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2학년 때인 2004년 애견 직거래 사이트를 열었다. 개인 간에 애완견을 거래할 수 있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오픈하자마자 야후 관련 카테고리에서 순위에 오르는 등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돈이 문제였다.
“사람들이 코스프레를 직접 하는 것은 좀 ‘뻘쭘해’ 하잖아요. 하지만 좋아하는 애견을 코스프레하는 것에는 적극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죠. 애견이 코스프레를 하면 사람들의 눈길도 끌 수 있을 테고요.”
이런 생각에서 애견 코스프레 서비스를 갖다 붙였다. 큰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유료 서비스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문제점을 발견하면 개선하고 고쳐 나가려는 습관은 어딜 가지 않았다. 군에 복무해서도 마찬가지였다. 9사단에서 전산병으로 군복무하면서 그가 맡았던 일은 서플라이에 있는 각종 부품 및 정보를 찾아주는 것이었다. “정보 검색이 너무 불편하더라고요. 그래서 직접 정보 검색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처음엔 복무 중이었던 부대에만 적용하려고 했는데 확산되면서 전 군에 뿌리게 됐죠.” 이 프로그램의 이름은 ‘9글’. “9사단의 9에 구글의 글을 붙여서 만들었습니다.” 음악 서비스로 세 번째 도전
2007년 3월 9일에 제대한 황 병장은 제대 다음날인 3월 10일부터 바로 사무실을 얻으러 다녔다. 그가 생각한 것은 인디 음악 음원 관리 서비스다. 이 역시 자신이 느낀 생활의 불편함에서 힌트를 얻었다.
“인디 음악 중에도 정말 좋은 음악들이 많은데 인디 밴드들은 알리기가 힘들고 소비자들은 잘 찾기가 힘들잖아요. 시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죠.”
이런 생각에서 오픈한 음원 관리 서비스 블레이어(www.blayer.co.kr)는 그에겐 세 번째 창업 도전인 셈이다. 그는 인디 밴드의 음원을 유통하기 위해 150여 명의 인디 밴드를 직접 만나 1500곡을 확보했다. 인디 뮤지션들은 자신의 정보가 공개되는 것을 꺼리기 때문에 관계를 맺는 게 쉽지 않았지만 헝그리 정신으로 무장하고 계속해 설득하는 그에게 결국 하나둘씩 공감했다. “힘들 게 얻어야 관계를 오래 이어갈 수 있는 것 같아요. 설득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지만 그렇게 때문에 신뢰가 쌓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블레이어’는 쉽게 말하면 인디 음악을 모아 놓은 사이트다. 블레이어에는 저작권협회에 등록하지 않은 뮤지션만 음악을 올릴 수 있다. 처음에는 인디 음악가들이 자신의 음악을 다른 사람의 블로그나 미니홈피의 배경음악으로 쓸 수 있게 해 대중들과 접점을 넓히도록 도와주는 서비스로 출발했다.
블레이어에는 ‘스트리밍 무제한’이나 ‘정액제’ 상품이 없다. MP3 파일로 한 곡당 블레이어 내 가상 화폐인 씨앗1로 가격이 고정됐다. 미리 듣기는 전곡 무료이고 전체 분량을 다 들을 수 있다. 구매한 곡에 한해 재생 목록을 만들어 들을 수도 있다. 무료로 다운로드할 수 있는 곡도 있다. “음악가들이 먼저 요구해 도입한 기능입니다. 자기 음악을 무료로 제공하고 싶다는 음악가들도 있다는 걸 알게 됐죠. 그분들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블레이어는 인디밴드 음악의 유통 공간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었지만 좀 더 대중적인 서비스를 위해선 다른 유통 방식이 필요했다. 그래서 황 대표는 지난해부터 전 세계 음악가를 대상으로 페이스북 응용 프로그램(앱)으로 서비스하는 라우드박스를 운영하고 있다.
라우드박스는 페이스북 내 가상 화폐인 ‘페이스북 크레딧’을 이용해 전 세계 어디에서나 음원을 구매하기 쉽게 했다. 판매 가격은 음악가가 직접 정한다. 블레이어와 마찬가지로 관리 페이지에서 음악가가 음원과 앨범 재킷을 직접 올리도록 했다. 블레이어는 판매자로 등록하면 음원에 대해 제지하는 규정을 두지 않았지만 라우드박스는 사이러스 쪽에서 승인해야 판매하게 했다. 사이러스는 라우드박스에 이용자의 취향을 바탕으로 적절한 음악을 추천하는 서비스를 도입할 계획이다. 최근에는 블레이어나 라우드박스에 등록된 음악을 일반인뿐만 아니라 게임 업체나 독립 영화사에 제공하는 등 B2B 사업으로 확장하고 있다.
해외시장에서 길을 찾다
최근 황 대표는 눈길을 해외로 돌리고 있다. 라우드박스를 서비스하면서 동남아시아 시장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다.
“페이스북을 동남아에서 많이 쓰고 있는데 동남아에서는 아직 온라인과 모바일에서의 음원 유통이 자리 잡지 못했습니다. 한국 시장에서 쌓은 경험을 갖고 들어가면 승산이 있을 것 같습니다.”
황 대표는 우선 태국 시장에 집중할 계획이다. 동남아와 페이스북, 음악을 같이 떠올리면 연상되는 단어가 있다. ‘한류’다. 그러면 황 대표는 한류 열풍에 기대려는 것일까. 그는 고개를 젓는다.
“지금의 케이팝으로 대표되는 한류 열풍이 얼마나 갈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당장은 그쪽의 인기를 활용할 수도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그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동남아에서 케이팝이 인기가 있다고 하지만 태국만 봐도 시장점유율이 17% 정도밖에 안 되거든요. 케이팝을 포함해 현지 음악까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서 유통하는 플랫폼이 되려고 합니다.”
동남아 시장에서 긍정적인 부분은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광고를 보는 것에 익숙하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는 음악을 재생할 때 광고가 나오거나 위 아래로 광고가 붙는 것을 ‘지저분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태국만 해도 사람들이 그런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는 게 황 대표의 분석이다. “광고 모델을 기반으로 무제한 스트리밍과 다운로드 상품을 연계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죠. 콘텐츠를 잘 확보하면 조기에 안착할 수 있다는 생각도 합니다.”
그가 음악 플랫폼을 통해 꿈꾸는 것은 의외로 좀 철학적이다. 그는 ‘같은 필터로 걸러진 음악은 개성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천편일률적인 음악이 마치 사회의 다양성 부족에서 기인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좀 더 다양한 음악을 제약 없이 들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저작권자들이 조금이라도 수익을 가져가면 더 다양하고 개성 있는 음악들이 나오지 않을까. 그리고 그것이 사회와 문화에 많은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주지 않을까.
황룡 사이러스 대표
임원기 한국경제 경제부 기자 wonkis@hankyung.com│사진 서범세 기자 joycin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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