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 ‘저가주 사냥꾼’이라고 불렸던 투자의 대가 월터 슐로스가 최근 95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현대 증권 분석의 아버지 벤저민 그레이엄 밑에서 사사했던 세쿼이어 펀드의 빌 루안, 월터 슐로스 등 가치 투자 1세대들이 세상을 떠나고 있다. 슐로스는 자신의 스승이자 직장 상사였던 그레이엄이 은퇴하자 자신의 투자회사를 설립했다. 1955년의 일이다. 그 후 그는 직원을 한 명도 두지 않고 자신의 아들 에드윈과 함께 45년간 펀드를 운용했다. 45년간 연평균 수익률은 15.7%였다. 같은 기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의 지수 상승률이 10%인 점을 감안하면 매우 빼어난 투자 성적표를 기록했다.


투자는 심리 게임, 인내심이 ‘관건’

슐로스의 투자법은 매우 간단했다. 기업의 재무제표를 분석해 시가총액이 현금성 자산에 비해 턱없이 적은 기업을 골라 5년간 보유해 2배의 수익률을 올리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5년 이전이라도 주가가 2배 상승하면 기계적으로 매도했다. 브랜드나 독점력과 같은 정성적 분석을 하지 않고 오로지 재무제표에 기반한 정량적 분석만 했다. 기업 탐방도 하지 않았다. 그가 한 일이라고는 사무실 구석에 앉아 재무제표를 보고 저가주를 찾는 일이었다.

왜 같은 스승 밑에서 일한 워런 버핏과 다른 방법으로 투자하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그는 이렇게 답했다. “버핏은 단 하나의 예외다. 버핏처럼 투자하면 돈을 더 벌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나는 내 편한 방식으로 할 뿐이다.” 버핏도 초기에는 재무제표 분석에 기반한 정량적 분석 위주로 투자했지만 그 이후 기업의 독점력을 중시하는 정성적 투자로 자신의 투자 철학을 발전시켜 나갔다. 재미난 한 가지 사실은 슐로스의 펀드에 45년간 돈을 넣어두고 한 번도 찾아가지 않은 고객이 4~5명 정도 있었다는 것이다. 과연 이들은 어느 정도의 수익률을 올렸을까. 무려 721.5배의 수익을 냈다.
[이상건의 재테크 레슨] 재무제표에 기반한 정량적 분석, ‘저가주 사냥꾼’ 슐로스의 투자법
슐로스의 삶과 투자 철학에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먼저 원칙의 중요성이다. 슐로스는 버핏의 투자법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자신이 잘할 수 있는 방법에 집중하고 그것을 45년간 일관되게 지켜 나갔다. 투자의 성공은 간단한 원칙을 수립하고 이를 끝까지 지켜나가는 데 있다는 것을 슐로스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둘째, 장기 투자다. 수많은 투자 교과서와 전문가들은 장기 투자만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얘기한다. 그러나 이를 실제 행동으로 옮기기는 결코 쉽지 않다. 인간은 원시시대 사바나에서 살아남은 원칙을 현대에서 적용한다. 어떤 상황이 발생하면 ‘싸움이냐 도망이냐(fight or flight)’의 문제로 해석한다. 예를 들어 증권시장이 폭락하면 사람들은 상황을 싸움이냐 도망이냐의 문제로 여기고 주식을 팔고 나간다. 어쩌면 45년간 펀드를 운용한 슐로스보다 더 대단한 사람들은 어쩌면 그에게 돈을 맡기고 45년간 한 번도 돈을 찾아가지 않았던 투자자들이다.

셋째, 복리의 힘이다. 슐로스의 투자 성적표 그래프를 보면 약 30년 동안은 조금씩 수익률이 점진적으로 올라간다. 그러다 30년째 되는 해 누적 수익률이 가파른 절벽처럼 타고 올라간다. 만일 30년이란 변곡점이 오기 전에 돈을 빼냈다면 돈을 벌긴 벌었지만 대박을 치지는 못했을 것이다. 복리 수익률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30년 이상의 시간 지평을 가질 때만 큰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자녀들을 위한 어린이 펀드는 장기 투자 상품으로 매우 매력적이다. 소액으로 수십 년간 불입하면 생각보다 큰 수익을 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흔히 투자를 심리 게임이라고 한다. 심리 게임은 두 가지 의미인데, 하나는 시장 참여자들의 투자 심리를 살펴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 자신의 심리 상태를 컨트롤하라는 것이다. 전자보다 후자가 더욱 어렵다. 슐로스의 투자 인생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첫째도 인내심, 둘째도 인내심, 셋째도 인내심이라는 사실이다.


이상건 미래에셋 투자교육연구소 상무 sg.lee@miraeasse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