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 시장 태풍의 눈으로 떠오른 ‘망 중립성 논란’


카카오톡의 무료 모바일 전화 ‘보이스톡’을 둘러싼 갈등이 본격적인 망 중립성 논쟁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애초 6월 4일 카카오톡이 보이스톡 시범 서비스를 전격 선언하고 이틀 뒤 SK텔레콤과 KT가 발 빠르게 5만4000원 이상 정액 요금제 가입자들만 접속할 수 있도록 차단하면서 상황이 이동통신사들에 유리하게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이통사들의 서비스 차단 조치에도 불구하고 작년 3월 카카오톡 무료 문자 서비스 차단설로 인터넷이 들끓었던 것과 비교해 네티즌들의 반응은 비교적 담담했기 때문이다.
<YONHAP PHOTO-0339> SK텔레콤, 프리미엄 LTE 무선 중계기 상용화

    (서울=연합뉴스) SK텔레콤은 12일 800MHz와 1.8GHz 주파수 대역을 동시에 지원하고 기존 대비 LTE 속도를 2배로 업그레이드한 `프리미엄 LTE 무선 중계기'를 지난 5월 세계 최초로 상용화해 6월부터 본격적으로 구축하고 있다고 밝혔다. 2012.6.12

    photo@yna.co.kr/2012-06-12 09:09:40/
<저작권자 ⓒ 1980-2012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SK텔레콤, 프리미엄 LTE 무선 중계기 상용화 (서울=연합뉴스) SK텔레콤은 12일 800MHz와 1.8GHz 주파수 대역을 동시에 지원하고 기존 대비 LTE 속도를 2배로 업그레이드한 `프리미엄 LTE 무선 중계기'를 지난 5월 세계 최초로 상용화해 6월부터 본격적으로 구축하고 있다고 밝혔다. 2012.6.12 photo@yna.co.kr/2012-06-12 09:09:40/ <저작권자 ⓒ 1980-2012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애플도 페이스타임 3G 지원 선언

하지만 불과 하루 만에 상황이 급반전됐다. 6월 7일 무료 모바일 전화 전면 차단 입장을 고수하던 3위 사업자 LG유플러스가 돌연 보이스톡 전면 허용으로 입장을 바꾼 것이다. 곧이어 6월 11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애플 세계 개발자 콘퍼런스에서는 더 위력적인 폭탄이 날아들었다. 올가을 배포되는 iOS6부터 자사의 무료 모바일 영상 통화 서비스 ‘페이스타임’을 와이파이뿐만 아니라 3G 등 무선 데이터망에서도 쓸 수 있게 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페이스타임은 무료 음성 통화를 제공하는 보이스톡에서 한 발 더 나아간 것이다. SK텔레콤과 KT는 페이스타임에 보이스톡과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겠다고 밝혔지만 2009년 아이폰 출시 이후 사실상 ‘을’의 입장으로 밀려난 국내 통신사로서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6월 1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보이스톡 논란과 망 중립성’ 토론회에서 이석우 카카오톡 대표가 이통사들을 겨냥해 직격탄을 날렸다. 이 대표는 통신사들이 보이스톡을 견제하려고 의도적으로 통화 품질을 ‘조작’했다는 충격적인 주장을 펼쳤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단순한 서비스 차단과는 차원이 다른 엄청난 후폭풍을 부를 수 있는 사안이다.

이 대표는 보이스톡 통화 품질 모니터링 결과를 근거로 제시했다. 오픈 초기 보이스톡 서비스의 데이터 손실률이 0~1%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12~50%까지 치솟았다는 것이다. 데이터 손실률은 음성신호를 데이터로 변화해 수신자에게 전달되는 과정에서 데이터가 유실되는 비율을 말한다. 카카오톡에 따르면 6월 13일 현재 SK텔레콤의 데이터 손실률은 18.72%, KT는 14.84%, LG유플러스는 51.04%다. 이 수치가 10%대만 돼도 정상적인 통화가 어렵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 대표는 “통신사들이 (5만4000원 미만 요금제 가입자들의) 접속을 전면 차단했다가 며칠 전부터 통화 품질을 낮추는 방법으로 사용을 제한하고 있다”며 데이터 요금은 나가는데 전화가 걸리지 않자 카카오톡에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이통사들은 카카오톡의 공격에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SK텔레콤과 KT는 기존에도 무료 모바일 인터넷 전화가 허용되지 않는 요금제 가입자가 이를 이용하려고 시도하면 해당 가입자의 네트워크 속도를 낮춰 사용을 제한해 왔다고 설명한다. 접속을 전면 차단하면 무료 모바일 인터넷 전화를 서비스하는 회사의 다른 서비스 이용에까지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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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통신사들이 의도적으로 통화 품질을 떨어뜨렸다는 주장은 ‘망 중립성’ 이슈를 논쟁의 전면으로 부상시켰다. 과연 통신사들이 인터넷 망을 어디까지 ‘관리’할 권한이 있고 실제로 어떻게 하고 있느냐는 문제다. 오늘날 인터넷을 빼놓고는 일상생활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인터넷을 통해 수시로 정보를 주고받고 인터넷을 중심으로 엄청난 산업이 형성돼 있다. 이처럼 인터넷의 공공재적 성격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반면 인터넷 망 자체는 어디까지나 민간 통신사들의 소유다. 여기서 복잡한 문제들이 발생한다.

인터넷은 본래 그 구조에서부터 개방성을 핵심 요소로 설계됐다. 인터넷은 데이터를 잘게 쪼갠 다음 이를 패킷 단위로 묶어 전송한다. 패킷에는 최종 목적지의 주소(IP 주소)가 포함돼 있어 인터넷이라는 강물에 패킷을 띄우면 스스로 경로를 찾아 주어진 목적지까지 흘러간다. 수신 측에서는 도달한 패킷들을 다시 모아 원래 데이터를 복원하는 방식이다. 이를테면 집에 있는 PC로 해외 A 홈페이지에 접속해도 내 PC와 A 홈페이지 사이에 일반 전화 통화처럼 중앙 교환기를 거쳐 일대일로 접속 회선이 구성되지 않는다. 그저 A 홈페이지 주소를 가진 패킷들을 흘려보내면 인터넷 망을 돌고 돌아 목적지에 도달한다. 여기서 인터넷은 그저 패킷이 흘러 다니는 통로일 뿐이다. 패킷에 담긴 데이터의 내용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그동안 망 사업자(통신사)와 인터넷 사업자(콘텐츠 사업자)들은 이런 구조 속에서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형성하며 발전해 왔다.

인터넷 확산과 고도화가 구글과 페이스북 등 인터넷 사업자들에 성장의 기회를 제공하고 이들의 혁신적인 서비스가 거꾸로 인터넷 가입자의 증가로 이어졌다. 하지만 통신 시장의 환경이 급변하면서 둘 사이에 긴장감이 커지기 시작했다. 인터넷 트래픽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반면 통신사들은 시장 포화로 매출 정체를 경험하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터넷 사업자들이 자신들의 생존 기반을 위협하는 무료 문자, 무료 음성 통화, 무료 영상 통화 서비스를 쏟아내자 통신사들이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카카오톡의 보이스톡 서비스를 차단하면서 통신사들이 내세운 논리는 트래픽 과부하와 네트워크 투자비용 분담 등 두 가지로 요약된다. 보이스톡의 등장으로 12조9000억 원(2011년, 이통 3사 합계)에 달하는 음성 매출에 큰 타격이 불가피하다. 그런데 보이스톡 공짜 전화가 유발하는 엄청난 데이터 트래픽을 감당하는데 필요한 네트워크 투자는 고스란히 통신사 몫으로 돌아온다. 부담은 통신사들이 지고 수익은 보이스톡이 가져가는 셈이다. 통신사로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다. 이들은 보이스톡의 ‘무임승차’를 용납할 수 없으며 어떤 형태로든 망 투자 비용을 분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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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픽보다 수익 모델 충돌이 문제

하지만 이번 논란의 핵심은 ‘트래픽’이 아니라 ‘수익 모델’의 충돌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시스코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세계 모바일 트래픽에서 무료 모바일 인터넷 전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0.3%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 예상치도 0.4% 안팎이다. 시스코는 이를 근거로 무료 모바일 인터넷 전화 사업자들의 트래픽을 ‘관리’해야 한다는 이통사들의 주장은 정당성이 없다고 일침을 놓았다. 통신사들의 음성 통화 매출 붕괴도 과장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3월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 낸 ‘모바일 인터넷 전화가 이동통신 시장의 진화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는 무료 모바일 인터넷 전화 전면 허용과 통화 품질 대폭 개선을 가정한 최악의 시나리오에서도 이통사 매출 감소는 2.36%에 그칠 것으로 추정했다.

현재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800만 명에 달하는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 가입자들이다. 5만4000원 미만 요금제 가입자들은 어차피 무료 모바일 인터넷 전화가 허용돼도 주어진 데이터 용량 내에서 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데이터 폭증을 유발한 무제한 요금제를 먼저 채택한 것은 통신사들이다. 무제한 요금제가 데이터 폭증만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통신사의 데이터 수익 증가를 가져올 것이라는 판단이 작용한 것이다. 실제로 통신사들은 무제한 요금제로 매년 5조3000억 원대의 수익을 챙기고 있다.

물론 데이터 폭증으로 인해 지속적인 대규모 네트워크 인프라 투자가 필요하다는 데 이견을 다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 다만 투명한 정보 공개가 선행되지 않는 한 통신사들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지난 5월 3일 ‘제1회 망 중립성 이용자 포럼’에서 한종호 NHN 정책커뮤니케이션실 이사는 “통신 3사가 망 설비에 투자한 돈이 6조 원대지만 마케팅에 사용한 비용 역시 6조 원이 넘는다”며 “통신사들의 자구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