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가 세계 최대 규모 문명박물관(museum of civilizations)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오스만투르크·셀주크투르크 등 옛 터키의 문화유산뿐만 아니라 그리스·로마·비잔티움·히타이트 등 발칸반도와 아나톨리아 고원지대 등 오늘날 터키 지역과 연관을 맺고 있는 나라들의 문화유산을 총망라해 전시할 계획이다. 터키 정부가 해외 각지에 유출된 옛 터키의 유물을 반환받아 박물관을 채우기로 방침을 세우면서 향후 결과가 주목된다.

러시아 일간 프라브다 등 외신에 따르면 터키 수도 앙카라 인근에 2만5000㎡ 규모로 문명박물관이 들어설 예정이다. 박물관 완공 시기가 터키 독립 100주년이 되는 2023년으로 잡혀 있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박물관 규모는 세계 최대 수준에 이르게 한다는 것. 문제는 초대형 박물관을 채울 유물 상당수가 해외에 반출돼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터키 영역에는 다양한 문명권의 수많은 제국들이 명멸을 거듭했다. 자연스럽게 수많은 유물들이 터키 영내에 남아 있었다.

하지만 19세기 제국주의 시대 서구 열강들이 터키 유물들을 잇달아 자국으로 반출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고대·중세 유물 대다수가 해외로 빠져나갔다. 1906년 오스만튀르크 제국이 유물 불법 수출 금지 법안을 공표했지만 유명무실했다. 이후에도 고고 유물 발굴 현장에서 채굴된 유물 상당수가 암시장과 밀수꾼을 통해 해외로 빼돌려졌다. 유럽과 미국의 예술품 컬렉터들 사이에서 옛 터키 유물은 고가에 거래되는 아이템이었다.

이에 따라 터키 정부는 이 같은 흐름을 되돌리기로 마음먹고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터키 정부의 자국 유물 환수 조치도 성과를 얻고 있다. 지난해 봄 독일 정부는 옛 히타이트 제국의 도시였던 하투사에서 빼돌렸던 스핑크스상을 터키로 돌려주면서 화해의 제스처를 보였다. 약 3000년 정도 된 이 유물은 터키에서 불법 반출돼 1934년부터 베를린 페르가몬 박물관에서 전시됐다.
세계 최대 문명박물관 세우는 터키, 자국 유물 환수하는 데 ‘총력’
최근에는 레체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총리가 미국 방문을 마친 뒤 상체 부분만 남은 로마 시대 대리석 조각상과 함께 귀국했다. 이들 유물은 보스턴예술박물관이 ‘터키 국민들에게 주는 선물’ 형식으로 반환됐다. 헤라클레스의 상체만 남은 이 조각은 1981년 미국에 불법적 유통 경로로 매입된 것이 드러나 ‘자진 반환’ 형식으로 터키로 돌아온 것이다.

미국에선 로스앤젤레스 게티미술관과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클리블랜드 미술관, 하버드대 덤바턴오크스도서관 등이 터키 정부로부터 일부 소장품이 불법적으로 반출된 터키 유물이라며 반환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터키 정부는 이들 미술관과 박물관에 해당 유물의 대여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에르투그룰 구네이 터키 문화관광 장관은 “지난 3~5년간 3000개 이상의 옛 터키 유물들이 터키로 반환됐다”며 “터키에서 불법적인 경로로 유출된 모든 유물에 대한 추적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불법 유출된 유물이 어느 나라, 어떤 박물관에 소장됐는지에 상관없이 반환 작업을 진행할 것이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해외 유물들의 반환 문제뿐만 아니라 보관 상태에 대한 조사와 압력도 강화하겠다는 방침도 덧붙였다.

터키 정부는 문화재 환수를 위해 극단적인 방법을 쓰는 것도 주저하지 않고 있다. 올 해초 터키 톱카피박물관은 영국 대영박물관에 소장돼 있던 옛 이슬람 유물 수십 점을 대여해 전시했다가 관람 기간이 끝난 뒤 반환을 거부했다.

최근 들어서는 터키 연안에서 발견된 고대 페니키아 선박의 전시도 취소됐다. 기원전 14세기쯤 침몰한 이 고대 선박은 1982년 터키 안탈라 해안에서 발견됐다. 터키 정부는 이들 선박이 영국 등 해외에 전시되기 위해선 불법 반출된 조각상 등의 복귀가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함께 터키 정부는 전 세계 주요 박물관들과 터키 유물 반환과 관련해 마찰을 빚고 있다.


김동욱 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kimdw@hankyung.com

이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8월 6일 발행 871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