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현 딜라이트 대표

김정현 딜라이트 대표는 고등학교 2학년 때인 2003년 처음 창업했다. 그의 첫 사업은 온라인 쇼핑몰이다. 당시 한창 유행하던 MP3 플레이어와 전자사전 등을 싸게 구입해 마진을 붙여 온라인에서 파는 일이었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돈을 제법 벌었다고 한다.

“정말 쉴 새 없이 일했어요.”

그가 대학에 가지 않은 것은 첫 대입 시험에서 떨어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공부에 대한 큰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어려운 가정 형편도 영향을 미쳤다. 돈이나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그를 지배했던 것이다. “어차피 대학에 가지 못할 바에야 돈이라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정말 미친 듯이 돈을 벌었죠. 한 달에 1000만 원씩 벌기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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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버는 게 목적인 인생에 지쳤다

하지만 오직 돈을 버는 것만 생각하면서 산다는 것은 꽤나 공허했다. 학교에 가서 학업을 마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대학 입시가 끝나고 동기들이 대학에 들어간 뒤 1년이 지난 뒤였다. 그는 다시 공부를 시작해 07 학번으로 가톨릭대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그동안 모아둔 돈이 있어 돈 걱정은 좀 덜하고 공부에 전념하려고 노력했다는 김 대표. 하지만 막상 공부를 해 보니 그가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공부를 그렇게 많이 하진 못했지만 학업을 통해 진리랄까, 아니면 삶의 의미 등에 좀 더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더군요.”

1년 반 정도 공부하다가 그는 2008년 사회적 기업 연구 모임 넥스터스를 만들었다. 넥스터스는 당시 미국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던 사회적 기업에 대한 스터디를 하고 이를 어떻게 국내에 적용할지 고민하는 모임이었다. 여기서 그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우선 드는 생각은 ‘그는 왜 이런 걸 시작하게 됐을까’다. 그에게 물어보니 ‘돈 버는 게 목적인 인생에 회의를 느꼈다’는 답이 돌아왔다. 사회적 기업 기업가다운 답변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역시 구체적인 동기가 궁금했다.

“돈을 벌어 내가 잘 먹고 잘사는 것 말고 뭔가 다른 게 없을까 생각하게 됐어요. 정말 공허하더군요. 그래서 넥스터스를 만들고 여기를 통해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면서 사업을 하는 그런 일을 추진하게 됐죠. 때마침 외국에서 사회적 기업과 관련된 연구가 활발하고 해외 사례들이 국내에 소개되기 시작한 것이 동기부여가 됐죠.”

레인보우브릿지라는 회사를 시작한 게 2008년. 8명이서 창업했다. 장애인들이 생산한 과자 등 제품을 사다가 판매를 하는 일이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실패했다. 큰 규모의 사업이 아니었고 조금씩 하면서 방향을 모색하고 확장을 검토해야 하는 일이었는데 초기 창업 규모가 너무 컸던 것도 문제였고 사람이 많다 보니 의견 조율이 쉽지 않은 것도 어려운 일 중 하나였다.

그래도 시간을 헛되이 보낸 것은 아니었다. 김 대표는 넥스터스를 통해 경로당에서 봉사 활동을 하다가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노인들이 150만~200만 원을 호가하는 보청기를 구입하는 것을 보게 됐다. 청각장애인에 대한 보청기 사업을 구상하고 있던 김남욱 씨를 알게 된 것도 계기가 됐다. 김 대표는 보청기 사업을 구상하면서 인도의 사회적 기업인 아라빈드 안과병원을 롤모델로 떠올렸다. 1976년 설립된 아라빈드 병원은 최고의 안과 전문의들이 치료비가 없는 환자를 무료로 치료해 주면서 명성을 떨쳤고 부자 환자들이 앞다퉈 병원을 찾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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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직접적인 의료 행위는 아니지만 이와 유사한 모델이 한국에서도 가능하다고 판단한 김 대표는 김남욱·원준호 씨와 넥스터스 멤버인 김정헌 씨 등과 함께 보청기 사업에 뛰어들었다.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기 전 2009년 4월 중소기업청에 저가 보청기 사업 제안서를 제출했는데, 사업 지원금 2000만 원을 받을 수 있었다. 보청기 기술력 확보를 위해 연세대 내 의료기기 연구센터와 함께 파트너십을 구축했다.

미리 사업 제안서도 썼고 몇 차례 창업 경험도 있었고 창업 동기도 뚜렷했지만 역시 사업은 쉽지 않았다. 보청기를 자체 기술로 만들려다 보니 첫 모델이 나오기까지 1년이 걸렸다. 그래도 대학생 청년이 사회적 기업을 한다는 소식에 도와주는 이들이 많았다. 2011년 3월에는 기술보증기금에서 사회적 기업 최초로 벤처기업 인증을 받았고 같은 해 6월에는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로부터 사회적 기업 부설 기술연구소 설립 인증을 받기도 했다.

딜라이트가 지향하는 것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보청기 지원 금액인 34만 원에 제품의 가격을 맞춰 소외 계층 등 형편이 어려운 수요자들에게 경제적 부담을 주지 않는 것이다. 보청기 지원 금액을 훨씬 뛰어넘는 고가의 보청기를 구매할 형편이 안 되는 청각장애인이나 난청인들이 경제적인 고민 없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하자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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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기업으로서의 가능성 확인

이를 위해 직접 보청기 생산 시스템을 만들었다. 솔라이어라는 보츠나와 기업으로부터 태양열을 이용한 충전 기술을 전수받아 저렴한 생산이 가능해졌다. 가격을 낮추기 위해 기존 보청기 업체들의 유통 경로를 파괴했다. 중간에 거치는 수많은 유통상을 건너뛰고 직접 소비자들에게 유통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이 보청기 구매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지난해 15억 원의 매출을 올렸고 올해는 50억 원대의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회사 이름은 알리는데 성공했지만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보청기 사업만으로는 결코 기업 존재의 이유, 즉 이윤 추구를 할 수가 없었다. “사실 이윤 추구라는 목적만 놓고 보면 이런 가격에 이런 사업을 결코 할 수 없죠. 그래서 사회적 기업이 할 일이죠. 어쨌든 기업이 지속 가능성이 있어야 이런 사회적 사업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돈을 꾸준히 벌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딜라이트는 저가형 보청기만 만들지는 않는다. 고가형과 프리미엄급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사업도 병행하고 있다.

사실 딜라이트의 보청기 사업은 그가 하려는 일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보청기 사업을 통해 한국에서도 소셜 벤처, 또는 사회적 기업으로서의 가능성을 확인한 그는 다른 분야의 사업을 모색하고 있다. 어찌 보면 보청기 사업으로 그는 사회적 기업의 첫발을 내디뎠을 뿐이다.

그가 생각하고 있는 다음 단계의 일은 금전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사업이다. 물론 지금의 고금리 악질 대부 업체와 같은 모델은 아니다. 청년들에게 자금을 빌려주되 도움이 필요한 사람과 도움을 주려고 하는 사람을 연결해 주는 일이다.

“매월 소액의 자금을 기부해도 경제적으로 무리가 없고 그렇게 하고 싶지만 정보가 부족해 또는 시간이 없어 그것을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반면 도움을 받고 싶어도 통로가 없는 사람들도 있고요. 그런 사람들을 온라인을 통해 연결하는 사업을 구상 중입니다. 특정 개인이나 단체에 기부할 수도 있고 저금리로 돈을 빌려줄 수도 있습니다. 딜라이트는 그런 사람들을 연결해 주는 일을 하는 것이죠. 방글라데시의 그라민뱅크를 모델로 하되 좀 더 현 상황에 맞게 소셜 요소를 도입할 계획입니다.”

이 사업은 내년 하반기께나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출해 줬을 때 상환율 등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기 때문에 올 하반기 사업을 시작하더라도 베타 서비스 형태로 제한적으로만 운영할 계획이다.


임원기 한국경제 경제부 기자 wonkis@hankyung.com│사진 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