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전 세계 PC를 지배해 온 마이크로소프트가 모바일 시대에도 옛 영광을 이어갈 수 있을까. 최근 마이크로소프트의 미래와 관련해 엇갈리는 뉴스들이 연이어 터져 나오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 2분기에 주식시장 상장 이후 26년 만에 처음 적자(4억92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영업 부진에 빠진 계열사 지분의 손실 처리 등을 적자 원인으로 꼽았지만 시장의 반응은 싸늘했다. 게다가 8월 20일에는 정보기술(IT) 버블 당시 세운 시가총액 세계 기록마저 애플에 내주고 말았다. 모바일 시대의 새로운 제왕이 누구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하지만 곧이어 반전의 계기가 마련됐다. 공교롭게도 25년 만에 회사 로고를 전격 교체한 다음날 애플이 ‘세기의 특허 소송’에서 삼성전자에 압승을 거두면서 마이크로소프트가 최대 수혜자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언뜻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번 특허 분쟁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스마트폰 시장의 치열한 경쟁 구도를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삼성-애플 평결’의 최대 수혜자로 꼽히는 이유 "부활 노리는 IT 제왕…‘대공세’ 예고"
25년 만에 로고 교체 …‘새로운 시대' 선언

현재 스마트폰 운영체제(OS) 시장은 애플 iOS와 구글 안드로이드가 양분하고 있다. 애플은 iOS를 탑재한 아이폰을 독점 생산한다. 반면 구글은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안드로이드를 자유롭게 쓸 수 있게 해 세력을 확장했다.

문제가 된 삼성전자의 갤럭시 시리즈가 바로 안드로이드 진영의 대표 주자다. 삼성전자가 지식재산권 침해로 1조 원이 넘는 거액을 배상하게 되자 안드로이드에만 의존하던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새로운 대안으로 마이크로소프트의 모바일 OS 윈도폰을 선택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실제로 삼성과 소송에서 애플은 자사의 지식재산권을 침해하지 않는 스마트폰의 예로 윈도폰을 탑재한 신형 노키아폰을 들었다.

그동안 마이크로소프트가 새롭게 부상한 모바일 시장에서 별다른 경쟁력을 입증하지 못한 것은 분명하다. 전 세계 가정과 사무실의 거의 모든 PC에 ‘윈도’와 ‘오피스’가 깔려 있지만 스마트폰과 태블릿 PC에선 존재감이 미미하다.

이는 마이크로소프트가 1996년 소형 모바일 기기용 OS인 윈도CE를 발표했고 이를 기반으로 2000년 일찌감치 윈도모바일을 내놓았다는 점에서 놀라운 일이다. 2007년까지만 해도 모바일 OS 시장의 절반 가까이를 윈도모바일이 차지했다. 하지만 그해 애플이 혁신적인 스마트폰 아이폰을 내놓으면서 42%에 달하던 시장점유율이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2010년 마이크로소프트가 패배를 설욕하기 위한 반전 카드를 빼들었다. ‘타일’이라는 메뉴를 통해 벽돌을 쌓듯 다양한 기능을 불러오고 그 안에서 콘텐츠가 업데이트되는 윈도폰7을 내놓은 것이다. 윈도모바일이라는 이름도 버리고 6.5버전까지 나왔던 윈도모바일과의 호환성마저 포기한 극약 처방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또 한 번의 참패로 드러났다. 윈도폰7을 사용해 본 전문가들은 높은 점수를 줬지만 소비자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지난 1분기 미국 시장에서 윈도폰의 시장점유율은 겨우 2%에 불과했다. 이전 버전인 구식 윈도모바일이 차지한 점유율(4.1%)보다 낮은 수치였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삼성-애플 평결’의 최대 수혜자로 꼽히는 이유 "부활 노리는 IT 제왕…‘대공세’ 예고"
25년 만의 로고 교체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마지막 반격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빌 게이츠 전 회장은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한 후 몇 차례 로고를 바꿨다. 그러다 1987년부터 오른쪽으로 약간 기울어진 굵은 서체의 위압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팩맥 로고를 줄곧 고수해 왔다. 1987년 마이크로소프트는 상장한 지 채 1년도 안 된 기업이었다. 윈도는 두 번째 버전 출시를 앞두고 있었고 인터넷은 거의 사용되지 않았으며 휴대전화도 쉽게 접하기 어려운 고급 제품으로 통했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소비자들이 키보드와 마우스를 단 PC 대신 터치 기반의 스마트폰과 태블릿 PC를 더 선호한다. 또한 소프트웨어를 구매해 개인 PC에 설치하는 것보다 인터넷을 통해 필요한 것을 얻는데 훨씬 더 익숙하다. IT 산업의 중심이 PC에서 모바일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마이크로소프트가 모바일 분야에서 제대로 입지를 마련하지 못하면 언젠가는 시장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다는 걸 의미한다.

8월 23일 공개한 새 로고는 마이크로소프트가 10월 출시 예정인 윈도8과 이를 탑재한 태블릿 PC 서피스에 얼마나 큰 승부를 걸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새 로고는 윈도8과 동일한 메트로 스타일이다. 서체 자체도 윈도8 로고와 같은 세고체를 채택했다. 윈도8은 깔끔한 외양과 함께 교통 표지판처럼 그래픽보다 텍스트에 중점을 둔 인터페이스를 제공한다. 지하철 광고를 닮았다고 해서 ‘메트로’라고 불린다. 마이크로소프트 관계자는 “새 로고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새로운 시대를 나타낸다”고 말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지난 2년을 윈도8 개발로 보냈다. 이 제품은 처음부터 모바일 시장을 염두에 두고 설계된 야심작이다.

올 초 소비자 프리뷰 버전이 공개된 윈도8에서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 우선 윈도95 때부터 고수했던 시작 버튼이 사라졌다. 물론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커서를 좌측 하단으로 이동하면 시작 버튼이 떠오른다. 이를 누르면 시작 메뉴가 뜨는데, 기존과 달리 메트로 인터페이스다.

기존 윈도 유저 인터페이스(UI)는 키보드와 마우스 사용에 최적화돼 있었다. 이 때문에 화면을 터치하는 태블릿 PC나 스마트폰에는 잘 맞지 않았다. 메트로 UI는 터치 조작에 최적화된 구성으로 이미 스마트폰 OS인 윈도폰7에 ‘타일’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적용돼 호평을 받았다. 애플의 공동 창업자인 스티브 워즈니악도 메트로 UI에 대해 “직관적이고 아름답다”고 평가했다. 윈도8에서 이를 PC에 확대 적용한 것이다.



“ 스마트폰과 달리 태블릿에서는 안드로이드도 큰 힘을 쓰지 못한다. 아이폰에 대항하는 갤럭시처럼 아이패드에는 아직 진정한 경쟁자가 없는 것이다.”



윈도8·서피스로 모바일 시장 정조준

윈도8의 가장 큰 강점은 PC와 태블릿 겸용이라는 점이다. PC와 태블릿에서 동일한 사용자 환경을 제공하고 한 번 내려 받은 애플리케이션을 PC와 태블릿에서 함께 쓸 수 있다. 윈도8은 애플의 앱스토어에 해당하는 ‘마켓플레이스’ 서비스를 지원한다. 스티브 발머 최고경영자(CEO)는 “윈도8은 단순한 윈도의 다음 버전이 아니라 윈도의 재탄생”이라고 말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8을 탑재한 태블릿 PC를 직접 만들기로 한 것도 놀라운 변화다. 이 회사는 그동안 델·휴렛팩커드·레노버 등 파트너사에 하드웨어 제조를 맡기면서 협력 관계를 유지해 왔다. 자체 태블릿 출시는 이들의 매출 기반을 위협할 수 있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가 처한 상황은 극단적인 방법도 불사할 만큼 긴박하게 돌아간다.

올해 1억1890만 대 판매가 예상되는 태블릿 PC 시장을 3분의 2가 넘는 점유율로 애플이 독식하고 있다. 스마트폰과 달리 태블릿에서는 안드로이드도 큰 힘을 쓰지 못한다. 아이폰에 대항하는 갤럭시처럼 아이패드에는 아직 진정한 경쟁자가 없는 것이다. 만약 윈도8을 탑재한 서피스가 아이패드의 대항마로 자리 잡는다면 모바일 시장에서의 전세 역전도 얼마든지 가능한 셈이다. 아이디어 넘치는 키보드, 다른 기기를 연결하기 위한 포트, 오피스 등 마이크로소프트 애플리케이션과의 완벽한 호환성을 갖춘 서피스는 노트북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최초의 크로스오버 태블릿’으로 불린다.

삼성전자와 애플의 특허 전쟁이 뜻하지 않게 가져다준 기회는 스마트폰보다 태블릿 PC 시장에서 먼저 열릴 가능성이 높다. 물론 기회는 말 그대로 기회일 뿐이다. 전문가들은 “제조사들은 삼성전자의 패배 여파로 리스크 분산 차원에서 마이크로소프트의 모바일 OS에 관심을 가질 수 있지만 소비자들은 그런 걸 고려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이는 윈도폰7의 실패에서 마이크로소프트가 뼈아프게 절감한 부분이다.

정지훈 명지병원 IT융합연구소장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우선 내년 모바일 시장에서 의미 있는 3위에 오르느냐가 중요한 관전 포인트”라고 말했다.



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