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적 관계 vs 수직적 관계


외부 컨설턴트인 홍길동 씨는 오늘도 고객사인 X 기업의 김 차장과 통화하면서 마음이 답답하다. “그러니까요, 김 차장님. 지금 회사에서 원하는 게 A 타입인지 B 타입인지 정확하게 말씀해 주셔야 우리가 일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라는 요구에 김 차장은 이렇게 대답한다.

“우리 상무님이 보내주신 e메일을 보면 아마 A 타입을 원하는 것 같습니다.” 업무에 대한 피드백을 e메일로 받은 김 차장은 행간을 읽어가며 상무의 의중을 살피기 위해 노력 중이다. 재차 구두로 확인해 달라는 컨설턴트의 요구에도 왠지 끙끙대는 모습이 상사인 박 상무와의 미팅 자체를 두려워하는 기분이 든다. “지금 상무님은 바쁘시고 또 게다가….” 전화기 너머로 느껴지는 기분은 아마도 뭔가 더 물었다가는 상무의 불호령이 김 차장에게 떨어질 것 같은 예감이다.
[리더의 스피치] 리더의 개방성, 어느 정도가 적정선일까
객관적으로 박 상무의 입장이 되어서 고민해 보자. 그가 만약 언제 어디서든 부하 직원이 대화를 요청할 수 있는 수평적 리더라면 어떤 문제에 직면하게 될까. 아마도 부하 직원은 업무에 대한 고민이나 조사도 하지 않고 궁금한 사항이 생기면 득달같이 달려와 물어보고 툭하면 상무의 업무 시간을 방해할지도 모른다.

아마 의존적인 부하 직원 때문에 골치를 썩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처럼 한 번의 피드백 e메일을 주고 더 이상의 질문을 허락하지 않는 카리스마는 부하 직원 혼자서 끙끙대다가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는 상황을 만들어 낸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조직의 효율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온다.

한편 수평적 리더십을 구사하는 많은 리더들의 고민은 이것이다. “열린 대화를 하자면 의견 제시를 넘어 불평불만이 끊임없이 쏟아집니다. 스스로 알아서 하는 일이 없어요. 그래서 수직적인 자세로 나오면 아예 입을 다물어 버립니다. 자기들끼리 알아서 눈치 보며 재량껏 해결하다 보니 배가 산으로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과연 리더의 개방성을 어느 정도로 하는 것이 현명한지 고민해 보자. 만약 당신의 카리스마가 엄청나 부하 직원들이 ‘쪼르르 달려오지 못하는’ 위엄이 있다면 업무에 대한 피드백이 정확하고 치밀해야 한다. 다만 이것만은 짚고 넘어가자. 윗사람이 언질을 주면 아랫사람이 알아서 헤아리는 문화는 기성세대의 커뮤니케이션이다. 자신을 조직과 환경의 일부로 생각하는 동양적 사고방식에서는 어떻게 하든 내가 그 목표에 맞추려고 노력했지만 신세대의 중심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따라서 정확한 정보와 가이드라인이 있어야 원하는 만큼의 성과가 나온다.
수평적으로 대화한다는 것은 부하를 느슨하게 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도 버릴 필요가 있다. 언제든 들어 줄 준비, 말할 준비가 되어 있되 리더가 무작정 코멘트를 하거나 해결책을 내려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브레인스토밍을 하는 과정을 만든다면 상사의 방에 들어오는 부하도 뭔가 조사해 준비하고 들어올 것이다.

수평적 관계는 리더만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관계가 아니라 부하도 아래서 위로 올라와는 책임감을 함께 공유하는 과정이다. 수평적이라고 해서 나의 리더십이 무너질 것 같은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결국 박 상무와의 면담에 부담을 느낀 김 차장은 A 타입으로 판단을 내려 일을 진행했고 어느 정도 진척이 이뤄지다가 박 상무의 지적을 받고 B 타입으로 변경했다. 서로가 답답했을 것이다. 과연 어떤 것이 더 남는 장사인지 고민할 시간이다.
[리더의 스피치] 리더의 개방성, 어느 정도가 적정선일까
안미헌 한국비즈트레이닝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