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시대, 돈 버는 사람 따로 있다?

6개월 전 홍대 앞에서 커피 전문점을 창업한 조모(55·남) 씨는 최근 매출 부진을 견디지 못하고 끝내 사업을 접었다. 20년 넘게 공직에서 근무한 조 씨는 커피 전문점이 수요도 많고 비교적 별다른 운영 노하우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 창업했지만 인근에 다른 커피 전문점들이 많아 경쟁이 치열한 데다 임차료가 싼 곳을 찾다보니 입지도 좋은 편이 아니었다.

공교롭게도 그 자리는 조 씨 이전에도 다른 사람이 도시락 전문점을 개업했다가 6개월 만에 접고 나간 곳이었다. 4개월 전 신사동 가로수길 인근에 일본식 라면 전문점을 오픈한 한모(43·남) 씨도 심한 적자 때문에 폐업이나 업종 변경을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한 씨는 “경기가 좋지 않다 보니 몇 개월 만에 업종이 바뀌거나 새로운 가게가 들어선다”며 “새로운 장소를 찾게 되면 부동산 비용을 들여야 하고 같은 자리에서 업종만 변경하더라도 인테리어 리뉴얼 비용이 추가로 발생되니 이래저래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비즈니스 포커스] 부동산·인테리어 업체들의 말 못할 고민
‘건수’ 늘었지만 ‘실수익’ 줄었다

경기는 불황이지만 창업자들은 늘고 있다. 청년들의 취업형 창업과 경제활동에 뛰어든 주부들의 창업, 여기에 투잡족들과 은퇴자들까지 가세하면서 창업 희망자들은 날이 갈수록 증가 추세다. 너도나도 창업에 가세하다 보니 신규 사업체는 늘어나는데 실제 생존율을 줄어들고 있는 형국이다. 지난해 통계청 통계개발원이 발표한 ‘2004 ~2009년 사업체 생멸(생성·소멸) 현황 분석’을 보면 신규 사업체의 1년 생존율은 70% 안팎이었고 2년 생존율은 약 55%, 3년 생존율은 45% 안팎이었다.

그러나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2010년 이후는 더 낮아졌을 것으로 관계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MK창업의 이병길 팀장은 “폐업과 개업이 반복되는 것을 많이 보는데, 이르면 한 달 만에 바뀌기도 하고 3개월 만에 바뀌기도 한다”며 “우리가 알게 모르게 간판만 바뀌는 곳도 있고 명의만 바뀌는 곳도 있기 때문에 그것까지 감안하면 엄청나게 바뀌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경기가 불황이라지만 성공 가능성이 낮은 게 창업 시장”이라며 “경력 창업자보다 초보 창업자가 많다 보니 쉽게 생각하고 시작했다가 손에 익지 않아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창업자들 사이에는 ‘진짜 돈 버는 사람은 따로 있다’는 하소연이 나오고 있다. 신규 창업이 빈번하다 보니 부동산 업체들과 인테리어 업체들만 돈을 벌고 있다는 것. 강남역 인근에 술집을 오픈한 최모 씨는 “임차료와 권리금, 부동산 비용은 어쩔 수 없었지만 거기에 수천만 원의 인테리어 비용까지 부담할 여력이 없어 자신이 직접 발품을 팔았다”고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부동산 업체와 인테리어 업체들도 과거 대비 신규 또는 재창업 횟수가 많아진 점을 인정했다. 하지만 “건수만 늘었을 뿐 실제 수익 증대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남의 한 부동산 업체 대표는 “요즘처럼 매매 건수가 없을 때는 많은 부동산들이 점포 임대 건으로 생계유지를 하고 있다”며 “그나마 다른 부동산이 많아 ‘나눠 먹기’ 식으로 하다 보니 실제 수익이 많다고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홍대 인근의 모 부동산 업체 대표 A 씨는 “우리처럼 소자본 창업자들을 대상으로 한 부동산은 사실상 돈을 벌기 힘들다”면서 “주요 상권마다 소위 ‘전담 부동산’이란 게 있는데 그런 부동산들만 요즘 같은 분위기에 무임승차해 배가 부른 실정”이라고 했다. 전담 부동산은 소위 주변 건물주들을 ‘꽉 잡고’ 있는 곳으로, 설령 임차인이 다른 부동산을 통해 계약하고 싶어도 전담 부동산을 통하지 않으면 거래 자체가 성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전담 부동산 업자는 건물주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부당한 일도 한다는 게 A 씨의 부연 설명. A 씨는 또 “일부 악덕 부동산들은 건물주에게 ‘월세를 올려 받아주겠다’고 부추겨 기존 임차인을 내쫓게 한 뒤 새로운 거래를 발생시키는 방법으로 영업을 하기도 한다”며 “그런 과정에서 소자본 창업자들만 죽어나가고 그들을 대상으로 하는 부동산 업체에 부메랑이 돼 돌아온다”고 토로했다. 소자본 창업자들이 원하는 월세 수준으로 점포를 찾다보면 유동인구가 적어 장사가 잘 안 되는 곳들이 대부분이라 실제로 계약이 이뤄지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프랜차이즈 본사와 대기업이 진짜 수혜

인테리어 업체들도 하소연하기는 마찬가지다. 신규 창업도 창업이지만 요즘엔 인테리어가 매출과 직결되는 경쟁력으로 인식되다 보니 리뉴얼하는 점포들까지 가세해 확실히 횟수는 많아졌지만 오히려 마진은 줄어들었다는 것.

카페 등의 인테리어를 전문으로 하는 ‘디자인 마또’의 최정은 실장은 “대규모로 진행하는 몇몇 업체는 상황이 좋을지 몰라도 소자본 창업 위주로 진행하는 인테리어 업체들은 마진을 많이 남기면 계약 자체가 안 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또한 “10년 전 단가 기준이 3.3㎡당 100만 원이었는데 지금도 마찬가지”라며 “99~132㎡(30~40평)가 넘으면 그나마 그 정도 선에서 맞춰볼 수 있지만 10~50㎡(3~5평) 규모의 점포들도 그 단가에 해달라는 요청이 많아 힘들다”고 덧붙였다. 창업이 늘어난 시대 분위기에 맞춰 인테리어 업체들도 늘어나다 보니 업체 간 경쟁이 심해진 것도 단가를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비즈니스 포커스] 부동산·인테리어 업체들의 말 못할 고민
그나마 규모가 큰 프로젝트는 사정이 좀 낫다. 최근 몇 년 사이 대형 병원의 리뉴얼 작업을 맡아했다는 디자인 ‘J&GROUP’의 권희경 실장은 “병원들도 폐업과 개원을 반복하거나 비만 클리닉이나 에스테틱을 추가해 재오픈하는 곳이 많아졌는데, 경기가 어렵다 보니 큰돈을 들이는 곳이 많지 않다”며 “그나마 우리는 종합병원 등 큰 병원 위주로 설계한 덕분에 나은 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자재 값 등이 많이 올랐고 인터넷의 발달로 그런 내용이 일반에게도 다 오픈돼 예전엔 마진이 20%였다면 지금은 10% 정도로 줄어 실질적 수익이 늘었다고 보기는 힘든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비즈니스 포커스] 부동산·인테리어 업체들의 말 못할 고민
부동산 업계 관계자들과 인테리어 업체 관계자들은 창업 붐을 타고 진짜 돈 버는 곳은 프랜차이즈 본사와 대기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병길 팀장은 “경기와 상관없이 프랜차이즈 본사는 확실히 돈을 번다”며 “잘되면 잘되는 대로 돈을 벌고 안 되면 리뉴얼을 강제하거나 문을 닫고 그 옆에 또 신규 창업을 하는 식으로 돈을 번다”고 말했다. 최정은 실장 역시 “신사동 가로수길만 해도 대기업 브랜드를 내세운 대규모 빌딩과 점포들이 우후죽순 들어서면서 소규모 업체들은 더욱 힘든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한 부동산 업체 관계자는 “떡볶이 하나를 먹더라도 브랜드만 선호하는 소비자들의 의식도 소규모 상권에 큰 타격을 주는 요인”이라며 “그러다 보니 모든 상권이 다 비슷해지고 소비의 다양성이 없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기자가 강남 일대와 홍대 일대를 돌아본 결과 유동인구가 많은 큰 도로 주변은 말할 것도 없고 골목골목까지 프랜차이즈 업체 및 대기업 브랜드 점포가 대거 들어서 있었고 개인이 운영하는 분식집이었던 자리에 떡볶이 프랜차이즈 업체가 새로 들어선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흥망의 주기가 짧아지면서 그에 따른 부작용도 생겨나고 있지만 여전히 창업 시장은 창업하려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창업할 때는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꼼꼼하게 체크해야 실패 확률을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강남부동산컨설팅 남정우 대표는 “요즘은 ‘가게가 자리를 잡는 시간’이라는 개념은 사라졌다”며 “바로 흥망이 결정되는 만큼 아이템 선정에서부터 입지 선택, 가게를 내놓았을 때 잘나갈 것인지의 여부와 건물주가 어떤 사람인지까지 철저히 따져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사진 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