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제적 지원을 일절 받지 못한 상태에서 서울로 상경하셨다. 이즈음 어머니와 부부의 연을 맺어 처가살이를 하기 시작했고 소싯적 이루지 못한 공부에 대한 열정을 불살라 생물학 전공으로 의대를 졸업, 현재는 광주 조선대에서 기초 해부학을 가르치며 보건대학원장 직을 맡고 있다. 주변에 손 한 번 내밀지 않고 스스로 모든 것을 일궈 내신 분이기 때문일까, 당신께선 의학에 뜻을 두었을지언정 이를 내게 강요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개개인이 관심을 갖는 분야가 다르고 본인이 동기부여가 돼야 학업에 매진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유년기에도 무엇을 하라고 시키지 않고 알아서 하길 권고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관심 분야에 대해선 매우 관대한 편이셨다.
어릴 적부터 컴퓨터에 유달리 관심이 많았던 필자를 위해 당시 높은 사양의 컴퓨터를 사주거나 컴퓨터 학원에 등록해 주는 등 좋아하는 부분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보니 좋아하는 사람들과 삼삼오오 모여 앉아 술자리를 즐기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살아오며 기쁨은 배가 되고 슬픔은 반으로 나누는, 그런 당신만의 노하우를 스스로 익히신 것은 아닐까 이제 와 생각해 본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소중한 시간 동안에 여흥을 돋우기 위해 술을 마시는 데 들어가는 비용에는 전혀 인색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집안에서 가훈으로 새길 정도로 아버지가 가족의 주의를 요했던 것은 ‘항상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모습’이었고 목돈 마련을 위한 부동산 투자나 집 안팎에서 경제적인 지원을 받는 것에 유달리 엄격하셨다. 당신의 경험을 토대로 어느새 청렴결백한 극도의 선비 정신을 몸에 갖추게 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한 번은 이런 아버지의 행동에 ‘어찌하여 항상 정직을 강조하는지’ 의문을 제기한 적이 있다. 그런 아들이 귀여웠던지 아버지는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으며 두 시간이 넘어가도록 당신 마음 깊숙이 자리 잡은 진솔한 얘기를 해주셨다.
“많은 시간이 흘러 자신의 삶을 돌이켜봤을 때 어떻게 살았는지 떳떳이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한다. 삶의 의미는 부와 명예, 권력에 있는 것이 아니란 걸 명심해.” 마치 ‘정직하고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살라’는 당신의 좌우명을 자식들 머리와 마음속에 깊이 새겨 놓으려는 듯 그날은 밤이 새도록 말씀을 멈추지 않으셨다.
“나중에, 아주 나중에 말이다. 삼겹살에 소주 사 들고 한 번 내려와라. 그게 내가 네게 부리고 싶은 욕심이다.” 술자리를 멋스럽게 즐길 줄 아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와 술 한잔 기울이며 당신의 자식 또한 술과 사람을 즐길 줄 아는 그런 한 사람으로 거듭났다는 것을 보여 드리고 싶다. 김길연 엔써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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