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열 분리 무관’…맏형의 존재감 과시용?

최신원 SKC·SK텔레시스 회장의 의도는 뭘까. 올 들어 SK그룹 계열사 여러 곳의 지분을 잇달아 매입하고 있는 최 회장의 행보가 관심을 끌고 있다.

최 회장은 지난 5월 25일 SK그룹 지배 구조의 정점에 있는 SKC&C 주식 500주를 매입했다. SKC&C는 최태원(38%) SK그룹 회장과 그의 여동생인 최기원 행복나눔재단 이사장(10.5%)이 대주주로 있는 시스템 통합 업체다. 그룹 지주회사인 (주)SK의 지분 31.8%를 보유하고 있다. 지난 5월 21일과 22일 양일간 SK네트웍스 주식 6000주도 매입했다.

최 회장의 지분율은 0.13%(31만6288주)에 불과하다. 최대 주주는 그룹 지주사인 (주)SK로 39.14% (9714만2856주)다. 지난 4월에는 장내 거래를 통해 SK케미칼 보통주 500주를 사들여 1500주를 보유하고 있다. SK케미칼은 친동생인 최창원 부회장이 실질적인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는 회사다. 2월에는 그룹에 새로 편입한 SK하이닉스 주식 5000주를 매입하기도 했다.
[비즈니스 포커스] 최신원 SKC 회장이 계열사 지분 매입에 나선 까닭
최 회장이 지속적으로 계열사 주식을 사들이고 있지만 경영권에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다. 최 회장의 계열사 지분 내역을 살펴보면 현재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는 SKC(3.55%)와 SK텔레시스(40.78%)만 그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 그룹의 주력 회사인 SK이노베이션과 SK텔레콤 지분은 거의 없다. SK텔레콤 주식 2000주를 갖고 있지만 의미 부여가 힘든 수준이다.

그런데도 최 회장이 비주력 계열사 지분을 찔끔찔끔 매입하는 이유는 뭘까. 최 회장이 계열 분리를 염두에 두고 있다면 전략적인 지분 매입이 필요하다. 예컨대 자신이 예전부터 분가 기업으로 꼽았던 SK네트웍스·SKC·워커힐호텔 등에 자금력을 총동원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 그런데도 경영권과 무관한 계열사 지분 매입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최 회장의 관할인 SKC 관계자는 “별 의미가 없다”면서도 “가문의 장자로서 상징적인 조치로 봐 달라”고 주문했다.

최 회장은 SK그룹 창업주인 고 최종건 회장의 둘째 아들로 사실상 가문의 장자다. 1970년대 초 부친 사망을 계기로 그룹 경영권은 작은 아버지인 고 최종현 회장을 거쳐 사촌동생인 최태원 회장에게 넘어갔다. 이후 여러 번에 걸쳐 계열 분리를 시도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그 과정에서 SK그룹은 지주회사인 (주)SK의 지배 아래 놓여 있다. (주)SK는 최태원 회장이 대주주인 SKC&C가 최대 주주다.
[비즈니스 포커스] 최신원 SKC 회장이 계열사 지분 매입에 나선 까닭
계열 분리는 단순히 지분 문제가 아니라 4촌 형제간 합의가 중요하다는 일각의 관측도 없지 않다. 그렇지만 최 회장의 측근들은 “자금 문제로 인해 계열 분리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처지”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형제간 합의 이전에 지분을 매입할 수 있는 자금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최태원 회장 역시 자금력이 넉넉지 못한 상황으로, 최 회장으로부터 계열 분리를 위한 자금 지원까지 기대할 수는 없는 처지다. SK케미칼·건설·가스 등의 대주주로 올라서 계열 분리의 요건을 갖춘 친동생인 최창원 부회장과는 달리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최 회장이 SK그룹의 우산을 벗어나기는 힘들 것이라는 재계의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권오준 기자 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