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카 시장, K9으로 지킨다

‘소문난 잔치였지만 차분하게 끝났다.’ 지난 5월 2일 오후 6시 서울 남산의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열린 기아자동차 K9(케이나인)의 신차 발표회 모습이다.

현대차그룹에서 만든 럭셔리 세단으로는 2008년 제네시스, 2010년 에쿠스에 이어 세 번째다. K9을 포함해 모두 그랜드하얏트호텔, 저녁 행사, 정몽구 회장 참석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대개의 신차 발표회는 일간지(석간 포함) 마감 일정을 고려해 오전 11시에 열리지만 현대·기아차의 후륜 구동 럭셔리 세단만은 예외적으로 인정받는 분위기다.

그렇지만 예전 제네시스·에쿠스 행사에 비해서는 조금 차분한 분위기였다. 일단 차에 대한 얘기로 그렇게 떠들썩하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이미 K9의 디자인이 사전 광고를 통해 충분히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그간 정 회장이 참석한 행사에서는 발표회 전까지 디자인을 일부만 공개해 호기심을 일으킬 뿐 완전하게 모습을 공개하는 것은 발표회장에서였다.

기대치가 최대로 오를 때 ‘언베일링(베일을 벗김)’을 통해 효과를 극대화했다. 발표회장도 차에 대한 흥분과 설렘으로 오랫동안 떠들썩하다.

그러나 K9 발표회장은 조용한 편이었다. 공교롭게도 김영환 국회 지식경제위원장은 18대 국회가 문을 닫는 날 행사에 참여해 가장 길게 축하 연설을 했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이 K9 행사 주재한 까닭은
정 회장, 기아차 행사는 3년 8개월 만

그래서인지 애초 행사는 정 회장이 참석하지 않고 이형근 기아차 부회장이 주재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틀 전 현대·기아차 홍보실 측이 정 회장의 참석을 알릴 정도로 전격적으로 결정됐다.

그간 기아자동차는 ‘형님’뻘인 현대자동차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던 분위기도 있었다. 2008년 1월 대대적으로 신차 발표회를 계획했던 기아차 모하비(럭셔리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는 비슷한 시기에 나온 제네시스에 자리를 양보하고 사진 촬영 행사로 간소하게 치러졌다. 정 회장 또한 2008년 양재 사옥에서 열린 쏘울 발표회 이후 3년 8개월 만에 기아차 행사에 참석했다.

K9은 시기적으로 수입차의 공세에 맞서야 할 중요한 임무를 띠고 태어났다는 의미가 있다. 현대·기아차가 국내 자동차 점유율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지만 대형급(그랜저 이상급)에서는 수입차의 공세가 만만치 않다. 이윤이 박한 소형차를 많이 팔아도 마진이 큰 대형차에서 밀려 실속이 적은 편이다.

완성도 측면에서 K9은 출시 후 수입차의 공세를 어느 정도 막아줄 것으로 기대된다. 기아차는 2008년 초 KH라는 프로젝트명으로 개발을 시작해 4년 5개월 동안 5200억 원을 투입해 개발했다. 기간과 비용을 보면 제네시스가 처음 나올 때와 비슷하다. 4년 동안의 물가 차이도 있지만 엔진과 뼈대가 이미 개발된 상황에서 그 정도 비용을 들인 것을 보면 편의 사양 등 디테일한 부분에 꽤 신경을 쓴 것으로 보인다.

출시 4년째인 제네시스를 대체할 신차가 내년 정도에 나올 것을 감안하면 1년 반에서 2년 정도 럭셔리카 시장을 방어하는 임무를 K9이 맡고 있는 것이다. 수입차의 공세가 워낙 거세다 보니 현대차·기아차를 구분할 여유가 없는 상황이다.

정 회장은 이날 발표회 전 기자들이 모여들자 “K9을 여러 번 타 봤다”며 ‘수입차와 경쟁해 자신 있느냐’라는 질문에 “요즘 서울 시내에 좋은 차가 많다. 판매 성과는 두고 봐야 한다”고 답했다.


우종국 기자 xyz@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