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 참여율 45% 이끌어 내…매출 ‘점프’
“큰 금액이 아니라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기분 좋고 재미있게 동참할 수 있는 캠페인이 아닐까 싶어요.”대학생 유희숙 씨는 최근 편의점에서 생수를 살 때 수많은 브랜드 중 CJ제일제당의 미네워터를 일부러 고른다. 다른 생수에 비해 가격이 조금 비싼 편이지만 미네워터를 구입하면 간단하게 아프리카의 물 부족 국가 어린이들을 위해 기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네워터 생수 병에는 일반 바코드 외에 물방울 모양의 바코드가 하나 더 있다. 계산할 때 물방울 바코드를 한 번 더 찍으면 100원이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깨끗한 물을 공급하는 데 기부된다. 소비자가 100원을 기부하면 추가로 제조사 CJ제일제당이 100원, 유통사(CJ올리브영·보광훼미리마트)가 100원, 병당 총 300원의 기부 금액이 모아진다. 소비자·제조사·유통사가 모두 참여하는 기부 캠페인이다. 1명이 기부할 때마다 300명의 어린이들에게 물을 나눠줄 수 있게 된다.
유 씨는 “평소에 같은 물건을 구매하더라도 더 재미있는 광고, 더 참신한 아이디어, 더 예쁜 패키지를 선호하는 편”이라며 “좋은 기부 캠페인을 발견했으니 이 캠페인이 지속되는 동안 여기에 동참할 것”이라고 밝혔다. 매출 전년 대비 3.5배 늘어
최근 전 세계적으로 기부 등 윤리를 강조하는 이벤트가 마케팅의 새로운 대세로 떠오르고 있다. 대부분의 기부형 이벤트는 고객 참여가 높아질수록 기업의 기부액이 증가하는 형태로 마케팅과 사회 공헌을 접목하는 형태다. 서구에 비해 기부 문화가 활성화돼 있지 않은 한국에서도 기부 마케팅은 큰 호응을 보이고 있다. 기업은 공정무역·기부 등을 통해 사회적 공헌에 앞장서는 착한 기업으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이를 마케팅 전면에 앞세워 소비자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를 각인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착한 소비를 유도해 매출도 큰 폭으로 늘릴 수 있다.
미네워터는 지난 3월 22일 ‘세계 물의 날’을 기준으로 이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날은 점차 심각해지는 물 부족과 수질 오염을 방지하고 물의 소중함을 되새기기 위해 유엔이 제정해 선포한 날이다. 물 부족으로 생명을 위협받는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깨끗한 물을 전달한다는 ‘미네워터 바코드롭(BARCODROP)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시작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하고 상징성이 있는 날이었다.
미네워터는 이 캠페인을 위해 생수 병 패키지도 완전히 바꿨다. 기존 패키지는 원통형의 투명한 보틀에 핑크색 장식이 있는 세련됐지만 다소 밋밋한 디자인이었다. 하지만 기부 캠페인을 시작하면서 비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흑인 남녀 아이의 일러스트를 넣었다. 그리고 아이들 머리 위에 기부를 위한 바코드를 물방울 모양으로 새겨 넣었다.
이 물방울 바코드가 희망의 빗물이 돼 아프리카 아이들의 희망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넣었다. 재밌고 기발한 아이디어도 숨어 있다. 만약 기부를 원하지 않으면 물방울 바코드를 떼어내면 되는데 그러면 그 안에 흙탕물이 그려져 있다. 왠지 아프리카 아이들의 희망에 흙탕물을 끼얹는 듯한 기분이 들어 다시 바코드를 붙이고 기부에 참여하는 이들도 있다.
미네워터의 패키지는 일반적인 제품 포장에서 벗어나 용기 자체를 적극적으로 광고 수단으로 삼은 덕분에 앰비언트 미디어(Ambient Media)의 모범 사례로도 꼽히고 있다. 이와 함께 제조사·유통사·소비자가 다자 참여, 바코드를 이용한 쉽고 편한 기부 참여 등 새로운 유형의 사회 공헌 프로젝트로 주목 받고 있다.
미네워터의 기부 캠페인 성공 사례는 우리 사회 저변에 옳은 일에 참여하려는 분위기가 폭넓게 확대된 덕분이었다. 최근 소셜 미디어의 확대에 따라 사회적으로 서로 연대하려는 의식이 강해져 있다. 사회적으로 옳은 가치를 공유하고 전파하려는 생각이 과거에 비해 많이 퍼져 있기 때문에 최근 기부나 착한 마케팅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 마케팅 전문가들은 말한다.
CJ제일제당은 미네워터 기부 마케팅을 통해 매출이 전년 대비 3.5배나 늘었다고 밝혔다. CJ제일제당 생활·편의팀 김영건 부장은 “미네워터는 한동안 매출이 늘어나지 못하고 있던 가운데 일반적인 마케팅보다 기부 마케팅이 소비자들에게 더 다가갈 수 있다는 생각에 추진하게 됐다”며 “이어 유통사에 이 캠페인 동참을 제안했고 취지에 동감해 그들도 적극 참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캠페인을 계획하던 단계에서는 CJ제일제당은 소비자들의 기부 참여율을 전체 구매의 20~30%로 예상했었다. 그러나 의외로 반응이 좋아 현재 약 45%가 미네워터를 구매하면서 기부도 함께 선택했다.
미네워터의 기부 캠페인은 소셜 미디어와 블로그 등을 통해 빠르게 퍼져나갔다. 기부에 참여한 소비자들이 제품과 함께 사진을 찍고 인증샷을 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생수 한 방울의 기적’으로 알려지며 트위터와 블로그에는 미네워터의 제품 사진이 가득하다. 소비자들은 스스로 주변 사람들에게 이 기부 캠페인에 참여할 것을 독려하고 참여방법까지 친절히 가르쳐 주고 있다. 기부 마케팅이란 불씨를 놓자 제품 홍보가 소비자들 사이에 스스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진정성 없는 일회성은 외면당해
CJ제일제당은 이번 캠페인을 통해 6월 말까지 불과 3개월 동안 약 2억 원의 기부금이 모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조성된 기부 금액은 유니세프를 통해 아프리카 어린이들이 마실 수 있는 깨끗한 물로 전달된다. CJ제일제당은 이번 기부 마케팅의 성공에 힘입어 6월 말까지였던 기간을 무한정으로 연장했고 다른 유통 업체 등으로도 확대할 계획이다.
이 밖에 여러 기업들도 기부 마케팅을 벌이고 있다. 삼양식품은 지난 3월 ‘나가사끼 짬뽕 착한 이벤트’를 열고 참여자 수만큼 소외 계층에게 라면을 전달하는 마케팅을 벌이기도 했다. 일평균 약 5100건의 참여가 이뤄지는 등 수만 명이 캠페인에 참여해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한편 하나대투증권은 자사로 계좌를 옮기면 거래 수수료의 20~30%를 대학 동문회 등에 자동으로 기부하는 이벤트를 펼치고 있다. 이를 위해 하나대투증권은 총 25개 대학의 동문회와 업무 협약을 맺는 등 기부금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전문가들은 윤리가 새로운 기업 경쟁력 요소로 등장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요즘에는 가격·품질과 안전성, 기술 혁신, 사용자 경험 등이 비슷하다면 기부나 공정무역·인권·환경 등의 윤리적 가치가 강조된 제품을 소비자들이 고르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윤리적 소비자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윤리를 가장한 꼼수 홍보 이벤트 정도로는 성공할 수 없다고 경고한다.
소비자에게 진정성을 전할 수 있는 마케팅만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윤리 마케팅은 제품의 성격, 전사 전략과 연계돼야 하며 일회성 행사보다 성실하고 꾸준히 실행해 윤리적 소비자를 만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마케팅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이진원 기자 zinon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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