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훈 명지병원 IT융합연구소 소장

“삼성에 오히려 위기보다 기회가 될 겁니다.” 정지훈(42) 명지병원 IT융합연구소장의 분석은 첫마디부터 예상을 빗나갔다. 삼성전자가 애플과 벌인 특허 소송에 패해 1조2000억 원에 달하는 배상금을 물어야 한다는 태풍에 버금가는 메가톤급 뉴스가 한반도를 덮친 이후 그 파장을 가늠하기 위해 만난 자리였다.

천문학적인 배상금을 두드려 맞은 삼성전자가 오히려 좋은 기회를 잡았다니 언뜻 이해가 안 되는 말이다. 정 교수는 “애플이 당초 예상을 뛰어넘는 ‘과도한’ 승리를 거두면서 애플이 지나친 것 아니냐는 여론이 미국 내에서도 커지고 있다”며 “아이폰 추종자와 갤럭시 추종자를 뺀 다수의 중간층이 애플에 반감을 갖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전망했다.

정 교수는 국내의 대표적인 정보기술(IT) 전문가이자 미래 트렌드와 전략을 아우르는 통섭적 지식인으로 꼽힌다. 의대 출신이면서도 IT 전문가로 더 유명하다는 점에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대학원 원장과 비슷한 이력을 갖고 있다. 지난 8월 28일 광화문에서 강연을 끝내고 나오는 그를 만났다.
[스페셜 인터뷰] “삼성전자,  전투 졌지만 전체적으론 이익”
이번 소송 결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삼성전자가 질 것이라는 건 대부분 예상한 일이죠. 한국 언론이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 뿐이지 미국 현지 분위기는 벌써 오래전에 애플이 이길 수밖에 없는 소송이라는 쪽으로 굳어지고 있었어요. 다만 애플의 디자인 특허가 과도하게 인정됐다는 것이 충격이죠. 어느 정도는 기각될 것이라고 예상했거든요. 그러다 보니 배상 액수가 생각보다 커졌어요.

국내 법정에서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는데요.

특허를 보는 관점의 차이죠. 한국은 통신 특허를 상당 부분 인정하고 디자인 특허는 인정하지 않았어요. 삼성전자에 유리하게 판결이 나온 거죠. 디자인 부분은 사실 앞으로 많은 논란이 있을 거예요.

룩앤드필(look and feel: 사용자의 제품 체험과 겉모양·인터페이스의 주된 기능), 또는 트레이드 드레스(trade dress: 독특한 외형 디자인)는 제품을 봤을 때 ‘이게 무엇이다’라는 그런 느낌을 말해요. 상당히 주관적인 측면이 있는 것이죠.

유저 인터페이스(UI)도 사실 특정인이 처음부터 하나하나 직접 만들었다기보다 옛날부터 있던 걸 그냥 가져다 쓴 것 아니냐는 반론을 펼 여지가 있어요. 미국도 이번처럼 디자인 특허를 적극적으로 인정해 준 사례가 거의 없었어요.

그래서 바운스백(화면을 맨 아래까지 내리면 다시 튕겨져 화면의 끝임을 알려주는 기술)처럼 특별한 것만 인정될 것이라고 본 거죠. 한국 법원이 통신 특허를 인정한 것은 좀 이상한 경우고요.

삼성전자의 통신 특허 주장이 잘못된 건가요.

통신은 원래 공공재로 봐야 해요. 누군가 가로막으면 비켜갈 방법이 없거든요. 그래서 통신 분야에서는 독점을 막고 경쟁을 유도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죠. 경쟁사를 괴롭히기 위해 표준 특허를 쓰는 것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예요. 한국 법정이 왜 그런 판정을 내렸는지 아마 전 세계가 궁금해 할 겁니다.

소장님은 소송 결과를 어떻게 예상하셨습니까.

삼성전자의 통신 특허 주장이 기각되고 애플의 디자인 특허도 상당 부분 기각돼 결과적으로 애플이 이겨도 조금 이길 것으로 봤어요. 가장 일반적인 전망이죠.

왜 1조200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배상금이 나왔다고 보십니까.

배심원들이 디자인의 가치를 높게 평가했어요. 그만큼 시대가 바뀐 것이죠. 하지만 이번 평결을 과대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애플이 기본적으로 재판 전략을 잘 짰거든요. 애플은 ‘삼성이 의도적으로 대놓고 베꼈다’, ‘우연히 된 게 아니라 몇 달 동안 정말 치밀하게 말도 안 되는 수준으로 베꼈다’는 걸 입증하는 데 초점을 맞췄어요.

단순히 모양뿐만 아니라 광고 전단지의 비율이나 색깔, 광고 방식, 포장지 케이스, e메일 주고받은 것까지 모든 증거를 다 동원했죠. 반면 삼성전자는 ‘누구나 생각할 수 있고 옛날부터 다 있는 것 아니냐’, ‘그걸 어떻게 특허라고 하느냐’는 쪽으로 논리를 폈어요. 상당 부분 일리가 있는 주장이지만 갤럭시S는 베낀 게 너무 티가 났어요. 3개월 동안의 짧은 개발 과정도 그렇고요.
[스페셜 인터뷰] “삼성전자,  전투 졌지만 전체적으론 이익”
“ 단순화하면 특허제도를 통해 소비자의 돈이 변호사에게 넘어가는 거죠. 혁신을 추구해야 하는 특허법이 악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는 이유예요. ”

갤럭시S를 내놓을 때 어떤 상황이었나요.

휴대전화 시장이 급격하게 스마트폰으로 넘어갔어요. 한 달 한 달이 급한 급박한 상황에서 어쨌든 당장 시장에서 승부를 봐야 했어요. 벤치마킹해서 똑같이 만드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이었죠. 어찌 보면 그때 그걸 잘해서 지금 이만큼 인지도를 쌓고 성공을 거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한 해외 전문가는 이번 판결은 삼성의 승리라고도 말해요. 배상금으로 1조 몇 천억 원 주더라도 그 짧은 시간에 따라잡아 낸 이익 등을 생각하면 남는 장사라는 거죠. 저도 같은 생각이고요.

삼성전자가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합니까.

이번 소송에서 최악의 결과는 삼성전자가 지고 배상금도 적게 나오는 것이었어요. 삼성전자는 공식적으로 ‘카피캣’ 브랜드로 찍히고 애플은 돈을 별로 못 챙기는 상황이죠. 그러면 애플이 언론이나 여론의 동정표를 얻게 됩니다. 지금은 전혀 다른 상황이에요.

애플이 과하게 승리한 거죠. 애플이 지나치다는 여론이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나오고 있어요. 미국인들조차 여기에 동조해요. 애플이 힘을 앞세우는 ‘깡패’ 이미지를 얻게 된 겁니다. 오히려 삼성전자는 이번 평결로 면죄부를 얻었어요. 어차피 돈을 지불하거든요. 삼성전자가 이런 흐름을 잘 활용해야 해요.

삼성전자의 위기가 아니라는 말씀인데요.

오히려 좋은 기회가 될 겁니다. 원래 애플 추종자나 갤럭시 추종자들은 움직이지 않아요.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중간층이 중요하죠. 이번 소송으로 중간층이 애플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질 가능성이 더 커졌어요.

삼성전자가 전투에서는 졌을지 몰라도 전반적인 판도에서는 오히려 얻은 게 더 많아요. 물론 최신 제품인 갤럭시 S3 판매 금지 소송이 변수지만 특허권 자체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미국 분위기로 볼 때 실현될 가능성은 크지 않아요.

삼성이 롱텀에볼루션(LTE)으로 반격할 것이라고 하는데요.

쓸데없는 짓이에요. LTE가 아직 표준 특허가 아니기 때문에 그것으로 애플을 공격한다는 건데, 앞서 말했듯이 통신은 공공재적 성격이 강해요. 삼성이 그걸 무기화하면 여론은 다시 돌아설 겁니다. 오히려 애플을 도와주는 꼴이죠.

현행 특허제도에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너무 많은 것을 특허로 인정해 준다는 겁니다. 혁신을 보호한다는 애초 취지가 퇴색됐어요. 특허 괴물들이 하는 것처럼 일단 특허를 왕창 내놓고 그걸로 보호막을 쳐서 시장의 경쟁 자체를 가로막는 전략이 먹혀들고 있어요.

특허를 유지하고 보호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변호사 비용이 들어갑니다. 소위 특허 전쟁에서 돈을 버는 사람은 결국 변호사들이고 가장 최후의 피해자는 소비자예요. 단순화하면 특허제도를 통해 소비자의 돈이 변호사에게 넘어가는 거죠. 혁신을 추구해야 하는 특허법이 악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는 이유예요.

특허제도의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 않습니까.

현재 특허 문제는 작은 혁신 기업이나 벤처기업과 관련된 게 아니에요. 돈으로 특허 장사를 하는 특허 괴물과 애플이나 삼성전자 같이 돈 많은 대기업들이 문제죠. 개인이나 작은 기업들은 특허 유지에 들어가는 그 많은 비용을 감당할 수 없거든요. 대기업들은 특허를 마구잡이로 수천 개, 수만 개씩 확보해 놓고 독점하려고 들어요.

이게 과연 옳은 일이냐 하는 거죠. 그래서 판결이 매우 중요합니다. 혁신 보호라는 점에서 특허제도 자체를 없앨 수는 없거든요. 법원에서 경쟁을 막거나 과도한 것들은 걸러내 줘야 해요. 그러면 비용 대비 효과 없기 때문에 특허를 마구잡이로 사들여 악용하는 일이 없어질 거예요.

미국 특허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하는데요.

미국은 다른 나라보다 특허를 쉽게 내줍니다. 자연 다툼의 여지가 많아요. 반면 프랑스 등 유럽은 특허 심사를 오래 하고 잘 내주지 않아요. 다른 의도를 갖고 있거나 지나치게 마구잡이로 걸러 놓는 것은 다 기각해 버리죠. 문제는 가장 큰 시장인 미국의 특허제도가 법리적 다툼이 많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거예요. 최근 특허 분쟁이 많아진 이유 중 하나죠.

삼성전자가 결국 구글을 대신해 싸운 것이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독자 운영체제(OS)의 필요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독자적인 OS는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서도 꼭 필요합니다. 물론 독자 OS 자체가 성공할 가능성은 매우 낮아요. 최소한 향후 3~5년 내에는 성공 가능성이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OS를 개발하는데 매진하다 보면 거기서 얻는 부산물이 의외로 많아요.

OS 최적화나 안드로이드 차별화에 접목할 수 있거든요. 스마트폰 말고도 앞으로 스마트 가전이나 하드웨어와 OS가 융합된 제품 시장이 커질 텐데 그 분야의 기술력을 확보한다는 측면도 있죠. OS 개발은 당장 돈이 안 되더라도 계속해야 하는 일이죠.
[스페셜 인터뷰] “삼성전자,  전투 졌지만 전체적으론 이익”
삼성전자에 어떤 변화가 필요합니까.

일단 전화위복의 계기는 마련됐어요. 삼성전자는 최후 변론에서 시장에서 혁신을 해야지 법정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서는 곤란하다고 주장했어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 말에 별로 진정성을 느끼지 못했어요. 왜일까요. 삼성이 그동안 해온 것들과 잘 맞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시장에서의 혁신을 주장했지만 사실 혁신보다 추적자 이미지가 강했고 사용자를 우선하기보다 탐욕스럽다는 인상을 줘 왔거든요.

이번 평결이 이런 이미지를 상당 부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어요. 우선 최후 변론에서 한 말을 실천해야죠. 조금의 리스크를 안더라도 과감하게 혁신을 추구하고 다른 기업에도 기회를 주면서 같이 공생하는 생태계를 만들어 가는 모습을 보여줘야죠. 그러면 자연히 삼성 추종자들도 더 많아질 겁니다. 이런 이미지를 최대한 활용하는 게 소송에서 이기는 것보다 훨씬 중요해요.

모바일 시장의 경쟁 구도에 어떤 변화가 생길까요.

결론적으로 큰 변화는 없을 겁니다. 공급자 측면에서 보면 마이크로소프트가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어요. 리스크 분산 차원에서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윈도폰을 선택하면서 마이크로소프트에 더 많은 기회가 생길 수 있거든요. 하지만 역시 소비자들의 반응이 문제죠. 소비자들은 공급자와 다르거든요. 여전히 윈도폰에 냉담할 수도 있어요.


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 | 사진 서범세 기자 joyci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