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인다 꼬여’…시련의 끝은 어디?

“별일 아닙니다. 잘 해결될 겁니다.”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강문석 수석무역 부회장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솔루션 개발사 디지털오션은 서울동부지방검찰청이 강 부회장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등) 혐의 수사를 위해 지난 5월 2일 압수 수색을 실시했다고 다음 날 공시했다. 디지털오션은 강 부회장이 인수한 회사로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횡령 혐의로 검찰 조사, 강문석 수석무역 부회장
강 부회장은 전경련 회장을 지낸 강신호 동아제약 회장의 차남이다. 1987년 동아제약에 입사한 뒤 10년 만에 대표이사 사장 자리에 오르며 줄곧 후계자로 거론됐다. 하지만 강 회장이 2004년 그를 대표이사에서 해임하면서 후계 구도에서 밀려났다. 당시 회사의 최대 매출원인 ‘박카스’가 경쟁 제품 ‘비타500’에 밀리는 등 경영 악화를 야기했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였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강 회장이 총애하던 강 부회장의 이복동생인 강정석 동아제약 부사장에게 경영권을 넘기기 위한 과정으로 해석했다. 이후 2007년 경영권 회복을 위해 임시 주주총회를 소집하는 등 가족 간 분쟁을 일으켰으나 실패한 후 그는 ‘비운의 황태자’라는 닉네임을 얻었다. 중소 제약사 인수로 제약 업계 복귀를 노렸지만 무위로 끝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 과정에서 몇 차례 소송을 당했지만 이번처럼 검찰의 압수 수색까지 당한 것은 처음이다. 그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우리들제약 인수와 디지털오션 매각 과정에서 협상 상대 업체 관계자들이 검찰에 소송을 제기하면서 일(디지털오션 압수 수색)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1월 그의 초등학교 3년 선배인 박우헌 씨와 함께 우리들제약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박 씨로부터 횡령 및 배임 혐의로 소송을 당했다. 또 고 박용오 두산그룹 전 회장의 둘째 아들인 박중원 전 성지건설 부사장이 디지털오션의 지분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강 부회장과 갈등을 빚은 적이 있다. 강 부회장은 이 밖에도 여러 차례 소송전에 휘말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강 부회장을 잘 아는 주변에서는 재기를 위한 과정에서 결국 화를 불렀다는 지적이다. 제약업과 전혀 연관성이 없는 디지털오션과 이미 부도 직전까지 내몰린 전통주 업체인 천년약속 인수는 ‘잘못된 선택’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더구나 국산 양주인 골든블루 생산으로 디아지오코리아와 페르노리카가 버티고 있는 양주 시장에 정면 승부를 던진 것도 무리수였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자신의 능력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 제약 업계 복귀도 쉽지 않았다. 강신호 회장은 자신에게 대립각을 세웠던 강 부회장을 끝까지 외면했고 한때 의욕적으로 시도했던 우리들제약 인수도 끝내 무산됐다. 이 과정에서 모기업이나 다름없는 수석무역도 자금난에 시달리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강 부회장은 지난 2월 장남인 강민구 씨에게 대표이사 자리를 물려줬다.

강 부회장은 하버드대 MBA 출신으로 외국계 기업 근무 경험이 있고 글로벌 제약 업체들과의 네트워크도 탄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아제약에서도 대표이사 시절 국내 최고의 신약으로 알려진 위장 치료제 스티렌 개발에 착수하는 등 업계에서는 나름의 능력을 인정받았었다.

강 부회장은 동아제약에서 밀려난 뒤에도 기회만 되면 아버지인 강신호 회장에게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부자의 난’으로 알려진 경영권 분쟁도 “아버지를 겨냥한 것이 아니었다”라고 줄곧 말해 왔다. 강 부회장은 동아제약 경영진과 지분 경쟁을 벌이던 2006년 12월 한경비즈니스 기고문에서 “누가 뭐래도 아버지를 존경하고 따르는 마음이 변함없는 것은 인지상정”이라고 고백한 바 있다. 그가 적극적으로 사업 확장에 나선 것도 “결국은 동아제약에 복귀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는 것이 측근들의 귀띔이다. 하지만 그는 지금 일생일대의 기로에 서 있다. 그는 “법무법인의 자문을 받아 차분하게 대응할 것”이라며 “지켜봐 달라”는 말을 반복했다.


권오준 기자 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