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건영 고운세상 코스메틱 대표

한때 그는 열혈 로커였다. 의대 재학 시절 대학 그룹사운드에 몸담아 현란한 기타 사운드에 기꺼이 몸을 맡겼던 그다.

“그때는 음악도 오로지 하드록이나 메탈같이 무거운 음악만 듣곤 했죠. 록을 한다는 자존심과 고집 같은 게 있었어요. 지금이야 세상을 보는 시야도 넓어지고 좀 더 유연해져 재즈나 발라드도 자주 듣지만, 당시만 해도 오직 록만이 제 음악의 전부였죠.(웃음)”

어려운 공부나 시험 준비를 할 때면 유독 더 기타를 치고 싶고 음악에 마냥 심취해 있고 싶었던 청춘의 기억을 되돌아보는 그의 얼굴에서는 연신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비록 세월의 흐름에 따라 이젠 전자기타 대신 통기타를 들고 거친 록 멜로디 대신 감미로운 발라드 선율을 연주하게 됐지만 음악을 향한 열정만은 시들지 않았다.
[뷰티풀 라이프] “화장품과 음악의 공통점, 바로 감성이죠”
기타를 치기 시작한 건 중학생일 때부터다. 여느 부모라면 공부 잘하는 우등생 아들이 괜히 음악에 빠져 성적이 떨어지지 않을까 마땅치 않게 생각할만도 하련만 다행히 부모님은 이렇다 할 반대 없이 묵묵히 아들을 지켜봐 줬다. 공부하느라 한창 바쁠 의대 재학 시절에 대학 내 록 밴드는 물론 합창반 등에서 지휘나 작곡 등의 음악 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도 뭐든 제 할 일은 똑 부러지게 해내는 그에 대한 가족들의 신뢰가 있었던 덕분이다.

이제는 음악 활동 대신 내로라하는 유명 코스메슈티컬 화장품(피부과 화장품) 기업인 고운세상 코스메틱의 최고경영자(CEO)로, 또 현장에서 직접 환자 진료에 나서는 피부과 의사로, ‘고운세상’이라는 이름의 네트워크 병원의 수장으로 1인 2역, 3역의 활동을 거침없이 해내는 안건영 대표지만, 그에게 기타는 여전히 소중한 존재다. CEO나 의사가 아닌 그저 음악을 사랑하는 보통 사람으로 있을 수 있게 해 주니 말이다.

“음악을 통해 얻는 게 많죠. 바쁜 일상에 쫓기다 보면 감성이 메마를 수밖에 없는데 음악을 하다 보면 그 메마른 감성이 듬뿍 채워지는 기분이 들거든요.”

그는 1주일에 이틀은 회사로, 나흘은 병원으로 출근한다. 출근하는 곳은 다르지만 근본적으로 그가 하는 일은 같다. 진료건 경영이건, 그가 하는 일은 결국 피부로 고민하는 사람들의 걱정을 덜어주는 일이니 말이다. “처음 제가 화장품을 만들려고 한 것도 환자들의 고민을 덜어주기 위해서였죠.” 피부에 문제가 있어 병원을 찾은 환자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질문을 하곤 했다. 어떻게 하면 피부가 좀 더 좋아질 수 있는지, 화장품은 뭘 써야 하는지…. 하지만 그 질문에 정확한 대답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늘 마음이 쓰이곤 했다.

“그 당시만 해도 지금과 같은 피부과 화장품들이 거의 없던 때거든요. 그렇다고 아무 화장품이나 권할 수도 없고, 정말 답답하더라고요. 그때 결심했죠. 화장품을 직접 개발해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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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 과학, 화장품 과학에 감성을 입히다

2003년 병원의 이름을 따 화장품 회사인 ‘고운세상 코스메틱’을 세우고 2006년에 정식으로 프리미엄 브랜드 ‘Dr.G’를 론칭했다. 브랜드 론칭 1년 후부터는 수출에도 호조를 보여 2008년에 국내 피부과 화장품으로는 처음으로 100만 달러 수출 탑을 받기도 했고, 현재 300만 달러 수출탑 달성을 목전에 두고 있다.

“성공 비결이요?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좋은 시기에 좋은 이들을 만난 덕분에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으니까요.” 2007년 동남아시아 최대 화장품 유통 업체인 사사(SASA)에 입점한 이후 홍콩·대만·싱가포르·말레이시아 등에 진출하면서 Dr.G 화장품들은 그야말로 성황리에 팔려나갔다. 피부 결점을 감추는 것에 그치지 않고 피부 본연의 건강함과 아름다움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이 많아진 시점이었고, 또 한국 드라마와 배우들이 ‘한류’라는 이름으로 동남아 각지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그 덕분에 한국 여배우들의 아름다움이나 화장 비결은 물론 한국 여성들의 화장에 대한 관심들이 일기 시작하면서 ‘한국의 유명 피부과 의사들이 직접 만든 화장품’으로 Dr.G가 인기를 모으기 시작했다.

우수한 제품력 외에 Dr.G가 해외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유는 하나 더 있다. 피부과 화장품은 심플하기 그지없고 딱딱한 분위기를 연상하기 쉽지만 고운세상과 Dr.G는 감성적인 부분에서도 충분히 어필할 수 있는 감각적인 컬러감과 디자인을 도입해 소비자들의 호감도를 높일 수 있었다.

“음악을 해서 잘했다 싶은 것이 바로 이런 부분들이에요. 흔히 피부 과학, 화장품 과학이라고 하지만 과학 그 자체에 머물러서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거든요. 과학에 감성적인 부분이 덧입혀져야 비로소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죠.”

그 좋은 예가 바로 작년에 그가 직접 작곡한 로고송이다. 단 몇 초에 불과한 ‘고운세~상’이라는 짧은 노래 하나를 작곡하기 위해 그는 몇 날 며칠을 작곡에만 몰두했다. “음악을 계속해 온 만큼 직접 회사 로고송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꿈은 진작부터 갖고 있었어요. 지난해에야 비로소 그 꿈을 이룰 수 있었죠.” 고등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취미 삼아 만들어 본 곡은 그 수를 일일이 셀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단 한마디의 짧은 로고송을 만드는 일은 그 어느 때보다 힘들었다.

“원래 긴 곡보다 짧은 멜로디 하나가 더 작곡하기 어렵거든요. 기존에 나와 있는 어떤 멜로디와도 달라야 하니까, 음표 하나하나를 고르고 멜로디 하나를 완성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죠.” 힘이 든 만큼 결과물에 대한 만족도는 크다. 하지만 정작 음악인으로서의 스스로에게 매기는 점수는 짜다. “경영자로서 제 자신에게 점수를 매기자면 60점, 의사로서는 한 80점은 줄 수 있어요. 하지만 음악인으로서, 기타리스트로서는 점수를 매기기도 창피한 수준이죠. 그야말로 아마추어에 불과하니까요.”

짐짓 겸손해하지만 고운세상피부과 사이트 접속 시 들을 수 있는 로고송은 전문 광고 음악인이 만들었다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잘 빠진’ 멜로디를 자랑한다. 게다가 매년 송년회 때 직원들에게 들려주는 기타 솜씨도 여전히 수준급이라는 직원들의 ‘증언’이 적지 않다. “음악은 앞으로도 계속할 거예요. 앨범을 내거나 다시 한 번 밴드에서 활동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늘 일상 속에서 음악을 통해 많은 격려를 받을 예정입니다. 물론 피부과 의사로서 열심히 환자들의 아픔을 달래주고, 또 피부과 화장품 기업의 대표로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좋은 화장품도 계속 만들어 나갈 예정이기도 하고요.”


김성주 객원기자 helieta@empal.com│사진 서범세 기자 joyci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