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4일 오전 11시 과천 지식경제부 1층 기자실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당초 홍석우 지경부 장관의 정례 브리핑이 있는 날이었다. 하지만 이날 관심을 모은 인물은 김종신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을 비롯한 한수원 임직원들이었다. 홍 장관도 이날 배석했지만 모든 시선은 김 사장에게로 쏠렸다. 분위기가 이렇게 된 것은 3월 14일자 조간신문이 일제히 고리원자력발전소 1호기의 사고 은폐 관련 기사를 내보냈기 때문이다.

사실 고리 1호기 전원 공급 중단 사태 자체는 심각한 일이 아니었다. 사고 내용은 간단하다. 지난 2월 9일 오후 8시 34분께 발전기 보호계전기를 시험하던 중 외부 전원 공급이 끊어진데 이어 비상용으로 있는 디젤발전기마저 작동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원자로 냉각기가 12분간 돌아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냉각기의 역할은 원자로가 녹지 않도록 일정 온도를 유지해 주는 것이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은 쓰나미로 전원 공급이 중단되면서 냉각기가 작동하지 않아 원자로의 핵연료봉이 녹아내렸다. 하지만 고리 1호기는 전원 공급이 되지 않은 시간이 10여 분에 지나지 않아 후쿠시마와 같은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문제는 이 같은 일이 한 달이 지나도록 전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언론들도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지난 3월 13일 고리 1호기 전원 공급 중단 사태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다는 발표를 보고서야 알게 됐다.

외부 인사로 고리 1호기의 전원 공급 중지 사고를 제일 먼저 안 사람은 김수근 부산시의원이었다. 김 의원에 따르면 지난 2월 20일 고리 1호기 정기 점검에 참여한 협력 업체 근로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식사를 곁들인 술자리에서 나눈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되면서 ’사고’ 소식을 알게 됐다. 그는 이후 고리 1호기 측에 세 차례 확인을 시도했지만 묵살 당했다고 전했다. 사고 당시 고리 1호기 총괄 책임자도 교체된 상태였다.

하지만 한수원 내부에서는 김 의원의 이 같은 전화로 발칵 뒤집혔다. 이영일 신임 고리원전본부장은 이 사실을 곧바로 한수원 본부에 보고했다. 김 사장은 “지난주 토요일(3월 10일) 고리 1호기 본부장으로부터 보고할 사안이 있다기에 일요일(3월 11일) 오후 4~5시쯤 만나 사고 내용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사고 내용을 보고받은 시점이 3월 11일 오후이며 지경부와 원자력 안전 당국에는 3월 12일 보고했다”고 설명했다.
<YONHAP PHOTO-1194> 고리원전 해안방벽 높인다
    (부산=연합뉴스) 조정호 기자 = 원자력 안전 규제 당국은 고리 1호기에 대한 정밀점검 결과 문제가 없다고 판단, 6일 재가동을 공식 승인했다. 사진은 고리 1호기 부근 해안방벽. 정부는 자연재해에 대비해 고리 원전 해안 방벽 높이를 다른 원전 수준(10m)으로 맞출 방침이다. 2011.5.6.
    ccho@yna.co.kr/2011-05-06 14:08:24/
<저작권자 ⓒ 1980-2011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고리원전 해안방벽 높인다 (부산=연합뉴스) 조정호 기자 = 원자력 안전 규제 당국은 고리 1호기에 대한 정밀점검 결과 문제가 없다고 판단, 6일 재가동을 공식 승인했다. 사진은 고리 1호기 부근 해안방벽. 정부는 자연재해에 대비해 고리 원전 해안 방벽 높이를 다른 원전 수준(10m)으로 맞출 방침이다. 2011.5.6. ccho@yna.co.kr/2011-05-06 14:08:24/ <저작권자 ⓒ 1980-2011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안전위가 결국 고리 1호기 사고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지만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정전 사고 직후 발전 소장 등 현장 간부들이 회의를 열고 사고 사실을 은폐하기로 모의했던 점도 드러났다. 또 이번 사고로 노후 원전을 폐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시민 단체들의 주장들도 더욱 힘을 받게 됐다.

오는 3월 26~27일 핵안보정상회의를 앞두고 있는 외교통상부 당국자들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원전의 안전 문제를 논의하는 대규모 정상회의 주최국에서 회의를 불과 10여 일 앞두고 이런 사고가 터졌기 때문이다.

지경부·한수원·한국전력 관계자들은 아랍에미리트연합(UAE)·터키 등 한국형 원전 수출 대상 국가들의 불안감이 커질 가능성도 크게 우려하고 있다. 지경부 관계자는 “아무리 첨단 기술로 만든 기계라도 고장 나지 않을 수는 없다”며 “다만 이에 대한 투명성이 보장돼야 국가 간 신뢰가 쌓이는 법인데 이번 일로 한국 원전에 대한 불신이 생길 수 있을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홍 장관은 이번 사고와 관련, “관계자 엄중 문책을 포함한 제반 조치를 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사고 발생과 보고 누락 및 은폐가 기왕에 엎질러진 물이 됐다면 장관 말대로 엄중 문책이라도 제대로 이뤄져야 전력 당국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 한국 원전에 대한 다른 나라들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전환점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박신영 한국경제 경제부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