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하기보단 서늘한 섹스신

현 왕(정찬 분)의 의붓동생 성원대군(김동욱 분)은 신 참판의 딸 화연(조여정 분)에게 한눈에 반한다. 그러나 화연은 신 참판이 아들처럼 키우던 떠돌이 권유(김민준 분)와 연인 사이다. 성원대군의 친모이자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대비(박지영 분)는 현 왕을 몰아낼 계획의 일환으로 화연을 궁에 들인다. 권유를 살리기 위해 숨 막히는 궁궐로 자청해 들어온 화연, 화연과의 사랑 때문에 거세당하고 결국 내시의 신분으로 궁궐에 입성하는 권유, 가질 수 없는 여인에 대한 사랑이 점점 집착으로 변해가는 성원대군의 광기 어린 삼각관계가 시작된다.
[영화] 후궁:제왕의 첩 外
‘후궁:제왕의 첩’에 대해 모두가 가장 궁금해 할 부분. “얼마나 야한가?” 그러나 이 영화에 등장하는 총 세 번의 섹스신은 그런 궁금증을 배반한다. ‘후궁:제왕의 첩’에서 중요한 건 섹스신에서 통상 기대하게 되는 열정적인 사랑이 아니라 그 육체관계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욕망의 판타지다.

이 영화의 섹스신은 어떤 의미에서 좀 무섭고 폭력적이기까지 하다. 한 번 발을 들여놓으면 죽기 전엔 나갈 수 없는, 지독하게 폐쇄적인 공간인 궁이 배경이기 때문에 욕망의 진폭은 더한층 강력해진다.

성원대군은 왕의 자리에 오른 뒤 언제나 주변에서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엿보고 엿듣는 이들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궁내의 무수한 여인들과 신하들은 그 무기력한 왕의 손가락 끝에 생명줄이 왔다 갔다 한다. 누군가 죽어 나가면 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대체하지만, 뒤틀린 관계의 본질만은 변하지 않는다. 대비의 과거는 화연이며 권유의 비극은 성원대군의 그것이기도 하다. 이 뒤틀린 관계 속에서 펼쳐지는 광기의 드라마는 이를테면 조선시대 버전 ‘맥베스’를 닮아 있는 것 같다.

최근 몇 년 동안 한국 영화 사극이 그러했듯이, 혹은 김대승 감독의 전작 ‘혈의 누’가 그러했듯이 ‘후궁:제왕의 첩’은 현대의 알레고리로서의 역할에 집중한다. 이를테면 한국 영화 속에서 사극은 그저 낯선 아름다움으로 치장한 판타지가 아니라 현대의 평행 우주처럼 그려진다. 절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암투는 결국 너무 많은 피를 흘린 뒤에야 그것이 잠깐 동안의 헛된 꿈이라는 것을 너무 뒤늦게 깨닫게 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리고 “판단하지 말거라. 우리 몫이 아니니라” 혹은 “옳고 그름이 아니고 권력이 있고 없음이 중요한 것 아닌가”라는 핑계도 따라붙는다. 살아남기 위해선 상대방을 죽여야 한다는, 힘 있는 자만이 용서하거나 용서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를 갖게 된다는 자력구제의 세계관은 이 가상의 시대 궁궐에서도 그대로 되풀이된다.




프로메테우스

감독 리들리 스콧
출연 누미 라파스, 마이클 패스벤더, 샬리즈 시어런
[영화] 후궁:제왕의 첩 外
2085년 인간이 외계인의 유전자 조작을 통해 탄생한 생명체라는 증거들이 속속 발견되면서 인류의 기원을 찾기 위해 탐사대가 꾸려진다. 1979년 작 ‘에일리언’의 속편이라기보다 에일리언이라는 생명체의 자장 안에서 벌어지는 또 다른 이야기다.




지알로

감독 다리오 아르젠토
출연 애드리언 브로디, 엠마누엘 자이그너, 엘사 파타키
[영화] 후궁:제왕의 첩 外
행방불명된 동생을 찾아 토리노에 온 언니 린다는 경찰 엔조와 함께 엽기 살인마 지알로를 추적한다. 1970~1980년대 이탈리아 호러 영화의 거장으로 군림했던 다리오 아르젠토의 신작. 제목 지알로는 이탈리아 특유의 ‘피칠갑’ 호러 영화를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슈퍼스타

감독 임진순
출연 김정태, 송삼동
[영화] 후궁:제왕의 첩 外
4년째 영화감독 데뷔를 준비하는 진수(송삼동 분)는 세 번째 시나리오의 투자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건달 전문 단역배우 태욱(김정태 분)이 진수를 찾아와 부산국제영화제에 함께 놀러가자고 제안한다. 즐거운 여행을 기대했지만 상황은 자꾸만 꼬여가고 웃지 못할 해프닝이 줄줄이 벌어진다.


김용언 영화 칼럼니스트 plat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