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살기’ 재발견…30대 주최 급증
힘들 땐 따뜻한 위로가 정답이다. 또 위로는 진정성이 있을 때 배가된다. 지진·방사능의 연이은 대재앙은 일본인의 삶에 위로의 진면목을 제대로 알려줬다. 현대의 바쁜 일상을 잠시 멈춘 뒤 고통 분담의 의미를 새삼 부각시켰다. ‘기즈나(絆)’의 부활이다. 인연 중시의 흐름 강조다. 혼자만 잘살 게 아니라 더불어 사는 공유 가치의 재검토다. 요즘 일본에선 대면 모임이 부쩍 잦아졌다. 소홀했던 인연과의 재회 욕구다. 사람과 사람과의 끈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재해 교훈이 한몫했다. 동창회가 주류 행사로 떠오른 배경이다. 동창회 붐이다. 지진 이후 동창회가 급증했다. 현대인의 과거 지향적인 인연 부활이 동창회를 필두로 뚜렷한 사회 트렌드가 된 분위기다. 인터넷 사이트엔 동창회 개최 안내와 후기 작성이 끊이지 않는다. 페이스북·트위터 등 연락 두절의 동창·친구와 연결해 주는 현대 문명(SNS)의 확대·보급도 인연 지향을 거들어 준다. 실제 지진 이후 동창회는 2~3배 늘었다.
대행 회사 ‘도소카이혼포(同窓會本鋪)’에 따르면 동창회는 지진 발생 6개월을 전후해 216% 늘었다. 당시 안부 확인을 위한 재해 지역 학교 위주의 단발 행사로 해석됐지만 갈수록 트렌드로 안착되는 추세다. 연말연시는 확실한 붐업 계기였다. 연말연시 장기 휴가와 고향 귀성이 맞물린 덕분이다. 평소 만나지 못하는 동창을 만날 절호의 찬스로 해석됐다. 동창회 붐을 취재한 NHK는 “재해 지역은 물론 기타 권역 동창회도 인연 복구와 귀성 러시가 맞물려 늘었다”고 전했다. 2011년보다 30~200% 늘어난 것으로 분석된다. 이와 함께 지진 직전 방영된 ‘동창회’란 제목의 TV 프로그램의 인기도 동창회 개최 붐에 일조했다.
지진 이후 시작된 열풍
동창회 붐은 연령 불문이다. 흔히 동창회는 ‘졸업 00주년’ 혹은 ‘환갑(60세)’ 등 인생 분기점에서 열리는 생애 행사로 이해된다. ‘동창회는 60대부터’란 타이틀이 상식처럼 여겨지는 이유다. 은퇴 연령대답게 시간·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데다 이후 후속 모임으로 연결될 확률도 높아서다. 그만큼 노인 동창회가 일상적이다. 이들에게 동창회는 추억 반추와 고민 공유는 물론 은퇴 생활과 재취업을 위한 각종 정보를 얻는 진솔한 자리 중 하나다.
활력을 얻는 건 부가 수혜다. 동창회가 세분화돼 입맛에 맞는 하부 모임이 만들어지는 일도 잦다. 과소화의 지방 출신이면 학교 폐교, 철로 폐선(廢線) 등 추억 상실을 계기로 고향 방문과 우정 결속을 다지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최근 개최 연령이 꽤 앞당겨졌다. 주선 업체에 따르면 30대 동창회가 대세다. 중학 졸업 20주년을 맞은 35세의 모임 의뢰가 많은 가운데 30세 기념 동창회도 적지 않다.
30대면 본업에서 일정 부분 자리를 잡는 데다 결혼·육아이슈가 일단락돼 비교적 여유가 생겨나는 연령대다. 일부에겐 결혼과 사교의 기회로도 제격이다. 30대는 시너지 효과도 기대된다. 업무 권한이 생겨 비즈니스로 연결될 여지가 많고 독신이면 서로 아는 처지에서 편히 연애할 수도 있다. 동일 취미의 서클 결성도 많다.
붐은 곧 돈이다. 관련 업계는 동창회 마케팅에 돌입했다. 동창회 시장 장악이 목표다. 일례로 ‘동창회 지원 플랜’ 등을 내세우며 호텔·온천·여행업계 등의 인연 마케팅이 뜨겁다. 주도권은 호텔 업계가 쥔 상황이다. 호텔엔 반가운 신규 고객으로 향후 역량 투입이 불가피한 테마 기획 중 하나다. 피폭 우려로 가뜩이나 해외 관광객이 줄어들고 고통 공유로 파티 개최가 자숙되는 판에 동창회는 명분과 실리가 일치하는 짭짤한 이벤트다. 산케이신문은 “동창회가 불황에 고전하던 호텔 매출을 커버 중”이라고 전했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겸임교수(전 게이오대 방문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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