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사랑의 ‘손주 마켓’ 각광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겸임교수(전 게이오대 방문교수)노인 인구의 절약 생활은 장기 생존을 위한 절체절명의 과제다. 경직적인 소비지출의 합리성이다. 간병·의료비 등 불가피한 최소한의 지출 영역을 빼면 ‘마른 수건 쥐어짜기’가 당연하다. 넉넉지 않다면 취미·유희를 위한 소비지출은 허용되지 않는다. 다만 예외가 있다. 힌트는 ‘421사회’라는 신조어에 있다. 이는 고령사회의 상징 문구다. 4명의 노인과 2명의 부부, 그리고 1명의 자녀란 뜻이다.

장수 대국의 전형적인 가정 구조다. 아이들로선 행복하다. 관심 집중과 비용 지출의 깔때기가 된다. 실버 시장을 대체할 엔젤 마켓의 부각 배경이다. 요컨대 ‘6개의 주머니(Six Pocket)’ 논리다. 조부모 4명과 부모 2명의 돈이 자녀 1명에 집중돼서다. ‘식스 포켓 세대’의 등장이다. 용돈만 해도 6인분을 받으니 자녀의 구매력과 영향력은 상상초월이다. 뒤집어보면 훗날 아이가 짊어질 부양 압박이 크지만 당장은 소비 시장의 유력 주체일 수밖에 없다.

피붙이를 위한 비용 지출은 내리사랑의 본능이다. 30~40세로 1인분 역할 수행의 자녀보다 어린 손주 사랑이 더 각별하다. 실버 시장에선 이를 ‘손주 마켓’이라고 부른다. 손주 마켓은 관심 대상이다. 실버 시장의 만만치 않은 현실을 타개할 틈새 모델로 거론된다. 돈 있는 조부모를 설득·유혹해 손주 사랑을 자극함으로써 지갑을 열려는 마케팅이 한창이다. 엔젤(손주) 고객을 위한 실버(조부모) 마케팅인 셈이다. 소비 종착지는 손주지만 구매 결정자는 조부모인 까닭에서다.
[일본] 돈 있는 조부모 타깃…외식·여행‘인기’
손주 마켓 분석은 발 빠르다. ‘교리쓰(共立)종합연구소’는 2002년과 2012년 ‘손주를 위한 지출 실태’를 조사했다(786명). 이벤트별 지출 비용과 선호 품목 등을 발표하는데 열람 인기가 높다. 일본 노인의 손주 지출은 불황 탓에 최근 10년간 줄었다.

2002년 연평균 30만 엔에서 2012년 26만7000엔으로 감소했다. 손주 지출은 동거 여부에 따라 다소 갈린다. 동거 손주라면 손주 1인당 8만3000엔(2002년 9만5000엔)인데 비해 따로 사는 손주는 7만2000엔(2002년 7만 엔)으로 조사됐다. 참고로 이번 조사 노인 중 78.1%는 손주가 있고 평균 인원은 3.6명이었다. 각각 동거(0.9명), 별거(2.7명)로 별거 손주가 3배 더 많다. 2002년 조사에선 손주가 있다는 응답이 85.5%였다. 저출산의 반영이다.

손주 마켓을 달구는 기념 이벤트 중 돋보이는 행사는 손주 생일이다. 3만9382엔이 생일 선물비로 지출됐다. 정례적인 대중 이벤트보다 손주 개인의 특별한 날을 중시하는 경향의 반영이다. 설날 세뱃돈(2만9589엔)과 크리스마스(2만2512엔)가 뒤를 잇는다. 모두 2002년 조사 때보다 줄어들었다. 손주가 있다면 세뱃돈(87.3%)·생일(71.0%)·크리스마스(49.0%) 순서로 꼭 챙긴다고 답했다. 손주 지출 중 가장 빈번한 항목은 외식·여행비용이다.

외식은 연평균 6.1회 즐기며 지출 금액은 5만2649엔이다. 1회당 8687엔으로 꽤 비싼 외식을 즐기는 편이다. 여행은 연평균 2회 떠나며 12만5433엔을 지출한다. 1회당 6만2570엔이다. 특히 손주와의 동반 여행은 2002년보다 금액 변화 없이 여행 횟수는 증가했다. 저렴한 여행을 자주 떠난다는 추정이다. 물품 소비보다 서비스 소비로의 관심 전환이다. 손주와의 공동 경험을 통해 핏줄을 확인하고 관계를 강화하려는 차원으로 해석된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대학원 겸임교수 (전 게이오대 방문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