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도 잘 모르는 ‘유류분 제도’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게 부모의 마음이다. 그래도 자식 모두를 똑같이 대해줄 수 없고 유산을 똑같이 물려줄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부모가 먼저 떠난 후 남겨진 자식들이 서로 많은 재산을 상속 받으려고 한다면 어찌할 것인가.

왕년에 법 공부 좀 했다는 사람들 중에도 유류분 제도를 잘 모르는 이가 종종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제도는 원래 우리 민법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1977년 민법 개정 시 새롭게 도입됐다. 법률을 비교적 잘 아는 사람들 중에 유언을 남기면 유류분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고 생전에 미리미리 증여해 두면 유류분을 회피할 수 있다고 오해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유류분 제도에 관한 오해는 심각한 결과를 발생시키기도 한다. 유류분 제도는 오해하고 넘어가도 되는 그런 만만한 제도가 아니다.

유류분은 상속인이 자기가 상속받아야 할 지분의 2분의 1(형제자매는 3분의 1)에 못 미치게 받으면 다른 상속인을 상대로 자기 지분을 달라고 청구할 수 있는 권리다. 만약 피상속인이 일부 상속인에게 재산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내용의 유언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 일부 상속인이 배우자나 직계비속(아들·딸·손자·증손자 등)이라면 법정 상속분의 2분의 1에 대해 반환 청구를 할 수 있고 직계존속(부모·조부모 등)과 형제자매는 3분의 1에 대해 반환 청구할 수 있다. 부모가 사망한 후 발생하는 형제간 상속재산 다툼의 상당 부분은 바로 ‘유류분 반환 청구’라는 형태로 전개된다.
Portrait of an angry couple shouting each other head to head against white backgr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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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수성가형 자산가 권정훈 회장 자녀들의 사례를 통해 상속 분쟁을 어떻게 방지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보자. 구두닦이에서 시작해 500억 원의 자산을 일궈낸 자수성가형 대한민국 0.1% 권정훈 회장은 배우자를 먼저 떠나보낸 뒤 자신도 인생을 차분히 정리할 필요성을 느끼고 자신의 재산을 자녀들에게 물려주려고 한다. 권 회장에게는 4명의 자녀가 있다. 아들은 권 회장의 사업을 물려받은 성실한 기업가다. 큰딸은 의사인 남편을 따라 미국에 이민 가 잘 살고 있고 둘째 딸은 사업가인 남편을 따라 호주에 이민 가 잘 살고 있다.

그런데 막내딸은 일찍 남편과 사별하고 별다른 수입 없이 2명의 자녀를 키우며 어렵게 살고 있다. 권 회장은 이민 간 뒤 잘 찾아오지 않고 경제적으로도 풍족한 큰딸과 둘째 딸에게는 한 푼의 재산도 물려주지 않기로 유언을 남긴다. 그리고 아들에게는 그의 재산 50%에 해당하는 기업의 주식과 토지 등 향후 기업을 운영하는데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동산을 물려주고 막내딸에게는 나머지 50%의 재산에 해당하는 강남의 빌딩 한 채와 금융자산 일체를 물려준다는 내용의 유언장을 작성한다. 그리고 그는 5년 뒤 사망한다.

큰딸과 둘째 딸은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슬픔에 잠겨 급히 귀국, 조용하게 장례식을 치렀다. 그리고 당연한 수순으로 상속재산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아버지 권 회장의 유언 내용을 알게 된다. 이 두 딸들은 국내에 자주 들어오기 힘들다는 점을 감안하고 함께 귀국한 남편들의 약간의 ‘도움(자신의 대학 때 친구인 변호사를 적극 소개)’으로 아마 신속하게 유류분 반환 청구 소송을 제기할 것이다. 즉 법정 상속분의 2분의 1인 125억 원을 돌려 달라는 유류분 반환 청구 소송을 큰아들과 막내딸에게 제기할 것이다. 그리고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지만 그래도 함께 자란 정이 남아 있던 형제간의 관계도 급격하게 악화될 것이다.

이와 같은 사례는 다소 과장되고 극단적일 수 있지만 우리 주위에서 이와 유사한 일들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만약 권 회장이 유언이 아니라 사전에 아들과 막내딸에게 증여해 두면 어땠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소용없다. 이때도 유류분 제도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유류분을 회피하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상속재산을 나눠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유류분이라는 제도가 유언의 자유를 제한하고 상속인들에게 법정 상속분 중 일부를 보장한다는 취지에서 도입된 만큼 유류분 제도의 회피가 쉽지 않은 것이 당연하다.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실행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피상속인이 될 수 있는 부모는 유류분 제도를 제대로 알고 그에 따른 자녀 간 분쟁이 없도록 재산을 물려주는 현명함이 필요하다.



구길모 미래에셋증권 WM비즈니스팀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