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말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 들어 국내 채권 순투자액(순유입액-만기도래액) 1위는 노르웨이가 차지했다. 올 초부터 7월 말까지 노르웨이가 한국 채권에 투자한 금액은 무려 2조2960억 원에 달한다. 2위를 차지한 스위스(1조7280억 원)보다 6000억 원가량이나 많은 규모다. 지난 7월 말 기준 노르웨이의 한 달간 채권 순투자액은 1조4850억 원으로, 2위인 중국의 순투자액 4470억 원의 3배를 훌쩍 넘어섰다. 지난 7월의 외국인 전체의 순채권 투자액이 1조3880억 원에 그쳤다는 점을 따져본다면 전체 외국인 순투자액보다 많은 액수다. 또한 노르웨이 자금은 8월 초에만 4500억 원 이상 순투자한 것으로 관측된다.
노르웨이 자본은 단지 채권에만 투자하고 있는 게 아니다. 노르웨이는 올 들어 7개월 연속 꾸준히 국내 주식을 사들이고 있다. 노르웨이는 2011년 말 기준으로 한 해 동안 국내 주식 6210억 원어치를 순매수했고 지난 7월 기준으로 벌써 8330억 원치나 순매수했다. 노르웨이는 외국인들이 국내 주식을 3조3850억 원어치 팔아 치운 지난 5월에도 2240억 원어치의 주식을 순매수했다. 금감원의 분석에 따르면 노르웨이는 7월 말 기준으로 국내 주식 8조9540억 원어치를 보유하고 있다. 2011년 말 대비 18.5%나 늘어난 것이다. 국내 주식 9조 원 정도 보유
이처럼 노르웨이가 한국의 주식과 채권에 관심을 두고 있는 이유는 유로 존이 재정 위기로 휘청거리고 있는 상황에서 자국 통화인 ‘크로네’가 안전 자산으로 인식돼 강세를 보이고 있는 것과 관련이 깊다는 분석이 많다. 즉 유로 존 재정 위기로 유로화 가치가 떨어지자 크로네의 평가 가치가 더 높아지고 있어 외화보유량의 규모가 커졌고 이를 한국 등 신흥 시장에 투자하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노르웨이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는 막강한 현금 동원력을 바탕으로 세계 유일의 순채권국으로 올라섰고 서방에서 유일하게 9%의 경제성장을 이뤄냈다.
그렇다면 노르웨이가 가지고 있는 부의 원천은 무엇일까. 바로 ‘석유’다. 노르웨이는 비(非)석유수출국기구 중 산유량이 가장 많은 국가다. 노르웨이의 북해유전은 세계 5위, 천연가스 저장량은 세계 2위에 달한다. 이처럼 막대한 석유 자원 때문에 노르웨이의 1인당 국민소득은 이 지표에서 항상 최상위권을 유지하는 북유럽 지역 국가들 사이에서도 ‘톱’이다. 노르웨이의 1인당 국민소득은 1980년대부터 이 지역의 맹주를 자처하는 스웨덴을 앞지르기 시작해 현재는 8만4443달러에 달한다. 2009년에는 국내총생산(GDP)에서도 인구가 두 배인 스웨덴을 넘어섰다.
노르웨이는 이처럼 막대하게 쌓여가고 있는 ‘국부’를 이원화해 투자하고 관리한다. 하나는 1995년 북해유전 수익으로 만든 국부 펀드인 ‘글로벌연금펀드(GPFG: Government Pension Fund-Global)’다.
2006년 기준 2000억 달러였던 이 기금은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 헐값에 나온 자산들을 사들이면서 2010년 말에는 6110억 달러 규모로 세 배 이상이나 커지며 아부다비투자청에 이어 세계 2위의 국부 펀드로 성큼 성장했다. 현재 GPFG는 세계 주식의 1%와 유럽 주식의 2%를 보유하며 있으며 그 비중이 빠르게 늘고 있다.
노르웨이 자본의 또 다른 한 축은 노르웨이 중앙은행 ‘노르게스방크(Norges Bank)’다. 노르웨이 중앙은행은 1998년부터 GPFG로부터 운용 자금을 위탁받아 자체 보유하고 있는 외화보유액과 묶어 전 세계 자산에 투자하고 있다. 이 때문에 노르웨이 중앙은행은 중앙은행임에도 불구하고 독특하게 채권은 물론 직접 주식 투자를 하기도 한다. 최근 국내 주식 및 채권에 대규모로 투자한 자금의 실체가 바로 노르게스방크다.
이 때문인지 노르웨이 자본은 한 번 사들일 때의 규모도 굵직굵직하다. 지난 3월 21일 노르웨이 중앙은행은 LG상사 지분 5.15%를 매수했다(현재 약 4.13%)고 공시했다. 2010년과 2011년 상반기만 해도 노르웨이 중앙은행의 5% 이상 보유 종목 명단에 신규로 오른 종목은 서울반도체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난해 9월 말부터 올해 2월까지 LG이노텍(5.07%)·코오롱인더스트리(5.07%)·성우하이텍(5.13%)·OCI머티리얼즈(5.01%) 등 첨단 부품사 위주로 대량 매수했다. 또 5월에는 다음의 주식 70만7715주(5.25%)를 보유 중이라고 공시했다. 세계 2위의 국부 펀드가 핵심
규모는 크지만 그간 한국 자본시장과는 거리가 있어 노르웨이 국부 펀드는 앞으로 보다 더 자주 언급될 것으로 보인다. 이유는 GPFG가 지난 4월 “유럽에 대한 투자 비중은 줄이는 대신 신흥국 비중은 늘릴 예정”이라고 천명했기 때문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노르웨이 정부는 채권과 주식 부문에서 60%와 50%를 차지하는 유럽의 비중을 각각 40%로 낮추는 국부 펀드의 포트폴리오 조정 방안을 발표했다.
FT의 분석에 따르면 이번 포트폴리오 조정의 가장 큰 수혜자는 한국을 포함한 신흥 시장이 될 전망이다. 노르웨이 국부 펀드는 앞으로 신흥국 채권에 투자해 비중을 7%까지 높이고 신흥국의 주식 비중을 9%에서 12%로 끌어올릴 예정이다.
현재 시장에서는 노르웨이의 이 같은 주식 및 채권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에 대해 반응이 약간은 엇갈린다. 먼저 채권은 비교적 긍정적이다. 노르웨이는 5년 이상 장기 국채를 중심으로 투자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장기 투자를 통해 채권시장의 체질 개선에 필요한 자금이 올 들어 대거 유입되고 있는 셈이다. KDB대우증권에 따르면 “최근 들어 1~2년짜리 통안채를 5년 이상 장기 국채로 갈아타는 외국인 투자가 늘고 있다”고 한다. 즉 한국 국채는 제로 금리에 가까운 선진국에 비해 금리가 여전히 높은 편인 데다 글로벌 위기에도 불구하고 펀더멘털이 강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반면 주식시장은 약간 부담스러워 하는 모습이다. 이유는 노르웨이 중앙은행이 단순 투자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유명해 향후 투자 기업에 대한 목소리를 높일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노르웨이 중앙은행은 지난해 웰스파고 등 미국의 6개 투자 기업을 선정해 실적이 부진하다며 이사진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또 올해 국내 주주총회에서도 이사 보수 상향 안건에 반대표를 던지는 등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했다. 주식 투자는 장기 투자 위주의 채권 투자와 달리 ‘과감한 손절매’도 하는 편이다. 올 3월 5.15%의 LG상사 주식을 사들였던 노르웨이 중앙은행은 이 회사의 주가가 부진하자 불과 4개월 만인 지난 7월 초 200억 원의 손해를 감수하고 1.02%의 주식을 팔아치우기도 했다.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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