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범 엔키노 대표


‘아이러브스쿨’에서 맛봤던 그 달콤한 꿈을 잊을 수 없었나 보다. 마치 한여름 밤의 꿈처럼 찰나의 순간에 지나가 버렸지만 2000년 아이러브스쿨에 있을 때 이들은 행복했었다. 그들이 예상치 못했던 것처럼 아무도 예상치 않게 아이러브스쿨은 성공의 문턱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그리고 그 뒤 1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시간 동안 다른 일을 하면서도 그때 그 기분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돌고 돌아 다시 창업의 자리에 섰다. 엔키노 성기범 대표와 임준규 이사의 얘기다. 인터넷 벤처 초기 시절 못다 이룬 그 꿈을 이들은 이제 모바일 시대를 맞아 다시 이루려 하고 있다.

홍익대 산업공학과 89학번인 성 대표는 졸업 직후 고려대 대학원 산업공학과에 들어갔다. 홍익대에서 당시 막 군대에서 제대한 김영삼 아이러브스쿨 대표(홍익대 87학번)를 만났다. 군 복무를 마치고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경영정보시스템(MIS) 과정을 김영삼 대표와 함께 이수하게 됐고 여기서 프로그래머가 되는 기반을 닦았다.

1997년 삼성전자 정보통신연구소 기술기획팀에 입사해 만난 사람이 당시 임준규 과장이었다. 임준규 과장은 위치 기반 서비스(LBS)를 개발하면서 창업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성 대표 역시 김 대표와 함께 만났다 하면 창업 이야기꽃을 피우곤 했기에 임 과장과도 죽이 잘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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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브스쿨에서 벤처의 꿈을 꾸다

때마침 김 대표가 아이러브스쿨을 창업하고 증가하는 트래픽으로 정신이 없던 시절이었다. 2000년 초 성기범·임준규 두 사람은 삼성을 그만두고 나와 아이러브스쿨에 합류했다. 성기범은 마케팅 홍보팀장으로, 임준규는 기획팀장으로 각각 입사했다.

이들이 처음부터 대박만을 노렸던 것은 아니었다. 너무나 눈앞에 빤히 보이는 엄청난 기회들을 그냥 지나치기도 힘들었다. 사용자들의 열광적인 반응과 주변의 부추김도 이들에게 대박의 꿈을 꾸게 했다. 하지만 회사를 어떻게 경영할지, 어떤 식으로 확장해 나갈지, 매각한 뒤 어떤 길을 택해야 할지 감이 없었던 이들은 결국 회사를 잃었다.

최종 결정이 나기 전 2001년 1월 성기범·임준규 두 사람은 먼저 아이러브스쿨을 떠났다. 하지만 손에 얼마간의 돈을 쥔 상태였다. 2001년 4월 성 대표는 밸류랩이라는 벤처 인큐베이팅 회사를 차렸다. 성기범·임준규뿐만 아니라 김 대표도 합류했다. 그야말로 아이러브스쿨 출신들의 새로운 도전이었다. 하지만 뜻밖의 실패로 지쳐 있던 이들은 미래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달랐다. 밸류랩에는 성 대표 혼자 남게 됐다.

밸류랩은 2002년 북모임이라는 일종의 사이버 서재 서비스를 시작하게 된다. 가상의 도서관에 내가 정보를 직접 등록하고 이 정보를 사람들과 공유하는 콘셉트다.

“예를 들어 ‘반지의 제왕’ DVD를 등록했다고 합시다. 나와 친구든 온라인에서 어떤 관계를 맺은 사람은 상대방이 무엇을 소유하고 있는지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쉽게 그것을 빌려달라고 하거나 자신이 갖고 있는 어떤 다른 것과 교환할 수 있죠. 서로 상대방이 무엇을 갖고 있고 그중 어떤 것을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지 알면 여러 가지 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고 생각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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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해스 왓(Who has what)?”을 주제로 한 북모임 서비스는 당초 모든 물건을 등록할 수 있게 하자는 개념에서 출발했지만 우선 가장 등록이 쉬운 책으로 출발하면서 이름이 그렇게 붙었다고 한다. 지역 정보가 결합되면 지역을 기반으로 어떤 사람들이 어떤 물건을 갖고 있는지가 파악된다.

한동안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입소문이 퍼지면서 사람들이 조금씩 늘기 시작했다. 2005년 코리아닷컴과 제휴하면서 서비스를 본격적으로 확장, 8000여 명의 사람들이 5만5000권의 책 정보를 올려놓게 됐다.

“서비스가 막 확장하고 있던 시점에 당시 인기를 끌던 미니홈피 스타일로 변경했어요. 그런데 오히려 이 방식을 사람들이 불편해 하는 것 같았습니다. 국내에서 성과가 빨리 나오지 못하면 글로벌에서 승부를 봐야 했는데 글로벌화를 못한 것도 아쉬웠고요.”

한국에서 사업하는데 한계를 느낀 성 대표는 미국으로 건너갔지만 거기서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2007년 다시 귀국해 정보기술(IT)과 전혀 무관한 분야에서 일했다. 그래도 그는 마음속에 계속 다시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그때 계기가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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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 배경을 직접 만든 동영상으로

2010년 말 성 대표는 학창 시절부터 알고 지냈던 연세대컴퓨터공학과 88학번 출신인 문현정 씨를 2010년 말 다시 만나게 된다. 그때 문 씨는 미국 대사관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비자 발급 관련 시스템을 만들었다고 한다. 두 사람은 “우리가 만든 것을 우리가 떳떳하게 팔아 자립하자”고 의기투합, 2011년 8월 8일 창업했다.

‘아빠의 자격’이라는 이름으로 두 사람의 팀을 만들고 SK텔레콤의 상생혁신센터에 아이디어를 제안해 1인 창조 기업으로 선정됐다. 이때 ‘환전왕’이라는 애플리케이션(응용 프로그램, 이하 앱)을 만들어 5만 건이 다운로드되는 등 실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어떤 은행에서 환전하면 가장 싼지, 얼마나 이득을 보는지, 해당 은행 중 내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곳은 어디인지 등을 알려주는 앱이었다.

이들의 다음 프로젝트는 ‘꽃 인식 앱’이다. “꽃에 앱을 갖다 대면 무슨 꽃인지 바로 알려주면 재미있지 않을까. 확장되면 꽃이 아닌 다른 분야로도 얼마든지 넓힐 수 있고, 그러면 사용될 곳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임준규 부사장이 합류했고 디자인을 맡을 손범진 팀장이 새로 들어오면서 팀 구성이 완료됐다. 그런데 인식한 이미지를 프로세싱하는 과정에서 이것을 배경 화면으로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착안하게 된다.

“이제 모두가 PC를 손에 들고 다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배경 화면에서 모든 것을 바로 하는 그런 시대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죠. ‘스마트폰의 홈을 장악하자. 배경 화면은 결코 그냥 배경 화면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게 출발점이 됐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온 키노(Kino)는 처음엔 동영상으로 배경 화면을 만들 수 있는 앱으로 출시됐다. 어떤 동영상이든 키노 앱을 활용하면 스마트폰 배경 화면으로 바꿀 수 있다. 배경 화면을 여러 가지 자신의 입맛대로 변화시키거나 복수의 배경 화면을 깔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다만 아이폰에서는 안 된다. 안드로이드폰에서만 가능하다.

사람들이 각자 찍은 동영상으로 배경 화면을 만들고 자신의 배경 화면을 남과 공유도 할 수 있다. 그러면서 바탕 화면에서 이미지와 동영상을 주고받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가 될 수 있다는 게 엔키노의 구상이다. SNS 기능이 추가된 새 버전의 키노 앱은 3개월 뒤 출시될 예정이다. 궁극적으로는 특정 앱이 아니라 바탕 화면이 개인적인 미디어 공간이 될 것이란 게 성 대표의 판단이다. 즉 광고 업체들이 이제 특정 앱을 실현해야 하는 그런 광고판이 아니라 개개인의 휴대전화 바탕 화면에서 직접 광고하는 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그런 시대에 앞서 스마트폰 홈을 미리 장악하겠다는 계획이다. 인식 앱을 만들려고 했다가 일이 커졌다. 아이러브스쿨 출신들의 재미있는 실험이 무르익고 있다.



임원기 한국경제 경제부 기자 wonkis@hankyung.com│사진 서범세 기자 joyci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