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휴대전화·아이패드·스마트TV 이후 또 하나의 혁신적 돌파구다.’ 중국의 가전 업체 TCL은 최근 인터넷 서비스 업체 텅쉰(텐센트)과 공동으로 개발한 모바일 단말기 아이스 스크린(Ice Screen)을 발표하면서 보도 자료에 이 같은 문구를 넣었다.

‘혁명적’이라는 표현까지 반복하면서 ‘중국 제조(Made in China)’가 ‘중국 창조(Create in China)’로 철저하게 바뀌는 기폭제가 될 것이라는 기대도 숨기지 않았다. 음향과 동영상을 클라우드 컴퓨팅(서버에 정보를 저장한 뒤 단말기에 관계없이 필요할 때 사용할 수 있는 기술) 방식으로 즐길 수 있는 대형 모바일 단말기 시장의 공백을 세계 처음으로 채웠다는 자평도 했다.

지난 8월 23일부터 텅쉰의 QQ 쇼핑몰과 TCL 웹사이트 등에서 예약 접수를 받기 시작한 ‘아이스 스크린’은 아직 열기는 감지되지 않고 있지만 TCL 측은 판매 6개월 안에 100만 대를 팔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26인치 크기의 이 단말기는 독자 개발한 운영체제(OS)를 탑재했다. 당초 아이스크린(I-Screen)으로 하려고 했지만 중국에 이미 선등록돼 있어 아이스 스크린으로 바꿨다. 중국 이름은 아이스크림을 뜻하는 빙지링이다. 가격은 1999위안(36만 원)으로 애플의 아이패드보다 싸다.
[중국] 업종 간 경계 허물기 가속화 "손잡기 열풍 …TV·통신·인터넷 통합 추진"
아이패드와 같은 돌풍을 일으킬지는 두고봐야겠지만 중국 언론들은 “휴대전화와 컴퓨터의 중간 제품인 아이패드처럼 휴대전화와 TV의 중간 제품인 아이스 스크린이 블루오션이 돼 세계시장을 흔들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이런 기대를 반영해서인지 저녁에 가진 제품 발표 기자 회견 다음날인 8월 23일 TCL 주가는 무려 11% 뛰었다. 리둥성 TCL 회장은 아이스 스크린이 잘 팔리면 기술을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리둥성 회장과 마화텅 텅쉰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가 각자 개인 자격으로 상대 회사 지분을 갖고 있을 만큼 각별한 인연을 맺고 있는 게 협력의 배경으로 꼽힌다. 1년여 전 TCL은 아이스 스크린에 대한 구상을 끝내고 인터넷 사용자들의 속성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 텅쉰을 파트너로 끌어들였다.

텅쉰은 중국 최대 인터넷 메신저인 QQ 사용자 수가 7억 명에 육박할 정도다. 온라인 게임에선 이미 최대 업체로 올라섰다. 리둥성 회장은 “텅쉰도 이번 합작을 통해 새로운 고객군을 확보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이스 스크린은 중국에서 최근 거세게 불고 있는 인터넷 업체와 하이드웨 업체 간의 합종연횡의 연장선에서 나온 것이다.

KOTRA 상하이무역관에 따르면 텅쉰은 메신저·음악·영화·게임 등 QQ 모바일 서비스 통합 플랫폼을 화웨이·중싱·하이신이 생산한 휴대전화에 탑재할 계획이다. 앞서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는 지난해 7월 자체 개발한 아리윈이라는 OS를 탑재한 ‘아리윈폰’을 중국 토종 휴대전화 기업 텐위와 함께 내놓았다. 중국 최대 포털 사이트인 바이두도 델·창훙과 협력해 올해 말 자체 개발한 소프트웨어를 탑재한 휴대전화를 출시하기로 했다.

이런 트렌드는 중국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구글이 모토로라 휴대전화 사업을 인수한 것이나 마이크로소프트가 노키아와 협력하기로 한 것은 소프트웨어 업체와 하드웨어 업체 간 영역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IBM이 PC 사업을 중국 레노버에 넘기는 등 한때 하드웨어 업체의 소프트웨어화가 화두가 된 적이 있지만 이젠 소프트웨어 업체가 하드웨어 업체까지 끌어안는 추세다. 애플의 최대 라이벌은 삼성전자가 아니라 페이스북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클라우드 컴퓨팅 기술은 휴대전화·TV·컴퓨터 등 단말기의 경계선을 더욱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 더욱이 중국은 3망(TV·통신·인터넷) 통합을 추진 중이다. 업종 간 경계 허물기가 가속화될 것을 예고한다. 동종 업종의 라이벌만 경계하다가는 큰코다칠 수 있는 시절이 오고 있다.


베이징=오광진 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