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고등학교 시절 교과서에 도산 안창호 선생의 가슴 뭉클한 글이 있었다. ‘묻나니 그대는 주인인가 객인가?’ 주인이 되기를 포기한 손님이 되지 말자는 글이다. 조국을 잃어 나라의 주인이 될 수 없는 우리 민족이 다시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도산의 정신이 잘 담겨 있는 글이다.
어느 기업이건 조직원들이 주인 의식을 갖기를 바란다. 분명 주인 의식을 갖고 업무를 대하는 직원과 그렇지 않은 직원은 업무 성과에서 현격하게 차이가 난다. 따라서 회사는 주인 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강연, 합숙 훈련, 사외 교육 등에 많은 투자를 한다. 그러나 필자는 조직 구성원 대부분이 주인 의식을 갖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회사가 직원들에게 주인 의식 교육을 하면 할수록 직원들은 반대로 ‘나는 이 회사의 주인이 아니라는 현실’을 깨닫게 되는 것 같다. 법률적으로 봐도 그렇고, 회사 운영에 있어서도 직원은 주인이 아닌 현실이 엄연히 존재한다.
회사의 주식을 1주도 소유하지 않은 사람이 대다수다. 아무리 많은 주식을 소유한들 지배주주가 아니면 주인의 목소리를 내기가 힘들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 질문했듯이, 회사에서 직원에게 ‘주인인가 손님인가?’라고 묻는다면 입으로는 ‘주인’이라고 말하지만 가슴속으로는 ‘손님’이라고 답할 것이다. 회사는 직원들에게 주인 의식을 강요하면 오히려 역효과만 발생한다.
주인이 아닌 사람에게 주인처럼 행동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또한 주인과 같은 반대급부를 제공하지 않는 현실도 인정해야 한다. 회사가 주인 의식을 강요하지 말고 조직원들을 주인 의식의 영역으로 자연스럽게 초대해야 한다. 초대는 주인만이 할 수 있다. 따라서 조직원보다 회사의 노력이 더 필요하다.
조직 내에 주인 의식을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회사와 조직원 간 감성적 연대 의식이 필요하다. 회사가 적극적으로 소통하려는 노력은 기본이다. 다만 소통의 방식은 경영자 메시지 전달과 같은 하향식보다 직원들이 소통을 주도하는 상향식이 돼야 한다. 회사의 업적이나 내용보다 조직원 공동체가 중심이 되는 것은 물론 직원들의 정보 욕구에 대한 성실한 대응이 소통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소통은 더욱 쉬워졌다. 또한 회사 실적과 자신에 대한 보상이 공정하게 연계돼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조직원들에게 단순히 현재 급여의 절대치보다 향후 발전 가능성과 회사 성과에 대한 배분의 공정성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런데 회사가 생각하는 분배의 공정성과 직원이 생각하는 공정성은 일반적으로 인식의 괴리가 있게 마련이다. 이 간격을 좁히지 않으면 상대적으로 높은 보상을 제공하더라도 조직원들이 느끼는 박탈감이 커지고 주인 의식과는 멀어지게 된다.
흔히 회사가 생각하는 공정성을 조직원에게 강요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는 조직원에게 손님이라는 현실을 각인시키는 대표적인 행위다. 가장 바람직하고 단순한 정답은 직원이 생각하는 공정성에 더 근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성과는 직원이 창출하기 때문이다. 주인 의식의 정착을 위한 최소한의 요건이 선행되지 않고는 우리가 흔히 논하는 경영학의 기초인 비전·전략·생산성·조직문화 등 경쟁 우위에 대한 모든 논의가 다 부질없는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최병인 이지스엔터프라이즈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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