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사로잡은 꿈의 무대…매출·인지도‘쑥’


레이디 가가, 비욘세, 빌리 조엘, 스팅, 스티비 원더, 휘트니 휴스턴.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현대카드 슈퍼콘서트의 주인공으로 한국 무대에 섰다는 것이다. 처음 천문학적인 몸값 때문에 웬만한 공연 기획사도 엄두를 내지 못하는 이들을 금융 회사인 현대카드가 초청하겠다고 나섰을 때 뜬금없다는 반응을 보인 전문가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슈퍼콘서트는 국내 문화 마케팅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현대카드의 성공에 자극 받아 유사한 문화 이벤트를 개최하는 기업도 하나둘이 아니다.

슈퍼콘서트는 기업들이 예전부터 해 온 일반적인 공연 후원과는 여러모로 차이가 났다. 우선 대부분 기업이 일회성 행사 후원에 그쳤지만 현대카드는 이를 연례화해 시리즈로 묶었다. 2006년 1월 세계 최정상급 팝페라 그룹 ‘일 디보’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16명의 아티스트가 현대카드 초청으로 한국을 찾았다. 매년 2.3회꼴로 콘서트를 개최한 것이다.
Japanese fan Shoko Kimura, dressed as US pop diva Lady Gaga, pose as she waits for Gaga's concert in front of the venue in Seoul, South Korea, Friday, April 27, 2012. (AP Photo/Lee Jin-man)
Japanese fan Shoko Kimura, dressed as US pop diva Lady Gaga, pose as she waits for Gaga's concert in front of the venue in Seoul, South Korea, Friday, April 27, 2012. (AP Photo/Lee Jin-man)
현대카드가 아니면 볼 수 없는 공연

무대에 선 아티스트들의 면면도 화제를 불러오기 충분했다. 현대카드는 처음부터 세계 최고 수준의 공연에 초점을 맞췄다. ‘이름만 들어도 많은 사람들이 설렘과 흥분을 느낄 수 있는’ 최정상급을 스타들을 유치하는 데 사활을 걸었다.

지난 4월 27일 잠실벌에 수만 명을 불러 모은 레이디 가가는 현존하는 최고의 팝 아이콘이다. 이번 공연에서도 독특한 패션과 파격적인 시도로 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앞서 슈퍼콘서트 무대에선 아티스트들도 지명도에서 결코 뒤지지 않았다. 스티비 원더(2010년)는 현대 대중음악의 시발점으로 불리는 거장이고 비욘세(2007년)는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최고의 디바였다.

빌리 조엘(2008년)과 스팅(2011년)은 1억 장, 휘트니 휴스턴(2010년)은 1억7000만 장의 음반 판매량을 기록한 전설적인 스타들이다. 이들 중 상당수가 슈퍼콘서트를 통해 한국 팬들과 첫 만남을 가졌다. 휘트니 휴스턴과 레이디 가가는 월드 투어의 첫 무대로 슈퍼콘서트를 선택하기도 했다. 현대카드가 아니었다면 성사되기 어려운 일이다.

콘서트 자체만 보면 현대카드의 수익은 마이너스다. 현대카드는 단독 타이틀 스폰서이자 주최사로 전체 비용의 상당 부분을 부담한다. 그러면서도 공연 티켓 수익에는 전혀 간여하지 않는다. 슈퍼콘서트는 현대카드가 광고와 홍보, 부대 행사를 맡고 공연 기획사가 무대 연출과 아티스트를 책임지는 구조로 이뤄진다. 티켓 판매와 수익은 실무를 담당한 공연 기획사의 몫이다.

물론 현대카드는 콘서트 개최로 기업 이미지를 제고하고 브랜드 인지도를 끌어올릴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수익도 나지 않는 콘서트 개최에 수년째 엄청난 자원을 쏟아 붓고 있는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정태영 사장은 슈퍼콘서트에 깔린 현대카드의 전략을 ‘티파니 보석 상자 안에 숨겨진 과학’이라는 말로 요약한다. 티파니 보석 상자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의 설렘과 감동을 상징하는 문화 코드다. 현대카드가 추구하는 문화 마케팅도 이 같은 감성적 접근 방식을 추구한다. 하지만 단순한 감성만으로는 안 된다. 철저한 고객 데이터 분석을 기반으로 한 마케팅 과학이 함께 들어가 있어야 한다.
[세상을 바꾸는 마케팅] 문화 마케팅 현대카드의 슈퍼콘서트
우선 슈퍼콘서트는 현대카드의 고객 기반을 넓혀준다. 슈퍼콘서트 티켓을 구매할 때 현대카드로 결제하면 20~30%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보통 10만 원이 넘는 티켓 가격을 생각하면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다. 슈퍼콘서트 티켓 결제 시 현대카드 사용 비율은 매년 꾸준한 증가 추세다. 2006년 첫 콘서트 때는 티켓 구매자 64%가 현대카드로 결제했지만 2009년 4회 때는 이 수치가 84%까지 치솟았다. 지난해 열린 스팅 공연 때는 무려 90%가 현대카드로 티켓을 구매했다.

이는 현대카드가 최근 급격히 늘어나는 문화 공연 애호가들의 필수 아이템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슈퍼콘서트가 일회성 행사로 끝나지 않고 매년 2~3회씩 열리기 때문에 팬들 입장에서는 현대카드를 한 번 만들어 두면 두고두고 그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공연장을 자주 찾는 고객들 사이에서 현대카드의 ‘지갑 내 점유율’이 높아지는 게 당연하다.

또 하나 현대카드가 주목하는 것은 고객 경험이다. 수많은 카드사들이 ‘남들과 다른 제품’, ‘차별화된 서비스’를 외치지만 고객들이 이를 실제 경험할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다. 카드사들이 제공하는 제품과 서비스가 크게 보면 ‘거기서 거기’라는 뜻이다. 슈퍼콘서트는 현대카드만의 배타적 서비스를 고객들이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자리다. 슈퍼콘서트는 현대카드 회원 외에는 어떤 제휴카드나 서비스도 혜택을 주지 않는다. 오직 현대카드 회원만이 이 콘서트의 유일한 수혜자가 된다.
[세상을 바꾸는 마케팅] 문화 마케팅 현대카드의 슈퍼콘서트
카드 업계 후발 주자…변화만이 살길

현대카드만의 서비스는 단순히 가격 할인에 그치지 않는다. 콘서트에는 당대 최고의 아티스트들이 초대되고 행사 진행이나 주변 환경, 관람 환경에서 국내 다른 행사에서 볼 수 없는 서비스가 제공된다. 카드회사로서의 정체성을 잘 보여주는 카드 형식의 입장권과 스탠딩 관객들의 피로를 덜어주기 위해 준비하는 비타민 음료, 심지어 공연에 사용하는 야광봉 디자인까지 현대카드 특유의 디테일의 힘이 콘서트 전반에 녹아 있다.

흥미롭게도 현대카드의 문화 마케팅은 벼랑 끝 생존 위기에서 탄생했다. 현대카드는 2001년 다이너스카드를 인수하며 후발 주자로 카드 업계에 뛰어들었다. 당시 시장점유율 1.8%로 1000억 원대 적자를 내고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곧이어 카드 사태가 터지면서 적자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정 사장은 “2003년 터진 카드 사태 당시 ‘황산벌 전투’를 치르는 절박한 심정으로 뛰었다”고 말했다. 그해 현대카드M을 내놓으며 반전의 기회를 잡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2005년 9월 첫 번째 문화 마케팅 이벤트를 선보였다. ‘현대카드 슈퍼매치’였다. 여자 테니스계의 세계적 스타인 마리아 샤라포바와 비너스 윌리엄스의 맞대결을 한국에서 개최한다는 계획이었다. 어떤 기업도 시도해 보지 않은 파격적인 행보였다. ‘카드사가 웬 테니스 경기?’냐는 냉소가 쏟아졌지만 정 사장의 판단은 달랐다. 테니스가 대중적인 인기 스포츠는 아니지만 동호회를 중심으로 충성도 높은 팬들을 확보하고 있고 유럽 귀족과 성직자들이 즐긴 스포츠라는 프리미엄 이미지도 갖고 있었다. 이 행사는 언론의 뜨거운 관심 속에 대성공을 거뒀다.

이듬해에는 슈퍼콘서트가 슈퍼매치의 뒤를 이었다. 제일기획 김홍탁 마스터는 “후발 주자인 현대카드는 ‘현대차 직원들만 쓰는 카드’라는 낡은 이미지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었다”며 “이를 위해 이전에 아무도 해보지 않은 일에 과감하게 뛰어든 것이 성공 비결”이라고 말했다.

2005년 이후 현대카드의 성장 속도는 눈부셨다. 1.8%에 불과하던 시장점유율이 14.3%(2011년)까지 뛰며 업계 2위로 올라섰다. 브랜드 인지도도 2008년 76%에서 지난해 88.1%로 상승했다. 2005년 흑자 전환에 성공한 이후 매년 실적이 좋아져 지난해에는 3236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이런 놀라운 성과를 모두 문화 마케팅의 효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문화 마케팅이 현대카드의 변화를 이끈 핵심 동력이었음은 분명하다.



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