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속 드러나는 권력투쟁 내막

보시라이 충칭시 당서기의 심복이던 왕리쥔이 최근 미국 망명을 시도하며 보시라이를 ‘위선자’, ‘최대 간신’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불거진 중국의 권력투쟁이 중국인들의 눈길을 잡고 있다. 민감한 이슈에 대해 예외 없이 인터넷 검색을 막아 온 중국 당국이 검색어 보시라이는 차단하면서도 왕리쥔에 대한 근거 없는 소문이 퍼지는 것은 허용하는 모호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도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중국] ‘왕리쥔 사건’ 둘러싸고 음모론 확산
권력투쟁 드라마의 첫 장면은 지난 2월 6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몸이 아플 테니 쉬라는 게 말이 되나.” 왕리쥔은 며칠 전 충칭시 공안국장에서 해임된 분을 삭이지 못한 채 차를 300km 몰아 청두에 있는 미국 총영사관으로 들어갔다. 1년여 전 겸직하기 시작한 부시장 자격으로 약속을 해둔 터였다. 뒤늦게 황치판 충칭시장이 경찰을 이끌고 쫓아와 영사관을 에워쌌다. 하루 뒤에야 영사관을 나온 왕리쥔을 놓고 충칭으로 압송하겠다는 황 시장과 베이징으로 송환해야 한다는 국가안전부 관계자가 승강이를 벌였다. 중앙의 모 인사가 보시라이에게 전화를 걸었고 결국 왕리쥔은 베이징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후진타오가 태자당·상하이방 연합세력 공격”

여기까지는 주군을 배신한 심복이나 나쁜 주군에 등을 돌린 애국자의 이야기로 끝날 듯싶다. 하지만 보시라이가 올가을 새로 구성되는 공산당 최고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에 입성하기 위해 히든카드로 내세운 부패와의 전쟁 일등 공신으로 왕리쥔이 활약한 장면이 오버랩되면서 권력투쟁설이 피어난다. 크게 두 갈래 설이다.

우선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권력 기반인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파가 태자당(공산당 원로 자제)과 상하이방 연합세력을 공격하고 있다는 설이다. 공청단 출신 가운데 9명의 정치국 상무위원 중 차기 위원으로 확실시되는 인사는 리커창 부총리뿐이다. 여기에 리위안차오 공산당 조직부장, 류옌둥 국무위원, 왕양 광둥성 서기 등이 후보로 꼽힌다. 공천당 출신은 4명으로, 차기 지도자로 내정된 시진핑 국가부주석과 보시라이 등이 속한 태자당과 상하이방 연합세력에 수적으로도 밀린다. 공청단의 공격설을 뒷받침하는 여러 정황이 있다.

왕리쥔에 대한 부패 조사가 1년여 전부터 진행됐고 왕리쥔의 후임 공안국장이 리커창의 비서로 알려진 관하이샹으로 충칭에 오기 전 15년간 공청단에서 일했다. 왕양 광둥성 서기가 최근 범죄와의 전쟁을 선언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지적이다. 상하이방의 거두인 장쩌민 전 국가주석의 측근으로 광둥성 당서기를 지낸 장더장 부총리를 겨냥했다는 것이다.

보시라이와 왕리쥔이 충칭 당서기를 지낸 왕양의 측근인 원창 충칭 사법국장을 조폭 비호 혐의로 붙잡아 사형에 처한 것에 대한 보복성 행보라는 것이다. 여기에 푸젠성 샤먼시 검찰이 작년 7월 캐나다에서 송환한 라이창싱을 중급인민법원에 기소함에 따라 장쩌민 측근인 자칭린 정협 주석이 다칠 수 있다는 소문도 돈다. 공청단의 공격은 중국의 새 1인자가 될 시진핑 부주석에 대한 견제라는 지적이다.

하지만 보시라이가 지나치게 ‘좌’로 가는 행보로 좌·우파 간 분열을 조장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아 베이징의 권력층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설도 유력하다. 한때 총리설까지 나돌던 보시라이는 2007년 상무부장에서 충칭시 서기로 좌천되자 부패와의 전쟁 및 홍색 캠페인(마오쩌둥 시절의 분배 이데올로기 강조)에 올인하며 중앙 무대 재진출을 노렸다. 하지만 보시라이는 ‘사람은 유명해지는 걸, 돼지는 살찌는 것을 두려워 한다’는 말이 있을 만큼 절제와 과묵, 타협 등을 중시해 온 중국 문화와는 어울리지 않게 튀는 정치를 구사해 왔다.


베이징=오광진 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