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매 개시 후에 신고된 유치권

얼마 전 경기도 용인에서 10억 원대에 분양된 아파트가 1억 원대에 낙찰돼 화제가 됐다. 이 물건은 여러 공사업체들의 유치권(타인의 물건이나 유가증권을 점유한 사람이 해당 재산으로 인해 생긴 채권의 변제를 받을 때까지 거래 등을 막을 수 있는 권리)이 신고돼 있고 대지권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미등기되다 보니 여러 차례 유찰될 수밖에 없었다.

일부 유치권에 대해 채권단에서 배제 신청을 내고 대법원까지 가서 승소 판결을 받기도 했지만 여전히 유치권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어 일곱 차례나 유찰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장기간 경매를 유찰시킨 유치권이 오히려 여러 사람들이 저가 입찰의 관심을 갖게 한 계기가 됐으니, 이것을 유치권의 긍정적 효과라고 해야 할 것인지 아리송하다.

이처럼 유치권이 걸린 물건은 쉽게 낙찰받기 어렵다. 인수 금액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고 이를 해소하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금 여유가 있고 시간과 비용 압박에서 자유롭다면 유치권이 걸린 물건에도 한 번 도전해볼 만하다. 용인의 아파트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유치권을 걷어내고 원래의 가치를 회복한다면 상당히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감정가 28억 원의 찜질방을 10억4300만 원에 인수한 A 씨의 사례를 보자. 은퇴 후 개인 사업을 위해 고민하던 그는 지인으로부터 부산의 대표적 관광지인 송도 해수욕장 인근 찜질방이 경매 물건으로 나와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현장을 답사해 보니 해변도로를 접하고 있고 도로 너머가 바로 해수욕장이라 사업성이 충분할 것으로 예상됐다.
25일 금융당국과 채권단이 건설회사 16개를 워크아웃 또는 퇴출 대상으로 분류하는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안을 발표한 가운데 하도급 업체들이 기성대금 미지불로 유치권 행사에 들어가면서 공사가 중단된 경기도 용인시 풍덕천동의 한아파트 건설현장.

/허문찬기자  sweat@  20100625
25일 금융당국과 채권단이 건설회사 16개를 워크아웃 또는 퇴출 대상으로 분류하는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안을 발표한 가운데 하도급 업체들이 기성대금 미지불로 유치권 행사에 들어가면서 공사가 중단된 경기도 용인시 풍덕천동의 한아파트 건설현장. /허문찬기자 sweat@ 20100625
유치권 걷어내면 상당한 수익

경매 기록을 검토해 보니 이미 다섯 차례나 유찰돼 있었다. 28억 원대의 감정가격은 3분의 1로 떨어진 상황. 경매 관계자들의 조언을 받아보니 공사 대금 30억 원을 근거로 유치권이 신고돼 있었다. 이래서야 아무리 낮게 낙찰 받아도 소용없겠다는 생각에 경매를 포기하려고 했다. 이때 지인이 슬며시 웃으며 A 씨의 손을 잡았다. “아무렴 아무런 생각 없이 이런 물건을 소개했겠느냐”는 것이다.

지인의 논리는 간단했다. 찜질방이 있는 건물에 다른 사무실이 하나 있는데 유치권자들이 이 사무실을 점유하고 있다가 경매 개시 결정이 내려지자 뒤늦게 찜질방까지 점유했다는 것이다. “그게 뭐 어쨌다는 것이냐”고 반문하는 A 씨에게 지인은 경매 개시 결정이 내려지면 해당 부동산에 대한 압류 효력이 발생하기 때문에 이후에 점유한 유치권자는 낙찰자에게 대항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시 말하면 경매 개시 결정이 내려진 뒤에는 해당 부동산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행동이 법으로 금지되는데, 유치권자들의 점유가 법원의 경매 개시 결정 뒤에 이뤄졌고, 이는 유치권의 성립 요건인 ‘적법한 점유’를 위반했으므로 재판으로 가면 승소할 확률이 높다는 게 지인의 의견이었다.

법률 전문가들에게 자문한 A 씨는 승산이 있다는 판단을 내렸고 감정가의 37%인 10억4300만 원에 찜질방을 낙찰 받았다. 이후 대법원까지 가는 소송이 이어졌지만, 결국 A 씨의 손을 들어 줬고 마침내 10억 원으로 30억 원대의 부동산을 소유하게 됐다. 수리에 들어가는 비용과 그동안 소송에 들인 시간과 노력이 아깝지 않은 결과였다.

초보자라면 유치권이 걸린 부동산은 피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유치권 신고가 남용되는 현실을 고려할 때 의외로 허술한 곳에서 무너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남승표 지지옥션 선임연구원 lifa@gg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