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의 슈퍼카 업체 람보르기니는 원래 트랙터를 만들던 농기계 회사였다. 창업자 페루치오 람보르기니가 이탈리아 슈퍼카 업체 페라리에 클러치 문제를 조언했다가 ‘트랙터나 잘 만들어라’는 비아냥 소리를 듣고 절치부심, 1963년 첫 슈퍼카 ‘350GTV’를 탄생시켰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고장 없고 튼튼한 트랙터를 만들던 ‘기본기’가 람보르기니 신화의 밑바탕이었다는 게 정설이다.

50여 년 역사의 국내 농기계 산업은 이런 역량이 있을까. 오히려 쇠락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국내에선 ‘후발 산업’이었던 자동차 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쌩쌩 달리는 것과는 대조된다.

국내 산업의 ‘형님’ 격인 농기계 산업이 왜 위기에 처했는지 돌아보는 건 의미가 있다. 정부 주도의 유통 구조, 내수 시장 안주, 연구·개발 부족 등 원인은 많다. 한 발 늦었지만 업계와 정부가 수출에서 활로를 찾기 시작했다.

국내 농기계 산업은 1968년 대동공업이 경운기 엔진을 국산화하면서 본격화했다. 1975년 자동차 업계에서 최초의 국산차 ‘포니’가 나왔으니 태동이 훨씬 앞섰다. 정부가 1970년대 농촌 기계화를 적극 지원하면서 경운기 공급은 1972년 6000대에서 1976년 12만 대로 급증했다. 소 대신 경운기가 지나가도록 마을 길을 넓히던 것이 새마을운동의 모토였을 정도니, 농기계 산업은 성장 일로였다.

성장이 정체된 것은 2000년대 들어서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국내 농기계 시장은 2007년 1조2000억 원을 정점으로 꺾여 1조 원 안팎에 머무른다. 김경수 농기계공업협동조합 해외지원팀 부장은 “논은 92% 기계화가 완료됐고 추가 수요처인 밭은 작목이 다양해 기계화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활로를 개척하기엔 기업들이 너무 영세했다. 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농기계 업체의 기업당 평균 생산 대수는 일본의 5~7분의 1에 그치고, 평균 매출은 자동차 부품 업체(184억 원)의 절반인 95억 원이다. 800여 개의 영세 업체가 한정된 시장을 놓고 경쟁하니 연구·개발 여력이 부족했다.
[경제부처 24시] ‘위기’ 농기계 산업…‘수출 효자’ 재조명
‘나 홀로 산업’의 한계

그래도 생존이 가능했던 것은 정부가 구매 보조금과 융자를 제공하는 등 정책 지원을 유지한 데 있었다. 하지만 이 같은 시장구조가 도리어 업계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한 중견 업체 관계자는 “1990년대 이후 정부가 어려운 농가를 위해 반값 농기계 공급, 농기계 임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저가 대리점과 NH농협의 농기계은행이 수요를 독점하면서 가격 구조가 왜곡됐다”고 토로했다.

업계는 결국 ‘해답은 수출’이란 깨달음을 얻었고 최근 희망적인 신호도 나오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수출 실적은 전년 동기 대비 20.6% 늘어난 4억1200만 달러였다. LS엠트론·대동공업·동양물산기업 등이 선두다. 대동공업 관계자는 “대형 기계 중심인 미국에서 틈새시장인 잔디깎기, 소형농 대상 트랙터에 집중한 것이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전 세계 농기계 시장이 연평균 5.3% 성장, 2020년 2229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이상기후로 농산물 수급 문제가 부각된 것도 기회다. 생산성 향상을 위해 신흥국마다 농촌 기계화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선 사양을 낮춘 경운기, 동남아·아프리카 등에선 탈곡기 등이 유망 제품으로 꼽힌다. 중국(8.5%)·태국(3.5%)·인도(2.2%) 등 신흥시장 수출이 점차 느는 추세다.

농식품부는 수출 지원을 반영한 농업기계화촉진법 개정안을 오는 10월까지 내놓기로 했다. 30년간 유지한 ‘농촌 기계화’ 기조를 버리고 이제 수출 전략 산업으로 접근하겠다는 것이다.



김유미 한국경제 경제부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