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 공간은 기업이 사업을 기획하고 설계→인허가→분양을 거쳐 입주하기까지 3년 이상 소요되며 입주 후 건물 수명을 최소 20년 가정하면 적어도 한 가족의 30년 미래의 삶을 담는 그릇이 된다. 트렌드를 예측하는 것은 소비자가 당장 필요하다고 느끼는 수요를 파악하는 것뿐만 아니라 미래의 삶을 그려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또한 이러한 주택 트렌드를 알면 미래를 대비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면 향후 주거 공간은 어떤 모습으로 변해갈까. 1. 타임 셰어 하우스
주거 공간의 다양한 공용(共用) 시대 개막
주거 공간의 타임셰어(Time Share)는 집에 대한 개념이 소유에서 거주·이용으로 인식이 바뀌면서 주거 공간을 여러 사람이 시간 단위로 나눠 공동 사용한다는 것으로, 기존의 임대 방식인 전세나 월세보다 세분화되는 개념이다.
즉, 2년이나 1년 단위로 임대 계약하는 것이 아니라 주·하루·반나절 단위까지 선택할 수 있고 가벼운 일상 생활용품만 가지고 옮겨 다니며 여러 집을 이용하는 것이다. 콘도나 리조트 같은 상업용 건물에서 이미 시행해 왔던 개념이 주거로 확대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현상은 1인 가구가 증가하고 도심 소형 주거 공간의 이용이 활성화되며 자녀들을 출가시킨 장년층 가구의 남는 주거 공간이 많아지는 것, 자유무역협정(FTA) 비즈니스 인구와 외국인 관광객 증가 등에 따라 수요도 증가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인터넷과 스마트폰 등의 기술 발전이 수요와 공급을 잘 연결시키면서 타임 셰어가 보편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아파트에 남는 방 하나를 주말에 외국인 관광객에게 숙소로 빌려주는 홈스테이(home-stay)도 활성화되며, 더 나아가 휴가나 출산·보육·이직·전근·교육 등 일정 기간 동안 집을 빌려주거나 영화처럼 집을 서로 맞바꿔 사용하는 모습도 낯설지 않게 될 것으로 보인다.
2. 신 캥거루 홈
부모에게 빌려쓰는 독립된 주거 공간 등장
최근의 전세난과 적령기를 지나 결혼이 늦어지는 현상을 반영하는 새로운 계층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 독립할 나이가 됐는데도 부모에게 의존하며 사는 사람들을 일컫는 ‘캥거루족’과 달리 ‘신캥거루족’은 경제적으로 독립한 자녀가 주거 공간을 확보하지 못해 부모와 동거하는 것을 의미한다. 직장을 갖고 경제적으로 독립한 자녀가 아파트 가격 및 임대료 상승으로 주거 공간을 확보하기 어려워지자 부모에게 주거 공간을 빌려 쓰게 된다는 것으로, 부모에게 주거 공간을 이용하는 비용을 지급하고 주거 공간을 비교적 독립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독립성 확보를 위해서는 별도의 현관 출입문이나 전용 화장실을 둔다든지 프라이버시를 어느 정도 유지하면서 한집에 살 수 있는 분리형 구조로 설계된 주택 상품이 요구된다.
3. 매뉴팩처드 하우스
건설업과 제조업의 산업 간 컨버전스
주택이 공사 현장에서 작업자가 직접 짓던 단독주택 건축, 아파트 중심의 공동주택 건축 시대를 지나 매뉴팩처드(manufactured) 주택 시대에 접어들 것이다. 매뉴팩처드 하우스는 공장 제작된 부자재를 현장에서 조립하는 모듈러 주택을 의미하는데, 건설업이 제조업의 장점을 접목하는 일종의 산업 간 컨버전스로 볼 수 있다. 공장에서 만들어 현장에서 조립하는 모듈러 주택이 발달하면서 쉽고 빠르고 다양한 주택 건축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FTA의 영향으로 건축 원자재 가격에 변동이 오게 될 것이며, 특히 수입 목재 가격의 하락 등으로 고가로 알려진 한옥의 건축 단가가 낮아져 생활 한옥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뿐만 아니라 건축 기간 단축, 주택금융 다양화, 주택의 오더메이드(order made) 시대 등 주택 건축에 획기적 시대 변화가 예상된다.
4. 다국적 샐러드 볼 타운
외국인 세컨드 홈 증가
‘샐러드 볼’은 말 그대로 여러 가지 샐러드 재료를 담은 그릇으로, 여러 나라의 문화적인 다양성을 존중해 여러 국가의 문화가 각각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발전하는 것을 의미한다.
외국인 노동자의 증가, 케이팝(K-POP) 등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 방문 및 체류 관광객이 증가해 전 세계 다양한 민족, 다양한 국가의 주거 수요가 나타나며 세계의 주거 문화와 한국 주거 문화가 서로 영향을 주게 된다.
이미 형성되고 있는 연희동 ‘차이나타운’, 동부이촌동 ‘리틀도쿄’, 혜화동 ‘필리핀마을’, 화성시 ‘베트남거리’ 등 지역마다 특화 거리나 타운이 더욱 심화되고 발달되는 과정에서 한국의 주택시장과 주거 문화에 영향력이 더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5. 버틀러 서비스드 홈
일상의 번거로움을 대신하는 전문 집사
기존의 고급 주상복합이나 레지던스를 중심으로 고급 호텔형 서비스 상품이 제공된 바가 있지만 여기서 제시한 버틀러 서비스의 핵심은 고가의 호텔형 서비스가 아니라 동호인 주택, 커뮤니티 주택이 진화 발전하면서 주택 내에서 일상의 번거로움을 대신하는 저렴하고 다양한 관리 서비스를 의미한다.
통크족(Two Only No Kinds), 딩크족(Double Income No Kinds)에 이어 자녀 없이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딩펫(DINK+pet)족’ 등이 늘어나면서 주거 공간에 특화 시설, 특화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증가한다. 취미·레저·육아·교육·문화에 대한 공동 수요를 갖고 있는 공동체 성격에 맞춰 이들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서비스, 소프트웨어가 차별적으로 제공될 것으로 전망된다.
몇 천 원 정도만 지불하면 자질구레한 일을 대신해 주는 ‘해주세요 서비스’ 같은 서비스 상품이 일상화되고 있는데, 주택 관리에도 확대돼 전구를 갈아주는 사소한 일에서부터 가구 옮겨 주기, 발레파킹, 침구 세탁 정리 메이드 서비스는 물론 애견 산책이나 목욕을 대신 시켜 주는 등 다양하게 발전될 것이다. 이에 관련한 새로운 서비스 산업이 떠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6. 업 또는 다운 사이징
골드족, 넓히거나 줄이거나
최근 2011년까지 소형 주택의 수요가 강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전용면적 기준 30㎡ 수준의 초소형 규모 위주의 집중 분양에 대한 수급(수요 공급) 불균형의 반작용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전망된다. 또 1~2인 가구의 골드족들을 중심으로 럭셔리한 중형 평형 이상의 주택 선호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피데스개발이 한국갤럽 등과 수도권 거주 99㎡(30평)형 이상 거주자 대상으로 조사한 ‘2011 주거 공간 소비자 조사’ 결과 이사 계획이 있는 주택 소유주들은 현재 62.2%가 전용면적 기준 99~112㎡의 아파트에 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으며 ‘향후 95㎡ 이하의 아파트로 이사 가고 싶다’ 17.4%, ‘115㎡ 이상의 중대형 아파트로 이사 가고 싶다’ 33.1%로 소형과 함께 중대형 아파트로 이사하기를 선호했다.
또한 주택산업연구원 ‘2010년 주거 실태 조사’에서도 1~2인 가구가 가장 선호하는 주택 규모는 전용면적 60~85㎡로 10가구 중 4가구가 희망했지만 85~100㎡와 100㎡ 초과를 선호한다는 답변도 각각 11.5%와 6%로 나와 60㎡ 이상 중·대형 주택을 찾는 1~2인 가구가 전체의 54.3%로 나타났다. 7. 셰이프 인 하우스
외부 환경 위협에도 안전·안심 주거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상이변, 자연재해 증가 등으로 주택의 안전 시설에 대한 수요가 증가될 것으로 예상된다. 내진 시설은 기본이고 쓰나미, 산사태 방지 시설, 폭우, 폭염, 방사능 등 재해·재난에 대한 대비가 되어 있는 주택이 선호될 것으로 보인다. 극단적으로 재난 대피 시설이 있는 주택도 등장하고 무공해 채소를 직접 재배하는 도시농부가 늘어나는 등 전반적으로 안전·안심을 강조한 주택·아파트가 나오고 이들 주택에 관심과 프리미엄이 생성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희정 피데스개발 R&D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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