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 시장의 주도권은 대기업 몫이다. 이들의 채용 규모는 ‘신졸(정사원으로서의 취업 경험이 없는, 교육기관을 막 졸업한 사람)’ 시장의 결정적인 풍향계다. 다만 최근 이 가설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중소(중견)기업이 대기업보다 부각돼서다.

신입 사원의 변심이다. 거대 조직의 소모품처럼 천편일률적인 직장 경력을 갖느니 작지만 강한 중소기업에서 ‘AtoZ’의 광범위한 직무 경험을 해보고 싶어서다. 대기업의 종신고용 안정성이 감퇴했다는 현실론도 한몫했다. 합격률도 높다. 장기 불황으로 대기업 채용이 감소 중인 반면 중소기업은 인재 확보에 매진한 결과다. 대기업이 주춤할 때 우수 인재를 적극 모으겠다는 전략이다.

지난 6월 21일 도쿄 신주쿠에서 열린 중소(중견)기업 합동 설명회는 애초 예상을 깨고 문전성시를 이뤘다. 양일간 2000명이 참가해 뜨거워진 중소기업 입사 열기를 보여줬다. ‘대학생 취직 의식(마이나비)’을 보면 대기업 지향성은 확연히 줄었다. 2007년 53%였던 대기업 입사 희망률은 이후 하락세로 돌아서 2011년 36%까지 줄었다. 반면 중소기업은 동일 기간 44%에서 59%까지 늘었다.
[일본]채용 시장서 중소기업 인기 ‘쑥쑥’ "다양한 직무 경험 부각…복리후생 뛰어나"
일자리 미스매칭 해결 조짐 보여

이로써 고질적인 문제였던 일자리 미스매칭은 해결 힌트를 찾은 분위기다. 대졸 예정자 구인 배율은 1.28배로 숫자로는 ‘구인 회사 > 구직 학생’이다. 그런데도 청년 실업은 심각하다. 바늘구멍의 대기업(0.47배) 입사 경쟁 탓이다. 300인 미만 중소기업(4.41배)은 일자리가 넘쳐난다. 눈높이 격차는 당연한 결과다. ‘경기 불안→ 직업 안정성→ 대기업 지향성’ 때문이다. 그런데 이 연쇄 흐름이 끊기기 시작했다. 재조명된 중소기업의 장점이 부각되고 있다. 특화된 기술·노하우와 독자적인 경영 스타일 및 섬세한 사원 배려 등 대기업 못지않은 명문 중소기업에 대한 인식 변화다.

입사 관문은 꽤 까다로워졌다. 엄격한 인턴 과정을 당락 결정의 채용 시험으로 대체한 ‘테라모터스’가 그렇다. 인턴 과정을 통해 기업·학생의 시행착오를 줄여 긍정적이다. 중소기업답게 직원의 행동반경은 넓다. 1년 후 해외시장에 파견되는 건 기정사실이다. 권한도 폭넓어 1년 차에게 해외 현지의 생산 체계 개편 임무를 일임하는 수준이다.

회사 대표는 이를 “대기업이면 자신의 능력을 50~60%밖에 쓰지 않지만 중소기업은 200~300%까지 쓸 수 있는 환경”이라고 정리했다. 직원 100여 명의 라이프네트생명보험도 독자 노선으로 인재 확보에 나섰다. 일단 입사 희망자에게 ‘무거운 숙제’를 부여한다. 인터넷을 활용한 저출산·고령화 해결 방법을 총리에게 제안하라는 식이다. 어정쩡하면 곤란하다. 비용 대비 효과 분석까지 요구한다. 과제 제시 후 3개월을 주는데 이후 취합된 답변서의 품질은 상상 이상이다. 이를 검증해 채용 여부를 정한다. 올해는 8000명 중 111명이 과제를 제출했다. 어려운 허들을 설치해 높은 의욕을 갖춘 이들 위주로 자연스레 정리되도록 한 구조다.

‘시니세(老鋪)’로 불리는 전통 점포의 채용 열기도 뜨겁다. 창업 60년의 기모노 전문점 ‘마루조(丸上)’는 시장 축소에도 불구하고 인재 확보로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채용에 나섰다. 피크 때 2조 엔대의 시장 규모가 현재 2500억 엔대까지 떨어졌는데 그 돌파구를 신입 사원에게서 찾으려는 묘수다. 다만 기모노의 지식을 갖춘 이가 거의 없어 사장이 직접 나서 사실 정보를 제공한다.

제품 설명까지 곁들인다. 영업 현장에서 봉착하는 세세한 내용과 문제도 빠뜨리지 않는다. 1주일 후 관심을 보인 이들과 면접을 갖는다. 올해는 5명 채용에 30명이 면접에 참여했다. 중소기업은 일본 경제의 뿌리다. 150만 개의 법인기업 중 99%가 중소기업이다. 대기업의 명성은 이들 중소기업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중소기업에 대한 달라진 인식이 고용의 미스매칭을 풀 중대한 실험으로 인식되는 이유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겸임교수(전 게이오대 방문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