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후의 치유의 인간관계

인간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 하지만 사람들과 같이 사는 것은 쉽지 않다. 같이 있다 보면 어느 순간 상처를 받기 때문이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모르는데, 문제가 있다고 지적당하기도 한다. 부모 자식처럼 사랑하는 사이건 상사와의 관계처럼 일하기 위한 관계건 아픈 것은 마찬가지다.

인간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상처 받는 것일까. 분명한 것은 물리적인 폭력이 없더라도 상처를 받는다는 사실이다. 누군가의 화난 표정을 바라보거나 그가 화가 났다고 상상만 하더라도 마음이 아프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할까봐 내 마음이 아파지기도 한다. 어떤 때에는 내 행동이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아파진다.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신은 어째서 인간관계에서 마음이 아프게 만들었을까. 진화의 관점에서 이렇게 마음이 아픈 것은 도대체 어떤 이득이 있기에 출현한 것일까. 아마도 인간은 사회를 이뤄야만 생존할 수 있기 때문에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장치로 그런 부정적인 정서가 만들어졌을 것이다.
Mid-adult couple making heart shape with arms on beach at sunset.
Mid-adult couple making heart shape with arms on beach at sunset.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람은 그가 나로부터 마음을 다쳤기에, 그에 대한 반응으로 그런 행동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나는 왜 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했을까. 어떤 이익이 있어서 그런 행동을 했을까. 그런데 희한한 것은 아무 도움이 없더라도 타인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는 것이다. 특별한 의미 없는 무의식적 행동에도 상대는 상처를 받는다.

인간 행동의 90% 이상은 자동적으로 행해진다. 의식의 통제 하에 이뤄지는 행동은 극히 일부다. 관계에서의 불균형은 상처를 주는 전형적인 예다. 상대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않는 것, 말을 함부로 하고 제멋대로 대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상처를 주는 사람은 그럴 의도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상처를 받는 사람은 명백한 결과가 있다.

더 아픈 것은 아프다고 하는 데도 그런 적이 없다고 부정하는 것이다. 최근의 뇌 과학은 이런 마음의 상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해줬다. 누군가가 마음을 아프게 해서 화가 났다면 감정을 다루는 뇌인 변연계(邊緣系)에 있는 편도체가 활성화된다. 무언가 잘못해 죄책감과 자괴감에 빠져 있다면 신체적 통증이 있을 때 반응하는 대상피질과 마음을 다루는 전전두엽이 같이 활성화한다. 이렇듯 마음의 상처는 더 이상 주관적이지 않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밝혀졌다. 한 여성이 부모가 오빠를 편애해 왔기 때문에 아프다고 한다. 그러면 그 여성은 그 생각을 할 때마다 대상피질에서 통증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부모는 ‘어느 손가락이나 다치면 똑같이 아프다’는 일반적인 예로 그런 일이 없다고 한다.

분명히 과거가 아픈 딸의 아픔은 어떻게 치유될까. 상처는 받는 사람을 중심으로 보아야 한다. 준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해결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과거의 상처를 인정하는 것만으로 그 상처는 얼마나 치유가 될까. 아직 뇌 과학적으로 그런 상황을 객관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지만, 이렇게 추정할 수는 있다. 부모와 새롭게 긍정적인 관계가 이뤄진다면 어느 정도의 아픔은 사라질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다 없어지지는 않는다. 지금 부모와의 관계는 예전만큼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 상처는 현재 맺고 있는 중요한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치유될 수 있다. 배우자를 비롯해 친구 그리고 현재의 사람들과의 관계가 긍정적이어야 과거의 상처가 아물게 된다. 긍정적인 관계에서 나오는 애착 호르몬이 상처의 호르몬을 상쇄하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과거의 모든 상처는 지금의 관계로만 완전히 치유될 수 있다.


김병후 정신건강의학과 원장·(사)행복가정재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