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위성 사무실 ‘인기 절정’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겸임교수(전 게이오대 방문교수)



지진(공포)은 많은 걸 바꿨다. 삶의 가치관부터 세세한 생활 방식까지 적지 않은 변화를 야기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의 경험은 그만큼 절실하고 지배적이다. 조만간 닥친다는 또 다른 대지진 엄습 예고가 잇따르면서 가치 우선, 생활 방어적인 변화가 곳곳에서 목격된다. 우선 소원해진 인간관계의 재구축이 한창이다. 결혼 붐이다. 물질보다 정신을 강조하는 분위기도 무르익었다. 종교적 수요 증가다. 알 수 없는 내일보다 눈앞의 현실을 중시하면서 그간의 욕구 유예적인 경제활동 대신 당장의 만족 실현을 위한 소비지출도 증가세다.

의외의 술집 호황이 그렇다. 쇼핑 행태도 변했다. 위기 때 집에 돌아가기 힘들었던 ‘귀택 난민’의 경험 때문에 되도록 집을 벗어나지 않으려고 해서다. 차 타고 가는 원거리 쇼핑보다 주변의 미니 슈퍼가 호황인 배경이다. 같은 맥락에서 불안감은 근로 형태마저 변화시킨다. 1~3시간의 출퇴근 대신 집 안에서 일하자는 재택근무의 확대다.

‘일’은 업무 공간과 밀접하다. 일한다면 아침저녁 출퇴근은 당연지사였다. 얼굴을 맞대고 회의 등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비로소 일하는 모습으로 비쳐진다. 이랬던 일의 기본 개념이 최근 변화 중이다. 출퇴근은커녕 회사에서 멀찍이 떨어져도 일이 되는 새로운 근로 방식의 출현이다. 재택근무를 포함한 ‘텔레워크’란 근로 형태다. ‘텔레(Tele)’와 ‘워크(Work)’의 합성어다.

개념은 폭넓다. 컴퓨터·휴대전화 등 첨단 기기가 대면 접촉과의 거리감을 줄였다는 점에서 총칭해 ‘모바일워크’라고도 한다. 집이든, 이동 중이든, 외출 공간이든 그 장소는 무관하다. 어디서든 ‘일’만 되면 괜찮다. 이때 중요한 건 전통적인 회사 공간에서의 탈피다. 굳이 9시부터 6시까지 사무실에 있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다. “일부 기업만의 실험 사례였던 재택근무 등의 텔레워크가 최근 단시간에 트렌드로 부각되며 많은 기업이 적극 검토 중”이다.



영업 사원들, 집에서 바로 거래처로

텔레워크 개념은 확대 중이다. 집이 아니어도 재택근무 효과를 내도록 ‘위성 사무실’ 같은 걸 만드는 게 대표적이다. 한적한 시골 동네에 주택을 빌려 필요할 때 묵으며 일하도록 고안됐다. 여유로운 친환경 공간에서 출퇴근 압박 없이 일할 때 집중하고 아닐 땐 쉬라는 의미다. 고속 브로드밴드가 깔린 도쿠시마가 최근 정보기술(IT) 기업의 위성 사무실 후보 지역으로 입소문이 난 배경이다. 위성 사무실 붐은 2011년 이후 본격화됐다. 생산성과 효율성은 기대 이상이다.

대기업의 텔레워크도 다양화됐다. 영업 사원을 중심으로 출퇴근과 조회 미팅 없이 직접 거래처로 직행해 일하고 끝나면 집으로 바로 퇴근하는 형태다. 사무 작업은 인터넷만 있으면 충분하다. 회사 서버로 연결되는 단말기로 접속해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원격 조작할 수 있어서다. 서류 작성, 자료 보존 등이 완벽하고 분실해도 단말기에 데이터가 남지 않아 안전성을 높였다. 그 덕분에 하루 1개사 거래처 방문이 고작이었다면 도입 이후 최소 1.5배 이상 증가했다.

사무실을 벗어난 근무 형태가 각광 받은 건 3·11(동일본 대지진) 교훈이 컸다. 피해 지역을 중심으로 사무실 붕괴와 방사능 우려가 맞물려 동일 공간에서의 집단 근무를 고집할 이유가 없어진 셈이다. 이후 전력 부족으로 사무실의 대폭 절전이 요구되자 그 대책으로 텔레워크를 도입한 경우도 많다. 도요타자동차가 주말 근무, 주중 휴일을 도입한 배경과 비슷하다. 시험 도입 이후 절전 효과와 업무 효율까지 확인되면서 붐은 확대됐다. 수치로도 확실히 늘었다. 2011년 전체 근로자의 19.7%가 텔레워커다(국토교통성). 5명 중 1명꼴이다. 전년 대비 3.2% 포인트 늘었다. 그전엔 제자리걸음이었다. 회사 이외의 장소에서 1주일에 8시간 이상 일한 경우다.

텔레워크 붐업은 지진 교훈만이 아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IT 기반의 기술 혁신이 동반되지 않았다면 텔레워크는 단순·일시적인 이벤트에 불과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텔레워크의 최대 난점이던 정보 안전, 원격 조작 등을 해결한 각종의 첨단 IT 기기(ICT) 출현이 그렇다. 텔레워크를 둘러싼 선행 경험과 사회 인식의 변화도 한몫했다. 과거 텔레워크라면 IT 기업이나 외국계 등 일부 회사의 전유물이었다. 의도는 좋아도 광범위한 확산 적용은 힘든 업종이 많았다. 하지만 2~3년 전부터 유통·메이커 업체 등 평범한 일본 기업까지 도입 사례가 증가했다. ZD넷 재팬에 따르면 일본 기업의 20%가 텔레워크를 도입했다. 지진 이후 실시 경험이 있는 기업은 70%가 넘는다. 일종의 시대 조류라는 신호를 증명하듯 외국계 기업은 45%가 제도를 운영 중이다.



근로 유연성과 경비 절감 ‘장점’

텔레워크는 장점이 많다. 근로 방법의 유연성과 경비 절감이 대표적이다. 출퇴근이 없거나 줄어 근로자는 교통비를 아낄 수 있고 기업은 사무실 유지 비용을 줄일 수 있다. 교통량이 줄어 환경 비용을 절감할 수도 있다. 비상시에도 매력적이다. 지진처럼 위기 상황을 극복하는 안전 확보와 기업 존속의 장점이 부각된다. 무엇보다 일과 가정의 양립 조화를 실현할 수 있다. 사생활로 요약되는 가정 만족도의 상승이다. 후생성에 따르면 텔레워크의 기대 효과는 ▷직무·업무 명령 ▷업무 효율, 고객 서비스 향상 ▷방해 없는 업무 집중 ▷통근 시간 감소와 자유로운 시간 활용 등이다. 기업은 ▷정보 공유형 부가가치 경영 실현(업무효율·생산성 향상) ▷조직 혁신과 경영 스피드 강화 ▷인재 확보와 새로운 지식 획득 ▷사무실 비용 절감 등이 메리트다. 기존의 유연 근무, 재량 근로보다 쉽게 적용할 수 있어 고무적이다.

반대로 걱정되는 점도 있다. 대표적인 게 커뮤니케이션의 불안이다. 사무실이 허전해졌다는 점은 둘째 치고 과거였다면 업무 내용을 직접 대면하며 주고받기에 의사소통이 충분했지만 텔레워크는 가상공간에서 커뮤니케이션이 처리되기 때문이다. 경험 적은 후배 사원에 대한 역할 지도가 가능할지 염려하는 시선이 많은 이유다. 실제 화상회의로는 전달하기 힘든 잡담 정보나 직장 분위기 등 비공식적인 대화 채널의 공유가 힘든 게 현실이다. 조직 붕괴 우려를 줄일 수 있도록 의사소통을 보다 강화한 형태의 텔레워크를 도입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의외의 잔업 권유도 문제다. 텔레워크로 시간 단축은커녕 되레 24시간 내내 찔끔찔끔 업무를 봐야 할 가능성이 높다. 자립적인 근무 준수가 어렵다는 태생적 한계다. 공감대 형성도 아직은 미진하다. 자신을 위한 텔레워크의 선택이라기보다 회사·업무 방침에 따르겠다는 답변이 압도적으로 많아서다. 제도 정착의 결정권이 회사에 있다는 의미다. 제조업과 서비스 등의 전사적인 도입 한계도 거론된다. 적용 범위의 제한 한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텔레워크는 확산될 전망이다. 시행착오로 한계와 단점이 일정 부분 불식되면 새로운 대안적인 근로 시스템으로 인식될 확률이 높다. 적용 비율이 30%를 넘는 미국만 해도 텔레워크는 일반적인 근무 형태 중 하나로 안착됐다.

향후 저출산·고령화로 경제활동인구가 줄면 9시 출근, 6시 퇴근의 전통적인 근무 방식은 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경쟁 격화로 기업도 유연성 확보 차원에서 언제 어떤 근로자가 필요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예측이 불가능할수록 다양한 근로 형태의 근무자를 확보할 필요성이 높아진다. IT가 한층 발달하면 더더욱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근무 방식이 늘어날 것은 당연하다. 게다가 친환경 메리트도 뺄 수 없다.



캡션: 재택근무 등은 걱정되는 점도 있다. 대표적인 게 커뮤니케이션의 불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