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는 내게 정신적인 지주였고 내가 살아가는 길에서 삶의 색깔을 입히고 갈 길을 인도하는 등불과 같은 역할을 하셨다. 6·25전쟁으로 배움을 끝까지 마치지 못한 아버지는 언제나 신문을 통해 세상을 읽으셨다. 중학교 2학년 때인가, 늘 한자가 많은 신문을 읽던 아버지가 나를 부르셨다.

“막내, 이리 와 앉아 봐라.”

“왜요? 아버지.”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안방에 앉아 있는 아버지 앞에 앉았다.

“이 신문을 좀 읽어봐라.”

나는 한자가 반 이상 섞인 신문을 큰 소리로 읽으려고 하다가 읽을 수 없어 더듬거리다가 입을 다물어야 했다.

“중학교 2학년인데 이것도 못 읽니?” 불호령과 함께 아버지의 주먹이 내 머리를 ‘툭’ 건드리셨다.

“아….” 나는 주먹으로 맞은 것에 대한 아픔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혼난 것과 한자를 조금밖에 읽지 못한 내게 어떤 부끄러움과 억울함을 느끼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아버진 언니들한테는 그러지 않으면서 왜 나한테만 이런 걸 시켜. 학교에서 한자는 아직 다 배우지도 않았단 말이야.” 아버지는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억울한 표정을 짓는 나를 웃음기 머금은 눈으로 바라보며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아! 나의 아버지] ‘배움’은 최고의 가치
그때를 떠올리면 아버지가 내게 왜 그렇게 하셨는지 궁금해지곤 한다. 아버지 슬하엔 나 말고도 내 위로 세 명의 언니들이 더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막내인 나를 가장 가까이 두고 내가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며 어떤 기대를 조금씩 하셨던 것 같다.

아버지는 내가 재수까지 하며 대학에 들어가지 못할 때도 기대감을 놓지 않으셨다. 삼수를 한다고 했을 때 들어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아셨기 때문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대학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 어떤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내가 대학에 합격했을 때 아버지는 내가 아는 모든 친지들에게 전화를 걸고 눈물 지으셨다. 아버지는 내가 대학에 들어가고 문학을 공부하는 것에 어떤 일보다 기뻐하셨고 자랑스러워 하셨다. 아버지는 내가 공부하고 있다는 사실에 어떤 삶의 의욕과 즐거움을 느끼시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배움에 늘 목말라 하셨다. 누군가 아버지를 찾는 손님이 온다거나 친척들이 왔을 때도 그 사람의 됨됨이와 함께 배움의 정도를 가늠하셨다. 이치에 맞는 말을 하지 못하거나 배움이 얕은 언행을 했을 때 아버지는 한순간에 그 사람을 판단하셨다. 그것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행동하지는 않더라도 아버지가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은 돈이나 명예가 아닌 배움에 있었음을 상고한다. 배움에 대한 열망은 있지만 세상과 연결될 수 있는 고리를 찾지 못한 아버지는 늘 고독했고 외로우셨다. 나 또한 그러한 아버지를 바라보며 조금씩 세상이 아프기 시작했고 언제부터인가 헌책방 주변을 돌며 책 속에서 쉼을 얻고 나만의 새로운 세상을 열어갔었던 것 같다.


‘늘 글 속에서 무언가를 깨닫고 찾으려하는 아버지.’

어쩌면 아버지의 삶에서 글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은 배움으로 가득 차 있었고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었을지도 모른다. 또한 끝까지 배우지 못한 세상에 대한 열망과 열정을 한 켠으로 바라보시면서 가슴을 쓸어안는 과정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길예하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