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지는 지방정부 리스크


중국에서 지방정부 리스크가 높아지고 있다. 지방정부가 자기 이익을 위해 현지 진출 외자 기업에 타격을 입히는 불법행위까지 묵인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지방정부가 경제 발전 방식 전환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철강과 자동차 등 과잉공급 업종의 구조조정 부진 뒤에 지방정부의 이기주의가 있다는 진단과 맥이 닿아 있다.

칭다오에 있는 한국 스포츠 용품 제조업체인 신신체육용품유한공사(신신상사의 중국 법인)는 배구공과 농구공 등 스포츠 용품 ‘한류’의 주역으로 통했다. 하지만 5월 중순부터 지역 주민들에 의해 회사 출입구가 쇠사슬로 봉쇄돼 있다. 급기야 6월 들어선 주민들이 난입해 점거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중국] 중앙정부와 마찰…성과주의의 ‘ 그림자’
스포츠 용품 ‘한류’에 직격탄 날린 중국 촌정부

불법 사태 뒤엔 촌정부와의 법리 논쟁이 있다. 신신은 공장이 있는 중한촌(中韓村:한국의 읍 정도에 해당)과 한중 수교 한 해 전인 1991년 50년간 토지를 사용하는 임대차 계약을 했다. 당시 외자 유치를 위한 지방정부의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그러나 촌정부는 중앙정부가 1999년 제정한 중국계약법(최장 임대 기간 20년)을 소급 적용하기 시작했다.

지난 4월 17일 임대료를 500% 인상하고 임대 계약을 2년마다 갱신하자고 요구하며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공장을 이전하라고 통보했다. 신신이 거부하자 촌정부는 임대료를 체납했다며 토지 임대 계약 무효를 선언하고 주민들을 동원해 공장을 봉쇄했다. 지방정부가 땅값이 급등하자 더 이익을 챙길 수 있는 지역 재개발이나 임대료 인상에 나서면서 불거진 결과다. 신신 측은 산둥성과 칭다오시 정부 등에 불법 점거를 해결해 달라는 탄원서를 제출했지만 아무런 해법이 나오지 않고 있고 한국 정부도 사법권이 없어 속수무책인 상황이라고 하소연한다.

칭다오는 중국에서 한국 기업이 가장 많이 진출한 곳이다. 칭다오의 고성장 뒤에는 한국 자본의 진출 러시가 있었고 그 뒤에는 칭다오 공무원들의 헌신적인 외자 유치 노력이 있었다는 평을 들어 왔다. 그런 칭다오에서 벌어진 신신 사태는 한때 외자 기업을 떠받들던 지방정부가 리스크가 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방정부가 변신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지방정부를 움직이는 기저에는 여전히 철저한 성과 지상주의가 흐르고 있다. 적지 않은 인센티브와 승진을 위해 외자 유치에 나선 것처럼 적지 않은 세수 증가를 위해 부동산 개발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 비해 외자 기업이 지방 공무원의 승진이나 지역 세수 증대를 위한 수단으로의 가치가 떨어졌을 뿐이다.

지방정부의 성과 지상주의는 중앙정부 정책과도 잦은 마찰을 일으킨다. 중앙정부의 부동산 긴축에 반하는 부양 조치를 잇따라 내놓은 지방정부가 늘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부동산이 지방정부의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철강과 자동차 등 과잉공급 업종에 지방정부들이 앞다퉈 투자에 나서는 것도 같은 이유다. 중국에선 지방 곳곳에서 대규모 전시장을 만들어 자동차 모터쇼를 개최하는 것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만큼 상당수 지방정부가 주력 산업으로 자동차를 꼽는다. 중앙정부의 구조조정 주문에 지방정부는 자기 지역 업체가 피 인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며 맞선다.

더욱이 최근 경기 부양에 다시 나선 중국은 후유증 없는 경기 회복을 위해 지방정부 리스크를 관리하는 게 과제로 떠올랐다. 2008년 말 4조 위안을 푸는 대대적인 경기 부양 과정에서 투자를 주도하며 경기 회복의 견인차 역할을 한 게 지방정부다. 하지만 정확히 집계조차 안 되는 편법 은행 대출로 지방 부채를 눈덩이처럼 키워 중국의 잠재 금융 위기의 뇌관을 만들었다는 지적을 받는다. 2008년식 경기 부양이 되풀이돼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베이징=오광진 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