리는 이 세 가지 가정 모두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아킬레스와 거북’의 역설은 우리의 직관과 현실 경험을 배반하기 때문에 절대로 진리일 수 없습니다. ‘유한한 거리는 무한하게 쪼개질 수 없다’는 명제가 수학적으로 증명된 것은 현대 수학자들이 무한 개념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난 후의 일입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현실은 간단한 가정에 의해 정리되기에는 너무나 복잡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론이 필요합니다. 제논의 역설 자체는 오류로 쉽게 판명되지만 그것으로부터 어떤 교훈을 얻어 낼 수 있는지는 여전히 우리의 몫으로 남습니다. 철학자들은 쉽게 풀리지 않는 과제를 우리에게 제시하고 우리는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지혜를 얻게 되는 겁니다.
2500년 전 이탈리아 남부 엘레아에서 태어난 제논은 아주 괴팍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폭군을 싫어해 그의 귀를 물어뜯고 그의 얼굴에 침을 뱉다가 목이 잘려 죽었다고 합니다. 원래 상인이었는데 배가 파선되는 바람에 아테네로 가면서 운명이 자신을 철학으로 인도했다고 생각합니다.
그곳에서 철학 강의를 하면서 명강사로 이름을 날립니다. “철학자 제논보다 더 도덕적으로 엄격하게”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는 강직하고 도덕적인 성격의 소유자인 것 같습니다. 제논이 “가장 훌륭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신에게 묻자 돌아온 답변은 “죽은 자들과 어울려야 한다”였습니다.
그래서 선배 철학자들의 고전을 연구했다고 합니다. 오늘날에도 적용되는 말입니다. 앞선 철학자들의 고전을 읽지 않고 하루아침에 새로운 생각을 해내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마라톤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는 어떤 훈련이 필요할까요. 기록 경신을 위해서는 탁월한 실력을 갖춘 파트너가 있어야 합니다. 자신에게 끊임없는 자극을 줄 수 있는 경쟁자이자 동반자가 필요합니다. 자신과 늘 가까이 있으면서 경쟁하고 경쟁하면서 같이 가는 친구가 필요합니다.
사실 우리의 가장 치열한 경쟁자는 가까운 친구들입니다. 서로 성향도, 능력도, 나이도 비슷한 사람들끼리는 살아가는 과정이나 목표도 비슷한 경우가 당연히 많습니다. 많은 점에서 서로 비교되는 것이죠. 서로 경쟁할 수밖에 없는 구도 속에서는 서로가 윈-윈하는 길은 서로 담합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자극을 주는 것밖에 없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빠르다는 아킬레스도 그 느림보 거북에게 패배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제논의 설정에서는 아킬레스가 거북의 뒤를 졸졸 따라가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얻는 교훈은 앞선 경쟁자를 단순히 졸졸 따라가서는 절대로 이길 수 없다는 겁니다.
거북이 하지 않는 전략을 펼쳐야지 마냥 모방만 해서는 안 됩니다. 동종 업계에서 하고 있는 베스트 프랙티스를 따라하는 것은 모방이고 표절입니다. 이종 업계에서 하고 있는 베스트 프랙티스를 자신의 업종에 맞도록 고치는 것은 창조적 벤치마킹입니다. 아킬레스가 거북이 간 뒤만 따라가겠다고 결심하는 한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의도적 ‘2등 전략’의 장점
우리 사회에 요즘 자전거 바람이 서서히 부는 것 같습니다. 자전거전용도로가 곳곳에 생기고 나서 자동차와 섞이지 않고 자전거를 탈 수 있다는 것이 안전에 중요하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는 것 같습니다. 물론 사람과의 충돌 위험성도 줄어드는 겁니다. 그런데 자전거도로를 달리다 보면 다른 자전거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앞선 자전거가 공기를 갈라놓고 가기 때문에 그 뒤를 따라가면 그만큼 공기저항을 덜 받으면서 달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종의 프리 라이딩을 하는 거죠. 그래서 자전거든, 쇼트트랙이든, 마라톤이든 기록경기에서 의도적으로 2등 전략을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줄곧 뒤따라가다가 결승점 근처에서 막판 스퍼트를 내면서 휘익 따라잡아 버리는 거죠. 뒤따라가면 앞선 경쟁자를 이겨야겠다는 목표도 분명히 생깁니다.
반면 항상 앞장서 달리면 자신의 경쟁자가 바로 뒤에 붙어 있는지 저만치 떨어져 있는지 볼 수 없습니다. 목표가 불분명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적이 보이지 않는 셈입니다. 그래서 뒤를 힐끗 힐끗 바라보는 일이 생기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귀중한 에너지를 소비하게 만드는 요인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심리적으로 계속 불안한 상태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언제라도 추월당하지 않을까’하는 두려움 말입니다. 동시에 그 반대되는 현상도 있게 됩니다. 바로 방심하게 되는 겁니다. ‘난 현재 계속 1등으로 달리고 있다. 경쟁자가 어디 있는지는 관심없다’는 식의 방심은 절대 금물인 이유를 잘 살펴보세요.
제논의 역설에서는 아킬레스나 거북은 둘 다 일정한 속도로 달린다는 가정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에서는 일정한 속도로 달리는 경쟁자는 없습니다. 더 빨리 달릴 수 있는 데도 일부러 천천히 달리기도 하고 자신의 능력을 살짝 오버할 정도로 빨리 달리기도 합니다. 왜일까요. 경쟁자를 혼란에 빠뜨리기 위한 거죠.
이 세상을 정지해 있는 것으로 본 제논의 세계관에 따르면 운동은 착각에 불과합니다. 제논은 이 세상을 완전히 잘못 본 걸까요. 순간이 영원한 것이라고 생각해 보면 나름대로의 번뜩이는 직관을 주기도 합니다. 우리가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꽃을 내려올 때 볼 수 있는 이유가 뭘까요.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어서가 아니겠습니까.
정상을 향해 허겁지겁 가다 보면 목표에만 모든 신경이 쏠립니다. 그러나 시간을 천천히 쓰면 역설적으로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게 됩니다. 동영상은 우리에게 사진보다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합니다. 그래서 하드디스크에서 차지하는 용량도 더 많습니다. 그러나 순간을 포착한 한 장의 사진에서 우리는 때로 인생의 의미를 읽어내기도 합니다.
정지된 세계는 현상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해 가기만 하니까요. 그러나 이 바쁘게 돌아가는 현실 속에서 정지된 순간을 음미하는 것이야말로 마음의 평안을 얻는 길입니다. 운동 속에서 정지를 느끼고 정지 속에서 운동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인생을 의미 있게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김형철 연세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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