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현장을 가다-베트남


베트남 호찌민 시내의 패션중심가 하이바트렁 거리. 옷가게들 사이에 위치한 뚜레쥬르 1호점 앞으로 한 여성이 오토바이를 끌고 들어서니 제복을 입은 경비가 나타나 오토바이를 넘겨받는다. 이번엔 유리문 안쪽에서 직원이 문을 열어주며 인사를 건넨다. “뚜레쥬르 신짜오(안녕하세요 뚜레쥬르입니다).” ‘오토바이 발레파킹’ 등 차별화된 서비스로 현지 시장 점유율 3위 (2011년 매출 569만 달러)로 올라서며 성공적으로 정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베트남 뚜레쥬르의 풍경이다.
[한류 전도사 CJ] 베트남, 홈쇼핑·물류·극장 한류 타고 ‘쑥쑥’
호찌민 시에서 15개 지점을 운영 중인 뚜레쥬르는 2007년 베트남에 진출했다. CJ그룹 계열사 중에선 세 번째 순서다. 해외 진출의 첫 삽을 뜬 곳은 2001년 롱안 지역에 공장을 설립한 CJ 제일제당의 사료 법인, 그다음은 2006년 글로벌 물류 회사 ‘어코드’를 인수하며 베트남에 진출한 CJ GLS다.

그룹 차원의 ‘베트남 진출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는 2000년대 중반 이후다. 세계 1위인 바이오 부문 외에 B2C 사업군에서도 글로벌 경쟁력을 만들어 내겠다는 목표였다. 중국 시장에 비해 규제가 적고 선진 기업이 아직 장악하지 않은 베트남이 적격지였다.

CJ 베트남 총괄 사무소의 김상국 부장은 “유교 문화가 바탕이 된 베트남은 우리나라와 정서적 유사성이 많고 한국에 대한 인식이 좋아 비즈니스 하기가 상당히 용이한 곳”이라고 설명했다. 매년 두 자릿수 이상의 빠른 경제성장을 하고 있다는 점, 전체 인구의 60%가 30대 이하인 ‘젊은 나라’로 소비 지향적이며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다는 점도 진출 이유로 작용했다.



카페형 베이커리 인기

실제로 베트남 현지에서 TV를 틀어보니 한 채널에선 한국 드라마 ‘사랑비’가, 다른 채널에선 아이돌 그룹 ‘시크릿’의 뮤직 비디오가 나오고 있었다. 뚜레쥬르를 비롯해 CJ CGV(메가스타), CJ 오쇼핑(SCJ)의 진출은 이러한 ‘한류’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한국의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베트남인들의 동경을 CJ만의 프리미엄 서비스로 연결한 것이다.

베트남 1위의 유선방송 사업자 SCTV와 합작해 지난해 홈쇼핑 채널 ‘SCJ’를 출범시킨 CJ 오쇼핑은 삼성·소니와 같은 고가의 가전 제품을 론칭해 매출 목표 300만 달러를 초과 달성했다. CJ 오쇼핑의 이화겸 부장은 “한국 드라마에 등장하는 ‘우아하고 모던한 삶의 형태’를 닮고 싶어 하는 이들이 많다”며 “저가 상품 위주였던 기존 홈쇼핑 방송과 다르게 한국 드라마에 등장하는 고급 브랜드를 소개하며 차별화를 꾀한 것이 소비자의 니즈와 맞아떨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한류 전도사 CJ] 베트남, 홈쇼핑·물류·극장 한류 타고 ‘쑥쑥’
지난해 베트남 시장점유율 50%의 영화관 메가스타를 인수해 9개 극장을 운영 중인 CJ CGV 역시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와 높은 티켓 가격으로 중산층을 공략하고 있다. 메가스타의 주말 영화 티켓 가격은 8만 동(VND). 원화로 환산하면 4000원 정도이지만 베트남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300달러로 한국의 16분의 1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만만치 않은 가격이다.
[한류 전도사 CJ] 베트남, 홈쇼핑·물류·극장 한류 타고 ‘쑥쑥’
한편 뚜레쥬르는 베트남 시장 내에서 최초로 ‘카페형 베이커리’를 도입했다. 가격은 20% 정도 비싼 편이지만 빵과 커피를 함께 즐기며 오랜 시간 머무를 수 있는 유럽형 빵집의 등장은 소비자의 호응을 이끌어 냈고 기존 업체들도 카페형 베이커리로의 변화를 모색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CJ 푸드빌의 최등용 부장은 “시장을 선점한 기업으로서 앞선 비즈니스 모델을 구현하기 위한 노력이 새로운 트렌드를 이끌어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제3의 CJ’ 선언

베트남에 진출한 기업들이 노리는 것은 시장 선점의 효과다.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틈’이 곧 ‘기회’로 이어진다고 관계자들은 말한다.

CJ GLS는 사업 확장 과정에서 하노이 공항 터미널의 시설이 부족해 항공운송이 지연되는 어려움에 봉착하자 공항 밖으로 세관을 옮긴 형태의 원스톱센터(위성공항)을 구축해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마련했다. CJ GLS의 최진형 부장은 “국내와 다른 물류 환경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이 갖춰져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며 “시장을 선점하며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류 전도사 CJ] 베트남, 홈쇼핑·물류·극장 한류 타고 ‘쑥쑥’
현지 시장점유율 55%의 CJ CGV(메가스타)는 한국 영화들을 배급, 상영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다양한 장르에서 퀄리티 있는 영화를 선별해 소개함으로써 드라마의 인기 못지않은 ‘영화 한류’를 일으키겠다는 목표다. 지금까지 개봉한 ‘퀵’과 ‘오싹한 연애’는 두 작품 모두 개봉 첫째 주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는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CJ CGV의 류승수 부장은 “문화를 즐기는 젊은 층의 잉여 소득이 늘어나면 영화 산업의 발전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며 “CJ라는 브랜드 가치를 유지하면서 플랫폼을 구축해 시장을 선도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수한 현지 인력을 유입할 수 있다는 점도 베트남 시장 선점의 중요한 요소다. 그 대표적 사례가 베트남에서 3개 공장을 운영 중인 사료법인이다. 사료법인의 손훈 부장은 “창립 초기부터 들어온 현지 인력들이 영업·경영·구매·인사 등의 분야에 핵심 멤버로 남아 있다”며 “이들의 장점은 시장을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회사에 대한 로열티가 높다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CJ 오쇼핑(SCJ) 역시 베트남 현지에서 역량이 뛰어나고 책임감이 높은 인재들을 많이 뽑았다. CJ 오쇼핑의 이화겸 부장은 “대여 스튜디오에서 촬영해야 하는 열악한 제작 환경에도 한국과 비슷한 퀄리티의 방송을 만들어 내고 있다”고 만족감을 나타냈다.

한편 베트남에 진출한 계열사들은 현지 직원들에게 CJ그룹만의 가치와 경영 이념을 심어주기 위한 교육을 따로 진행하기도 한다. 뚜레쥬르의 최등용 부장은 “지역의 빵집과 다른 서비스 정신을 심어주기 위해 3개월간 따로 서비스 교육을 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CJ그룹은 지난 4월 베트남에서 전 계열사 사장단이 모인 가운데 콘퍼런스를 개최하고 ‘제3의 CJ’를 선언했다. 중국에 이어 베트남을 글로벌 사업의 허브로 삼아 동남아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포부다.

현지 사무소로서 제한적인 지원이 이뤄졌던 사무소 조직을 각 사업부문 간 상호작용을 이끌 수 있도록 베트남 총괄 기업 체제로 개편한 것이 지난해 하반기의 일이다. 현지에서 가장 큰 외국인 투자 프로젝트인 ‘금호아시아나 플라자’ 건설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장복상 부사장도 영입했다. CJ그룹은 새로운 체제 속에서 베트남 진출 계열사 간 시너지 효과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류 전도사 CJ] 베트남, 홈쇼핑·물류·극장 한류 타고 ‘쑥쑥’
올해는 베트남 국민들에게 CJ라는 기업 브랜드를 알리기 위한 론칭 프로젝트도 시작할 계획이다. 그 첫 번째가 오는 7월 말 개최되는 런던 올림픽을 겨냥한 ‘베트남 최초의 금메달 프로젝트’다. 세계적인 수준의 기량을 갖췄지만 올림픽 금메달을 한 번도 따본 적이 없는 베트남 태권도팀을 후원해 CJ의 이름을 각인하는 스포츠 마케팅을 펼칠 계획이다.

총괄사무소의 김상국 부장은 “다양한 콘텐츠를 가진 CJ그룹 계열사들이 하나의 통합 시너지를 만들어 낸다면 국민들의 생활 속에 파고드는 글로벌 기업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베트남 호찌민=김보람 기자 bramv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