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주식시장의 양대 산맥은 외국인 투자자와 기관투자가다. 이 중 외국인 투자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한국 증시 시가총액의 30~35% 정도이고 기관투자가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15~20% 정도로 알려져 있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외국인 투자자들이 움직일 때마다 우리나라 증시가 출렁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국내 주식시장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주 거래처가 바로 외국계 증권사다. 한경비즈니스는 지난해에 이어 각종 실적을 토대로 ‘2012 베스트 외국계 증권사’를 선정하고 그 내용을 분석했다.
[2012 베스트 외국계 증권사] 크레디트스위스 2년 연속 1위…외국계 비중 더 커져
국내 증권사 수는 62개로, 그중 32%에 달하는 20개가 외국계 증권사다. 국내 주식시장의 ‘큰손’으로 불리는 소수 외국인 투자자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에, 그들의 주 거래처인 외국계 증권사의 존재감도 커질 수밖에 없다.

한경비즈니스가 지난해에 이어 조사한 ‘2012 베스트 외국계 증권사’ 1위는 크레디트스위스증권이 차지했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1위다. 크레디트스위스를 비롯해 톱 3까지는 ‘부동’이었다. 2위와 3위 역시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각각 메릴린치증권과 UBS증권이 차지했다. JP모건증권과 골드만삭스증권은 공동 4위를 기록했다.

20개 외국계 증권사의 국적은 메릴린치증권·JP모건증권 등을 비롯한 미국이 5개로 가장 많고 SG증권·BNP파리바증권 등 프랑스 국적과 한국스탠다드차타드증권·홍콩상하이증권 등 영국 국적 외국계 증권사가 각각 4개다. 스위스와 일본 국적이 각각 2개, 그 밖에 독일·호주·싱가포르 등이 각각 1곳이다. 이 중 ‘2012 베스트 외국계 증권사’ 상위 5위권 안에는 스위스 국적 증권사와 미국 국적 증권사들이 이름을 올렸다. 종합 1위와 3위를 스위스 국적 증권사가 차지했고 2위와 공동 4위 두 곳은 미국 국적 증권사다.
[2012 베스트 외국계 증권사] 크레디트스위스 2년 연속 1위…외국계 비중 더 커져
당기순이익·자산 등 4개 항목 기준

‘2012 베스트 외국계 증권사’ 조사는 당기순이익·자산·자기자본·영업용순자산비율(NCR) 등 4개 항목을 기준으로 했다. 지난해 평가 항목에 포함됐던 직원 수는 올해 조사에서는 제외됐다. 당기순이익·자산·자기자본·NCR은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011 회계연도(2011년 4월~2012년 3월) 증권회사의 영업 실적을 기준으로 하고 선정 방법은 각 증권사의 순위를 지수화한 뒤 이를 합산해 최종 순위를 매겼다.

대상이 된 외국계 증권사는 모두 20개로, 현지법인 형태와 지점 형태 등 두 가지로 나뉜다. 지난해 지점 형태에서 현지법인으로 전환한 다이와증권을 비롯해 씨티그룹글로벌마켓증권·도이치증권·노무라금융투자·맥쿼리증권·CLSA코리아증권·BNP파리바증권·BOS증권·한국스탠다드차타드증권 등 9개는 현지법인이고 크레디트스위스증권·모건스탠리증권·USB증권·JP모건증권·메릴린치증권·SG증권·홍콩상하이증권·뉴엣지파이낸셜증권·바클레이즈캐피탈증권·RBS아시아증권·골드만삭스증권 등 11개는 지점 형태다.

‘2012 베스트 외국계 증권사’로 선정된 크레디트스위스증권은 4개의 평가 항목 중 당기순이익과 자기자본 등 2개의 개별 평가 부문에서도 1위에 올랐다. 크레디트스위스의 당기순이익은 지난해 1089억 원보다 9.4% 증가한 1192억 원으로 외국계 증권사 중 압도적 1위다. 당기순이익 부문에서 2위를 차지한 JP모건증권(612억 원)과도 거의 두 배에 달하는 격차이고 국내 토종 증권사까지 포함해도 당기순이익 순위가 8위다. 외국계 증권사 지점 한 곳이 올린 이익 규모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어마어마한 수치다. 토종 대형 증권사인 미래에셋증권의 당기순이익 규모가 1197억 원이고 신한금융투자는 977억 원이다.

크레디트스위스가 연이어 높은 실적을 기록한 데는 인수·합병(M&A)과 주식시장(ECM) 등 투자은행 증권사(IBD)의 실적이 뛰어났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과 하이닉스 매각 등 대형 M&A 딜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으며 그 외에도 금융·광산·통신·식음료·반도체·소비재를 망라한 다양한 업계의 기업들을 자문했다. 6년 연속 시장점유율 1위라는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브로커리지(주식 위탁 매매) 부문은 말할 것도 없다.

크레디트스위스는 당기순이익과 함께 자기자본 부문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크레디트스위스의 자기자본은 지난해(6864억 원)보다 소폭 감소한 6549억 원으로 국내 대형 토종 증권사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전체 62개 증권사 중 16위에 해당하는 큰 규모로, 메리츠종금증권은 6780억 원, HMC투자증권은 6661억 원 수준이다. 크레디트스위스는 NCR 부문에서도 지난해보다 한 단계 상승한 2위를 기록했고 자산 순위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20개 증권사 중 3위를 차지했다.

이천기 크레디트스위스 한국대표는 크레디트스위스의 강점에 대해 글로벌 네트워크 인력과 자원의 활용, 본사 차원의 적극적 지원과 관심을 꼽았다. 이 대표는 “전 세계에 포진해 있는 다양한 산업별 전문가들의 경험과 역량을 언제든지 끌어올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라며 “한국 시장은 크레디트스위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시장이자 순익 기여도가 가장 높은 오피스 중 하나로, 글로벌 차원의 많은 관심과 적극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크레디트스위스에 이어 종합 2위를 차지한 메릴린치증권은 지난해 1위였던 자산 순위가 2위로 한 단계 낮아지고 지난해 4위였던 NCR 순위가 6위로 밀린 반면 자기자본 순위는 5위에서 3위로, 당기순이익 순위는 5위에서 4위로 각각 상승했다. 종합 3위에 오른 UBS증권은 NCR 부문에서 독보적인 1위로, 62개 전체 증권사 중에서도 최고다. UBS증권의 NCR는 2057.2%로 지난해(2224.5%)보다 다소 떨어졌음에도 개별 항목 순위는 2위에서 1위로 상승했다.

외국계 증권사 중 NCR가 가장 낮은 바클레이즈증권(313.0%)보다 무려 6배 이상 높은 수치다. NCR는 증권사의 자산 건전성을 평가하는 지표로, 영업용순자본을 총위험액으로 나눈 비율이다. NCR가 150% 미만이면 ‘경영 개선 권고’를 받는다. 62개 전체 증권회사의 NCR는 620.7%로 전년(554.4%) 대비 66.3% 포인트 상승했지만 토종 증권사들의 NCR 평균은 전체 평균에 못 미치는 581.9%인 반면 외국계 증권사 NCR 평균은 토종 증권사 평균의 거의 두 배에 달하는 1059.8%로 나타나 눈길을 끈다.

톱 3가 ‘부동’인 것을 비롯해 ‘2012 베스트 외국계 증권사’ 종합 순위는 지난해와 비교해 극적인 변화가 두드러지지는 않았다. 종합 4위에 오른 골드만삭스증권과 종합 8위에 오른 한국스탠다드차타드증권이 각각 4계단 뛰어올라 가장 높은 순위 상승률을 기록했다. 골드만삭스의 순위 상승은 전적으로 당기순이익 순위 상승이 이끌었다. 2010년 당기순이익이 369억 원 적자로 지난해 베스트 외국계 증권사 조사에서 부문 순위 20위를 기록했던 골드만삭스는 지난해 398억 원 당기순이익으로 흑자 전환하면서 당기순이익 순위 6위로 무려 14계단 뛰어올랐다. 그러나 이러한 골드만삭스의 극적인 순위 변화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2010년 국세청으로부터 669억 원 상당의 법인세를 추징당했기 때문이다. 이는 당시 골드만삭스 자기자본의 10%가 훌쩍 넘는 금액으로 타격이 컸다.
신문로 흥국생명내 외국계증권사
/김병언 기자 misaeon@ 20091204..
신문로 흥국생명내 외국계증권사 /김병언 기자 misaeon@ 20091204..
[2012 베스트 외국계 증권사] 크레디트스위스 2년 연속 1위…외국계 비중 더 커져
골드만삭스·한국SC증권 4계단 상승

한국스탠다드차타드증권은 NCR 순위(7위→5위)와 당기순이익 순위(18위→15위)가 각각 2계단과 3계단 상승했다. 2010년 88억 원 적자를 기록했던 당기순이익은 지난해 26억 원 흑자로 돌아섰다. 한국스탠드다차타드증권은 지난해 국내외 기관을 상대로 브로커리지 비즈니스를 새로 시작하는 등 사업 영역을 확대했다.

반면 맥쿼리증권과 도이치증권은 비교적 종합 순위 하락 폭이 컸다. 지난해 종합 6위에 올랐던 도이치증권은 올해 3계단 하락한 9위에 올랐다. 도이치증권은 자산과 자기자본 순위는 각각 11위, 7위로 전년과 같았지만 당기순이익이 급감하며 당기순이익 순위가 지난해 7위에서 13위로 밀려났다. 2010년 271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린 도이치증권은 지난해 81.2% 감소한 51억 원에 머물렀다.

2010년 11월 이른바 ‘옵션 쇼크(11월 11일 장 마감 직전 10분간 도이치증권 창구로 나온 1조6000억 원에 달하는 대규모 매물 폭탄으로 인해 코스피가 53.12포인트나 하락한 사건)’를 초래한 도이치증권은 금융위원회에서 장내 파생상품 거래 6개월 영업정지 처분을 받은 바 있다. 지난해 9월 영업정지 기간이 끝났지만 도이치증권은 여론을 의식해 한국 주식워런트증권(ELW) 사업을 접기로 했다. 도이치증권은 지난해 영업정지와 함께 새로운 수익 창출원으로 생각하고 뛰어든 ELW 사업에서마저 철수하면서 타격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조사에서 종합 9위를 차지했던 맥쿼리증권은 올해 하락 폭이 가장 컸다. 무려 6계단 하락한 15위에 랭크된 것. 맥쿼리증권 역시 자산 순위, 자본 순위가 각각 9위, 11위로 전년과 같았지만 당기순이익 순위가 9위에서 16위로 대폭 하락해 종합 순위 하락을 이끌었다. 맥쿼리증권의 당기순이익은 전년(250억 원)보다 무려 93.4% 감소한 16억 원에 그쳤다. 이 같은 맥쿼리증권의 결과 역시 ELW와 무관하지 않다.

도이치증권·노무라증권 등과 함께 주요 ELW 사업자로 손꼽히던 맥쿼리증권은 금융 당국이 ELW 시장의 과열을 막기 위해 시장 건전화 조치를 취한 결과 ELW 시장 침체로 인한 손실을 면치 못했다. BNP파리바증권 파생상품부의 유지은 전무는 “금융 당국의 ELW 시장 규제로 절대적 투자자가 많이 줄어든 건 사실”이라며 “ELW 비중이 컸던 증권사는 타격이 적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ELW는 장외 파생 라이선스 중 하나일 뿐 외국계 증권사들의 영업 분야가 다양하고 비중도 다르기 때문에 ELW 시장 위축을 외국계 증권사 전반의 위축으로 연관 짓는 건 무리”라고 덧붙였다.
[2012 베스트 외국계 증권사] 크레디트스위스 2년 연속 1위…외국계 비중 더 커져
세계경제 상황 외국사 실적에 ‘영향’

평가 항목별 순위는 대체로 종합 순위와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각 항목별 상위권에 랭크된 증권사들이 종합 순위에서도 상위권에 오른 것. 자산 순위는 종합 순위 4위에 오른 JP모건증권, 종합 2위에 오른 메릴린치증권, 종합 1위의 크레디트스위스증권이 나란히 1, 2, 3위를 차지했다. 자기자본 순위 역시 종합 순위 1위, 4위(골드만삭스), 2위가 1, 2, 3위에 올랐고 당기순이익도 비슷한 양상을 보여 종합 1위가 1위, 종합 4위(JP모건)가 2위, 종합 3위(UBS증권)가 3위를 기록했다.

다만 NCR 순위는 다른 평가 항목과 다소 차이가 있었다. 1위와 2위는 각각 UBS증권(종합 3위), 크레디트스위스증권(종합 1위)이 차지했지만 3위는 종합 17위인 BOS증권(1677.80%)이, 4위는 종합 13위인 다이와증권(1523.20%)이 차지했다. 지난해 NCR 순위 14위에서 올해 4위로 껑충 뛰어오른 다이와증권과 함께 NCR 순위 변동이 가장 큰 증권사는 BNP파리바증권이다. 지난해 2343%로 독보적 1위였던 BNP파리바증권은 올해 1247.60%로 9위로 떨어졌다.

부동의 톱 3를 제외하고 중위권 순위 변동을 좌우한 것은 당기순이익의 영향이 컸다. 눈길을 끄는 부분은 지난해 유럽 재정 위기 여파 등으로 62개 전체 증권사의 당기순이익이 전년(2조8037억 원)보다 19.2% 감소한 2조2655억 원으로 3년 내 최저치를 기록한 가운데, 외국계 증권사의 비중은 전년 대비 늘어났다는 점이다. 지난해 4080억 원의 당기순이익으로 전체 당기순이익의 14.5%를 차지했던 외국계 증권사들은 올해 4568억 원으로 당기순이익이 증가하며 전체 비중 역시 20.2%로 늘어났다. 그러나 2010년 골드만삭스의 법인세 추징을 감안한다면 오히려 소폭 하락한 수준이다. 적자를 기록한 증권사도 지난해 6개보다 줄어든 4개였지만 20개 외국계 증권사 중 절반인 10개사의 당기순이익이 감소하는 등 외국계 증권사 역시 경기 영향을 피해가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관계자는 “외국계 증권사의 수익에서 절대 비중을 차지하는 브로커리지 실적이 현저히 감소하면서 손익이 격감했다”며 “외국사들의 고객 기반이 해외 기관 투자자들임을 감안할 때 미국과 유럽 등 세계경제 상황 및 주식시장의 침체에 더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어려운 상황에도 일부 증권사들은 공격적 행보를 이어나가고 있다. 지난해 흑자 전환한 BNP파리바증권은 최근 한국 시장에서 증권 업무를 강화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유지은 전무는 “지난 10년간 주로 기관 위주의 영업을 해온 것이 사실”이라며 “지난해 11월 장외파생상품 겸업 라이선스를 받은 만큼 개인 고객들에게 공급하는 상품을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