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동에 있는 추동천 법무사의 사무실은 여느 법무사 사무실과 좀 많이 다르다. 법무사 특유의 딱딱한 분위기를 예상하고 문을 연 이들은 대부분 컴퓨터·복사기·팩스 등 흔히 볼 수 있는 사무기기 외에 벽면 가득히 붙어 있는 음악회 포스터들에 시선을 빼앗긴다.

‘서울아버지합창단’이라고 쓰인 커다란 나무 명패도 이곳의 분위기를 달리 하는데 단단히 한몫한다. 서울아버지합창단의 연습 장소인 서초구민회관에서도 가깝고 또한 대표인 추동천 법무사가 합창단의 단장을 맡고 있는 까닭에 이곳이 언제부터인가부터 자연스레 합창단의 사무실을 겸하게 된 까닭이다. 합창단의 정기 연습이 있는 날인 매주 화요일이 되면 오후부터 함께 연습을 가려고 미리 모여드는 단원들로 좀 더 활기를 띠기도 한다. 사람을 좋아하고 노래를 좋아하고 노래하는 사람은 더 좋아하는 추 법무사에게 딱 어울리는 곳인 셈이다.
[뷰티풀 라이프] 추동천 법무사, “아버지들의 합창에는 감동 이상의 힘이 있죠”
“원래 어려서부터 혼자 흥얼흥얼 노래 부르는 걸 좋아했어요. 노래를 결코 잘하진 못했지만 노래가 너무 좋아 군대에서 합창단 활동을 했던 게 지금까지 이어졌죠.”

14년 전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여파로 실의에 빠진 한국의 아버지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서울아버지합창단’은 이름 그대로 남자, 그것도 아버지들로만 이뤄진 남성 합창단이다. 30대에서 50대 후반에 이르는 90여 명의 아버지들이 각각의 음역에 맞춰 테너1·테너2·바리톤·베이스로 나누어 구성돼 있다. 그중에서 그가 속한 파트는 남성 합창에서 가장 보편적인, 그러나 그만큼 중심을 잘 잡아야 하는 바리톤 부문이다.

“처음 합창을 할 때만 해도 노래 실력이 영 형편없었어요. 하지만 14년 동안 계속하다 보니 이젠 제법 들어줄만한 정도는 됐다고 하네요?(웃음)” 거의 매주 한 번씩 2시간 30분 동안 연습하는 과정을 한 번도 빼놓지 않은 덕분이다. 서울아버지합창단의 단원 대부분이 그와 비슷하다. 사회에서는 평범한 직장인, 가정에서는 평범한 아버지인 이들이 그저 노래를 좋아한다는 공통점만으로 모인 합창단인 것이다. “그래서 입단 과정도 특별히 어렵지 않아요. 그저 지휘자 선생님 앞에서 노래하고 자신의 음역에 맞는 파트를 찾기만 하면 되죠. 자격 조건은 60세 이하의 남성으로 아버지이기만 하면 돼요.”


함께해서 더욱 빛나는 공연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만큼 연습은 언제나 흥겹지만 진지한 분위기로 진행된다. 노래 한 곡을 익히는데 걸리는 시간은 약 3개월 정도다. 악보를 보고 부르는 것이 아니라 전부 외워서 불러야 하기 때문에 그리 쉽지만은 않다. 1주일에 연습은 단 하루뿐이기 때문에 새로운 노래를 익힐 때면 평상시에도 시간이 날 때마다 외워야 할 부분을 꾸준히 반복해야 한다.

합창단에서는 가장 나이가 많은 어른에 합창단 안팎의 살림살이를 도맡고 있는 단장이라는 중책을 맡고 있는 그 역시도 마찬가지다. 노래할 때만큼은, 합창할 때만큼은 나이도 직책도 사회적 지위도 모두 잊고 오직 한 사람의 단원으로 합창에만 몰두한다. “합창은 나 혼자 잘 부른다고 잘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에요. 옆 사람의 목소리, 그리고 전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 목소리들과 잘 화합해야 비로소 좋은 합창을 만들 수 있어요. 일반 사회생활과 똑같죠.”

서울아버지합창단은 여느 합창단보다 유난히 공연이 많은 합창단에 속한다. 1년이면 보통 10~12회 정도의 공연을 벌인다. “우리는 실력을 겨루는 합창 대회에 나가지는 않아요. 창단 연주회를 제외하면 대부분 모두 봉사를 겸한 자선 공연이 대부분이죠.” 매년 창단 연주회 때는 객석에 단원들의 가족과 지인들이 가득하다. 남편과 아버지들이 1년 동안 노력한 모습을 보러오는 것이다. “합창을 하면 대부분 가족들이 더 좋아하더라고요. 목 관리, 체력 관리를 해야 하니까 평소에도 술·담배를 줄이게 되고 가족들과 대화의 폭도 좀 더 넓어질 수 있기 때문이죠. 게다가 무대 위에서 단복을 입고 노래하는 모습도 꽤 멋지잖아요.(웃음)”

물론 가족이나 지인들 외에도 순수하게 서울아버지합창단의 공연을 즐기러 오는 팬들도 적지 않다. 남성합창단답게 묵직하면서도 우렁찬 화음, 지휘자의 지도 아래 꾸준한 발성 연습을 거친 덕분에 아마추어 합창단답지 않은 탄탄한 노래 솜씨가 서울아버지합창단만의 매력이기 때문이다. 이 밖에 합창 단원 가족들의 결혼식 같은 자리에서도 서울아버지합창단의 노래는 빛을 발하곤 한다. 하지만 그에게 가장 중요하고 의미 있는 공연은 따로 있다. 바로 자선 공연이다.

자선 공연은 처음 창단 때부터 지속돼 온 서울아버지합창단의 필수 행사다. 양로원 돕기, 무의탁 노인 돕기, 중환자 위문 공연, 교도소 위문 공연 등 노래와 봉사를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 가리지 않고 발 벗고 나섰다. 공연만 펼치는 것이 아니다. 무대가 끝나고 나면 목욕 봉사, 놀이 봉사 등 실제로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부분을 찾아 물심양면의 도움을 아끼지 않는다. 합창단원들은 양로원이나 노인 복지 시설에 공연을 가면 거기 있는 분들의 아들이나 손자가 된다. 마찬가지로 소년원에 공연을 가면 그 아이들의 아버지가 된다.

“소년원에도 합창단이 있어 가끔 협연도 하고 또 공연이 끝난 뒤 아이들과 담소를 나누기도 하죠. 아이들이 우리 공연을 참 좋아해요. 아무래도 우리가 평범한 아버지들이라는 것을 아니까 가족들 생각도 많이 나서 그런지 많이 울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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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를 통해 더 많은 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아무리 바빠도, 아무리 먼 곳에 있어도 노래로 좋은 뜻을 전하기 위해 발걸음을 아끼지 않는다. 실제로 2005년에는 연변에 있는 용정중학교에 가서 자선 공연을 하기도 했다. “그곳 학생들의 부모 중 70% 이상이 한국에서 일하고 있더라고요. 그 때문에 부모 없이 외롭게 생활하는 아이들이 많았어요.” 아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기 위해 한국에서 일하는 부모들을 수소문해 사진을 찍어 가 아이들의 졸업식 축하 공연 때 부모님의 사진을 보여주며 감동을 주기도 했다. 멀리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는 부모님의 사진을 보고 눈물지으며 기뻐하던 아이들의 얼굴은 그에게 가장 잊히지 않는 추억 중 하나다.

“가끔 지방에서 문의가 오곤 해요. 서울아버지합창단과 같은 합창단을 만들고 싶다고. 우리가 아무래도 언론도 많이 탔고(웃음), 활동도 왕성히 하고 오랫동안 공연을 펼쳐오다 보니까 조언을 구하는 것이죠.” 그때마다 창단과 운영의 경험을 살려 조언과 자문을 해준다. 좋은 지휘자를 구하는 방법부터 반주자를 구하는 것 등 실질적인 도움을 아끼지 않는다. 부산의 ‘푸른아버지합창단’과 ‘전주아버지합창단’ 등도 모두 그런 인연을 통해 만난 동료들이다. “이웃과 더불어 즐길 수 있는 공연이라면, 희망과 용기를 필요로 하는 무대가 있다면 기꺼이 함께해야죠. 이 시대의 평범한 아버지들만이 들려줄 수 있는 묵직한 감동을 기대해 주세요.”

김성주 객원기자 helieta@empal.com│사진 서범세 기자 joyci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