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시각, 5번 출구 앞에서도 출구를 잘못 나온 중국인 여성 2명 또한 가로수길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중국어로 된 여행 가이드를 한참 본 끝에 다른 출구로 나와야 가로수길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부지런히 신사역으로 다시 내려간다.
영동호텔 건너편 가로수길 입구에는 국적이 달라 보이는 젊은 외국인 7명이 모여 있다. 인종도 다양하다. 이들에게 말을 걸어보니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어학당 학생들이라고 답했다. 캐나다에서 왔다는 낸시 테일러(24) 씨는 “오늘 학교가 있는 신촌을 떠나 강남 스타일을 즐기기 위해 이곳에 왔다”며 “왠지 이곳에서 운이 좋으면 연예인을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가로수길에 있는 그 어느 카페나 주점에 들어가도 주말 밤을 즐기고 있는 외국인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최근 가로수길은 서울에서 외국인에게 가장 인기가 있는 스폿 중 하나다. 최근 몇 년 전부터 발 디딜 틈 없이 젊은이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가로수길의 최근 달라진 모습은 외국인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는 것이다. 명동과 홍대 외에 서울에서 가장 세련된 거리에서 ‘강남 스타일’을 즐기려는 외국인들이 늘고 있다. 평일 낮에는 쇼핑과 에스테틱 그리고 우아한 카페를 즐기는 일본인이 거리에 가득하다고 이곳 상점 관계자들은 말한다.
강남의 대표적인 관광지는 도산공원 주변의 압구정·청담동이다. 일본인들이 한국 관광 정보를 얻는 코네스트(konest.com)의 ‘서울 인기 지역 순위’에는 명동과 동대문에 이어 압구정·청담동이 3위에 올라 있다. 이곳에는 우선 주요 연예 기획사들이 들어서 ‘한류’ 아이돌의 본거지를 돌아보려는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몰리고 있다. 또한 국내 정상급 성형외과들이 몰려 있는 이 지역에 의료 관광객들이 많이 찾았다. 명품 숍이 모인 청담동 사거리는 의외로 선진국 외국인들에게는 어필하지 못했다. 뉴욕·도쿄·파리 등 대도시라면 비슷비슷한 명품 브랜드가 몰려 있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인들에게는 강남의 명품 거리는 쇼핑의 천국으로 여겨지고 있다. ‘강남 스타일=한류 연예인 스타일’ 인식
한국인들 사이에서 강남 스타일은 ‘화려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고급스럽고 세련됨을 추구하는 것’으로 인식돼 있다. 하지만 외국인들 사이에서는 조금 차이가 있다. 한류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강남 스타일=한류 연예인 스타일’이라는 공식이 성립된 듯하다. 한류 스타가 자주 가는 강남의 고급 레스토랑이나 편집 숍 그리고 피부관리실이나 성형외과는 외국인 관광객에게 인기가 높다.
‘강남 스타일’을 찾는 중국인 예비 신랑 신부는 청담동의 웨딩 관련 숍을 찾는다. 평소 동경하던 한류 스타의 패션 스타일을 따라 평생 남을 멋진 결혼 화보를 촬영하기 위해 한국을 찾는 것. 한류 결혼 패키지 투어는 예비 부부 한 쌍당 비용이 1000만 원 이상이지만 중국 부호들 사이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화장 기술, 드레스, 예물, 사진 촬영 콘셉트 등이 현지보다 세련되고 우수하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도 인기를 끌었던 TV 프로그램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연예인들에게 웨딩 촬영이나 드레스를 제공했던 청담동 숍은 특히 인기가 높다.
또한 ‘한류 연예인의 미모는 우수한 한국 성형 기술 덕’이라는 입소문이 외국에 퍼지면서 강남 지역엔 의료 관광객을 위한 성형 관광 벨트까지 형성됐을 정도다. 한 유명 성형외과는 지난해에만 외국인 환자 1000여 명이 수술을 받았다. 환자의 국적도 다양해 영어·일어·중국어·프랑스어 통역 상담사를 두고 있다. 성형 후 마스크를 쓴 외국인들이 강남지역 백화점 및 호텔을 드나드는 모습이 자주 목격된다. 강남의 호텔, 피부과·성형외과, 백화점이 이들이 주로 찾는 동선이다.
강남의 모 백화점 명품관은 올해 일본인과 중국인을 대상으로 한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80%가량 신장됐다. 지난해 텍스리펀드 기준으로 이 백화점 명품관의 외국인 매출은 전년 대비 40% 신장하며 강남 지역 백화점 중 외국인 매출에서 독보적인 1위를 차지했다. 백화점 관계자는 “최근 강남 지역에 성형 관광을 오는 중국인들이 많아진 덕분에 외국인 매출이 부쩍 늘었다”고 설명했다. 이미 아시아에서는 강남 스타일이 인기가 퍼져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싸이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가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에서 인기를 끌면서 실제 ‘강남스타일이 무엇인가(What does Gangnam Style mean?)’라는 질문이 해외 포털 사이트 지식 서비스에 지속적으로 올라오고 있다. 야후 지식 서비스에서 이 질문에 대해 아이디 789963은 “서울의 한 구역명인 강남은 한국의 부촌 중 하나다. 연예인들이 많이 살고 최고급 쇼핑을 할 수 있다. 또한 한국에서 땅값이 가장 비싼 곳(Gangnam is one of the richest areas in Korea; where a lot of celebs live, high-end shopping areas, etc.. the real estate in Gangnam, Seoul is also the most expensive in Korea)”이라는 답이 올라와 있다.
강남은 싸이의 노래 덕분에 수치로 환산하기 어려운 홍보 효과를 보고 있다. CNN뿐만 아니라 미국의 시사 주간지 타임의 인터넷판, ABC·블룸버그통신·LA타임스·월스트리트저널·워싱턴포스트·라티노스포스트 등에‘강남스타일’ 열풍이 소개됐다. 그리고 청담동·강남역 등 강남의 주요 거리 모습을 집중적으로 노출했다. 그 덕분에 강남구는 홍보뿐만 아니라 지역 상권에 긍정적인 경제 효과까지도 누리고 있다.
강남구는 싸이를 강남구 홍보대사로 위촉할 계획이다. 그리고 또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강남스타일’ 노래 제목을 해외 홍보에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예를 들어 강남에 밀집한 유명 레스토랑과 식당을 ‘강남스타일 맛집’으로 소개하거나 강남에서 유행하는 패션과 쇼핑 거리를 ‘강남스타일 패션’이라고 하겠다는 것이다. 오는 10월 2~7일 열리는 2회 ‘강남 한류 페스티벌’을 홍보하기 위해 중국 전역에 배포하는 홍보물에 ‘강남스타일’이라는 문구를 활용하기로 했다.
파리의 샹젤리제, 뉴욕의 소호, 도쿄의 긴자, 로스앤젤레스의 베벌리힐스처럼 세계적인 핫 플레이스로 떠오른 서울의 강남이 싸이의 파급효과를 얼마나 더 누릴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진원 기자 zinon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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